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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운궁(慶運宮) 앞 황단(皇壇) 복원 천제(天祭) 봉행해야
 작성자 : 김민수  2012-10-10 19:21:03   조회: 1737   
경운궁(慶運宮) 앞 황단(皇壇) 복원 천제(天祭) 봉행해야





우리 한민족은 상고시대부터 10월 상순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어 원형의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천제(天祭)를 봉행하며 국태민안을 기원해 왔으며 환구제(圜丘祭)는 10세기 고려국 성종(成宗) 대에 제도화되고 조선국 세조(世祖) 대에 폐지되었으며 광무(光武) 1(1897)년 9월 21일 궁중(宮中)의 전식(典式)ㆍ제향(祭享)ㆍ조의(朝儀)를 관장한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규홍(金奎弘)이 아뢰기를“천지에 합제(合祭)하는 것은 사전(祀典)에서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황단(皇壇)의 의제(儀制)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 전에는 남교(南郊)에서 단지 풍운(風雲), 뇌우(雷雨)의 신들에게만 제사지냈는데 단유(壇壝)의 계급(階級)이 법도에 맞지 않았으니 밝게 섬기는 의절에서 볼 때 실로 미안합니다. 동지(冬至)절의 제사를 그대로 거행할 수 없으니 앞으로 고쳐 쌓는 등의 절차에 대하여 폐하(陛下)의 재가를 바랍니다. 호천상제황(昊天上帝皇)과 지지신(地祗神)의 위판과 일월성신(日月星辰), 풍운뇌우(風雲雷雨), 악진(嶽鎭), 해독(海瀆)의 신패를 만드는 것과 제사에 쓰는 희생, 변두(籩豆) 등의 여러 가지 의식에 관한 글들은 역대의 의례를 널리 상고하여 마땅히 일정한 규례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시임 의정(時任 議政)과 원임 의정(原任 議政)들, 지방에 있는 유현(儒賢)에게 하순(下詢)하여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제사지내는 예절은 어느 것이나 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더구나 천지에 합제하는 일은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아뢴 것이 실로 짐의 뜻에 부합되니 경은 궁중의 건축,토목을 관장한 영선사 장(營繕司 長)과 함께 함께 지형을 보고 날짜를 골라서 제단을 쌓을 것이며 제반 예식에 관한 규정은 아뢴 대로 하되 다만 한성(漢城)에 있는 시임 의정과 원임 의정들에게서만 수의(收議)하여 들이라.”하였다.


9월 25일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규홍(金奎弘)이 아뢰기를“황단(皇壇)의 여러 의식 절차에 대하여 한성에 있는 시임 의정(時任 議政)과 원임 의정(原任 議政)들에게서 의견을 수렴하는 것에 대하여 명령하였습니다. 당하(堂下)을 보내서 의견을 물었더니 의정 심순택(沈舜澤)이 말하기를‘삼가 예기(禮記)를 상고하여 보건대 천자(天子)는 천지에 제사지낸다고 하였습니다. 천자(天子)의 예로는 하늘을 섬겨 근본에 보답하며 처음을 돌이켜보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땅을 쓸고 제사를 지내는 데서 질그릇, 바가지, 짚, 햇송아지를 쓰는 것은 그 바탕을 숭상하고 정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성인(聖人)은 관천(觀天)하는 도리를 의식 절차의 법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제사지내는 단유(壇壝)의 계급(階級)은 반드시 그 형상을 살피고 만들었습니다. 호천상제(昊天上帝) 지지지신(地祗之神) 신주와 대명(大明) 야명(夜明), 오성(五星), 28수, 주천성신(周天星辰), 풍운뇌우, 오악(五嶽), 오진(五鎭), 사해(四海), 사독(四瀆) 신들의 신주, 변두(籩豆)의 수와 의식 규정은 제도가 각각 다른데 예가 미비한 것이 오늘과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조성(造成)하는 절차나 진설(陳設)하는 도식은 모두 장례원으로 하여금 고례(古禮)를 참고하여 거행토록 하며 성단(星壇)을 설치하는 경우는 분야(分野)의 별들에게 제사지내는 의리에서 나왔으므로 이제 제사지낼 수 없습니다. 그 밖의 산천단(山川壇)이나 성황당(城隍堂)처럼 사전(祀典)을 상고하여 바로잡을 수 있는 것에 대하여서는 모두 바로잡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신은 원래 예학(禮學)에 어둡다 보니 감히 하나씩 지적하여 대답하지 못하겠으니 널리 물어서 처리하시옵소서.’고 하였습니다.특진관(特進官) 김병시(金炳始)와 조병세(趙秉世)는 병으로 의견을 올리지 못하였지만 시임 의정과 원임 의정들의 의견이 이와 같으니 폐하께서 처결하여 주기 바랍니다.”하니, 조령을 내리기를 “의정들의 의견이 이와 같다면 장례원으로 하여금 널리 상고하여 재가를 받은 다음 즉시 거행하게 하라.”하였다.


