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넘게 을 취재했다. 60여명의 취재원을 만나고 20편의 기사를 썼다. 1월부터 5월까지 '서민'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 갔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을 볼 수 있었지만 나조차 모르던 현실을 마주하고 때로는 분노를, 슬픔을,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삶의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끝으로 정치시즌이 마무리됐다
새 목재가 들어왔다. 주문서를 들고 만들어야 할 문짝과 문틀 개수를 확인했다. 선반에 목재를 올려놓고 크기와 시트지 색깔, 무늬를 적어 넣었다. 자로 길이를 표시하고 붉은색 시트도 옮겼다. 기계에 목재를 넣고 버튼을 누르자 톱밥이 사방으로 튀었다. 알맞게 잘린 목재를 선반에 다시 옮겼다. 장갑을 낀 채 목재를 쓸어낸 뒤 사포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듬고
수업이 끝나자 학생 수십여명이 강의실에서 몰려나왔다. 막 청소한 복도와 계단에 또 발자국이 찍히고 모래가 떨어졌다. 쓰레기통은 과자봉지와 A4 용지로 가득 찼다. 다시 청소할 시간이다. 분홍색 고무장갑과 토시를 끼고 학생들 틈바구니에 서서 빗자루로 쓰레기를 치웠다. 허리 펼 시간도 없다. 1층 계단 제일 아래서부터 비질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지나가면 길을
금요일 초저녁. 번화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리운전 기사 박모(38.대구 서구 비산동)씨는 스마트폰을 들고 '콜' 내용을 보며 손님이 있는 가게를 찾았지만 길이 복잡해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길 양쪽에 늘어선 가게들을 살피는 눈길에 초조함이 한 가득이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나와 스마트폰을 보고 다시 가게 위치를
마른 손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차(茶) 가루를 종이컵에 넣었다. 유리병에서 커피가루와 설탕도 한 숟가락 씩 퍼 빈 컵에 담았다. 차가운 물을 들이붓고 얼음도 컵에 3-4개씩 떨어뜨렸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며 숟가락으로 살살 저었더니 냉차가 완성됐다. 컵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앞치마를 두른 시장 상인들이 골목 여기저기서 나와 자신이 주문한 냉
저녁 어둠이 내린 아파트 단지. 차량들이 하나, 둘 귀가한다. 10년째 아파트 경비로 일하고 있는 이진문(68.신천동) 아저씨는 형광등 불이 켜진 경비실 작은 창문을 통해 일일이 차량 번호를 확인했다. 바코드가 등록되지 않은 외부 차량이 들어오자 입구까지 걸어가 방문 목적과 운전수 이름, 차량 번호와 차종을 적었다. 경비실로 돌아오는 아저씨의 검은색 유니폼에서 용역회사 이름이 번쩍인다.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치고 하얀 천을 맨손에 둘둘 감아 구두약과 물을 묻혔다. 구두 앞뒤로 살살 비비자 얼룩덜룩하던 구두가 반짝반짝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구둣솔을 들어 바닥과 표면에 묻어 있는 먼지도 깨끗이 떨어냈다. 한참 무릎에서 떠날 줄 모르던 갈색 구두가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대구 북구 칠성시장 입구. 강모(70.대현동)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51년째 구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종이박스로 담을 쌓은 작은 공간에 한 할머니가 김밥을 팔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식사를 하기 위해 몰려나온 학생들은 김밥을 먹기 위해 할머니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김밥 한 줄을 꺼내 참기름을 바르고 깨를 뿌렸다. 이어, 먹기 좋은 크기로 김밥을 가위로 잘랐다. 검은 봉지에 김밥을 담은 뒤 이쑤시개 2개를 봉지에 꼽
"뻥이요" 한영수(53.대구 달서구 송현동) 아저씨는 오늘도 뻥튀기를 팔기 위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섰다. 도심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뻥"을 외치며 뻥튀기 봉지를 흔들었다. 때마침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아저씨에게 다가와 뻥튀기 2봉지를 사갔다. 그리고, 손님이 뜸해지자