10월 1일 장례원 경(掌禮院卿) 김규홍(金奎弘)이 아뢰기를 “신이 영선사 장(營繕司 長) 이근명(李根命)과 함께 상지관(相地官) 오성근(吳聖根)을 데리고 황단(皇壇)을 설치할 장소를 간심(看審)하니 남서(南署)의 회현방(會賢坊) 소공동계(小公洞契)의 해좌사향(亥坐巳向)이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경계를 정하여 단(壇)을 쌓는 절차를 영선사(營繕司)로 하여금 빨리 거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또 아뢰기를 “황단(皇壇)에 단을 쌓는 공사를 시작할 길일 및 위판(位版)과 종향 위패(從享 位牌)를 만드는 길일은 음력 9월 7일로 정하며 그 조성하는 절차를 봉상사(奉常司)로 하여금 전적으로 맡아서 거행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모두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 “황단(皇壇)의 위판과 종향 위패(從享 位牌)를 만드는 장소는 어느 곳에 마련해야 하겠습니까?”하니 제칙(制勅)을 내리기를 “근정전(勤政殿)에 하라.” 하였다.10월 4일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영수(金永壽)가 아뢰기를,“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에 왕태후 폐하의 위호(位號)를 가상(加上)하는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시임 의정(時任議政)과 원임 의정(原任議政)들, 지방에 있는 유현(儒賢)들에게 문의하여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제칙(制勅)을 내리기를“한성에 있는 시임 의정과 원임 의정에게만 문의하라.”하였다. 또 아뢰기를“황제의 자리에 즉위할 길일을 잡아서 주하(奏下)하였습니다. 의절(儀節)을 마련해야 하는데 역대의 전례를 상고하니‘황단(皇壇)에 고유제(告由祭)를 한 다음에 교단(郊壇)의 앞에 자리를 만들고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 오른다. 이어 태묘(太廟)와 사직(社稷)에 나아가 고하는 제사 의식을 끝낸 후에 정전(正殿)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백관(百官)들이 표문(表文)을 올려 축하를 하고 드디어 관원을 보내 황후를 책봉하고 황태자를 책봉하며 다음날 세상에 조서(詔書)를 내려 알린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이대로 마련하여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또 아뢰기를“황단(皇壇), 태묘(太廟), 영녕전(永寧殿), 사직(社稷), 경모궁(景慕宮)에서 지내는 고유제는 음력 9월 14일에 설행하며 빈전(殯殿)에 지내는 고유제는 같은 날에 하되 조전(朝奠)을 겸해서 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하였다. 이어 제문과 고유문을 직접 지어서 내리겠다고 명하였다.10월 6일 장례원 경(掌禮院 卿) 김영수(金永壽)가 아뢰기를 “이번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에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의 축식(祝式)을 역대의 전례(典禮)에 의거해서 모두 바로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또 아뢰기를“역대의 규례를 삼가 상고해 보니 남교(南郊)에서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냈는데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에는 천하의 명산(名山)과 대천(大川), 성황(城隍), 교단(郊壇), 사토(司土)의 위패(位牌)를 그 유(壝) 안에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대로 마련하고 위패(位牌)는 봉상사(奉常司)로 하여금 일체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고 또 아뢰기를“왕태후 폐하의 위호를 가상(加上)할 때와 옥보를 올리는 길일과 황태자비를 책봉할 길일을 음력 9월 19일로 잡아서 정하였습니다. 이대로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모두 윤허하였다.

10월 12일 고조(高祖)는 대한제국(Daehan Empire)을 건국하고 심순택(沈舜澤)의 상소에 의해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 앞에 황단(皇壇)을 축조하고, 10월 12일 대한국(大韓國)의 주권자(主權者)이며 천제(天帝)의 아들 천자(天子)인 대한제국 황제(皇帝)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황단(皇壇)에 나아가 천제(天祭)를 봉행하고 1대 광무제(光武帝)로 등극했다. 대한제국(Daehan Empire)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광무(光武) 원년(元年)에 백악(북악산)과 목멱(남산) 사이의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 앞에 제천단 황단(皇壇)을 축조하였으며 1층은 장광이 144 척이며 둥글게 돌로 쌓아 석 자 높이로 쌓았고, 2층은 장광이 72 척이며 석 자 높이로 쌓았고, 3층은 장광이 36척이며 석 자 높이로 둥글게 쌓아 올렸고,바닥은 벽돌을 깔고 황단(皇壇) 주위를 둥글게 석축을 모으고 돌과 벽돌로 담을 쌓았으며 동서남북으로 황살문을 세웠고 남문은 문이 셋이다.1910년 8월 29일 불법 무효한 경술늑약 늑결로 대한국을 강제 병탄(倂呑)한 일제 총독부가 1913년 대한국 황단(皇壇)과 황궁 경운궁(慶運宮)의 동편 권역을 철거하고 호텔,경성부를 악의적으로 설치하여 민족 정기를 훼손하였다.



경운궁(慶運宮)은 원형 복원이 가능하지만 황단(皇壇)은 원 위치 복원이 불가능하므로 경운궁(慶運宮) 대안문 앞에 황단(皇壇)을 원형복원해야 하며 광무 3년(1899년)에 축조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8각 3층 건물로 황천상제(皇天上帝)와 황지지(皇地祗) 신위를 봉안한 황궁우(皇穹宇)와 화려하게 조각된 용(龍) 무늬가 있는 돌로 만든 석고(石鼓) 3개, 정문만 남아 있다. 일제 총독부가 황단(皇壇)과 경운궁을 철거하고 호텔,경성부를 악의적으로 설치하여 민족정기를 훼손하였으므로 경운궁(慶運宮)과 황단의 역사문화경관을 침해하는 경성부를 철거하고 경운궁 대안문과 황궁우 석고단 사이에 황단(皇壇)을 복원하여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친히 황단(皇壇)에서 천제(天祭)를 봉행한 친사황단의를,경운궁 태극전에서 고조 광무제가 황제위에 오르는 등극의(登極儀),고조 광무제의 조칙을 반포하는 반조의(頒詔儀),황태자가 고조 광무제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리는 진치사의(進致詞儀),문무백관들이 고조 광무제에게 축하를 올리는 하표의(賀表儀)의 경운궁(慶運宮) 앞 황단(皇壇) 천제(天祭)를 봉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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