차들이 정신없이 달리는 삼덕네거리. 골목길 모퉁이에 노랑 아이스박스 6개가 실린 전동카가 서 있다. 옆에는 같은 색깔 옷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아이스박스를 열어 야쿠르트를 정리했다. 한 아저씨가 다가와 "1봉지 주세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아이스박스에서 작은 야구르트 10개가 든 비닐봉지를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다. 야쿠르트 값으로 받은
차들이 줄지어 선 도로 위. 신호 앞에 멈춘 오토바이 앞 단말기에서 3초 간격으로 '띵동' 소리가 울리자 알 수 없는 주소들이 끊임없이 갱신됐다. 헬멧을 눌러 쓴 아저씨는 '(급) 황금2동-KT플라자' 칸을 선택하고 '콜'을 눌렀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오토바이는 '부앙' 소리를 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21일 오후 5시. 퀵서비스 기사 경력
허리를 숙여 까만 연탄 4장을 집는 손길이 바쁘다. 집게로 연탄을 들고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빨강 화덕 옆 연탄 탑은 높아져만 갔다. 장갑을 낀 채 얼굴을 한번 훔치자 까만 연탄재가 볼에 묻었다. 장갑을 벗어 볼을 닦는 손끝은 오랜 세월 박힌 재 때문에 이미 검게 물들었다. 14일 아침 7시 30분. 대구 북구 고성동1가 낮고 허름한 주택이 즐비한
어스름한 새벽. 칠성시장 한 노점에서 하얀 김이 올라온다. 새벽일을 마친 택시기사들과 이제 막 출근한 상인들, 주변 지하철역에서 자던 노숙자들이 하나 둘 노점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수제비 주소"라고 외치자 아주머니와 청년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 "네"라고 외쳤다. 한파특보가 발효된 7일 새벽 6시 30분. 대구 북구
백발의 할아버지가 굽은 허리로 식당가를 돌아다니며 종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계란 있어요"라고 외치는 쉰 목소리가 골목길에 울렸다. 식당 문을 열고 "계란 필요해요?"라고 묻기도 했지만 손사래만 돌아왔다. 자전거를 끌고 더 깊은 골목길로 들어가자 종소리도 희미해졌다. 31일 오전 10시.
식당 옆 작은 쪽문 길고 컴컴한 좁은 틈에서 가스통을 어깨에 들쳐 멘 사람이 나왔다. 가스통이 벽에 닿아 '지익'하고 쇳소리를 낼 때마다 통이 떨어지지 않도록 벽을 짚고 나오는 모습이 위태롭다. 겨울비가 내리던 23일 오후 5시. 대구에서 4년째 LPG(액화석유가스) 가스통을 배달하고 있는 김모(37.동구 불로동)씨는 파란색 1톤 트럭에 LPG 가스통을
겨울비를 뚫고 리어카 한 대가 고물상으로 들어왔다. 허리까지 쌓인 고철이 굵은 고무줄에 묶여 있었다. 리어카가 멈추자 빗물과 함께 녹물이 흘렀다. 비를 흠뻑 맞은 노인이 줄을 풀고 고철을 내려놨다.21일 아침 7시 30분. 10년째 고철을 주워 팔고 있는 이모(70.중구 동인동) 할아버지는 아침식사를 하자마자 리어카를 끌고 중구 동인동과 북구 칠성동 일대
"싱싱한 고구마, 감자, 고추, 대파, 계란, 사과 있어요. 고등어, 미주구리도 있어요" 한적한 주택 골목길이 트럭 확성기 소리로 요란하다. 야채, 과일, 생선이 가득 실린 트럭 뒤로 주민들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반짝 한파가 찾아온 17일 오전. 대구 수성구 파동 일대에는 진눈깨비까지 내렸다. 이곳에서 13년 동안 야채, 과일, 생선을 팔
"고되지만 자식들이 힘들게 돈 버는데 어매가 앉아서 얻어먹고만 살까. 이거라도 팔러 나와야 밥값을 하재. 구청이나 자식새끼들이나 다 그만하라고 말해도 여기에 나와야 내 맘이 편테이" 14일 아침 8시 30분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는 한 한의원 앞 골목길. 출근길로 분주한 직장인들 사이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밤새 쌓인 담배꽁초
철가방을 실은 빨간 오토바이가 아직 녹지 않은 도로 위를 쌩 하고 지나갔다. 올해로 10년째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양모(50.대구 중구 달성동) 아저씨 오토바이다. 9일 오후 5시 30분. 아저씨는 짜장면 세 그릇을 싣고 대구 중구 남산동 빌라에 내렸다. 그늘 진 곳이라 녹지 않은 눈이 빙판길로 변했다. 아저씨는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배달 할 때 마다 죽겠다. 미끄러지기도 수십번. 눈만 오면 일하기 싫다"고 빙그레 웃었다. 특히, "해가 빨리 져 오후 5시만 넘으면 빙판길이 뵈지 않는다. 아차 하면 사고다. 그래서 빠르게 안타고 살살 탄다"고 털어놨다.
"전단지 받아가세요. 고맙습니다"길에서 불쑥 종이를 든 손이 다가왔다.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들이다. 받아주는 사람도 있고 받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할머니들은 몇 시간이고 길에 서서 묵묵히 전단지를 돌렸다. 김모(80.남구 이천동) 할머니는 4년째 전단지 돌리는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