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 동동주 한 사발 먹어봐라, 야” 박창원의 인(人)-(4) / 곡주사 이모④“너들 하나 먹어봐라, 야” 이모가 자주 하던 이야기입니다. “내 손으로 찹쌀 동동주를 빚어서 학생들에게 한 사발씩 돌리고 싶어. 맛있게 먹고 노래하면서 재미있게 노는 것 보고 싶지. 한데 지금은 다리도 못 쓰고 눈도 어둡고
곡주사는 나의 ‘사춘기’와 같다. 솜털이 뽀송한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그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이다.그 시절 우리는 시를 쓴답시고 ‘문학교류’를 핑계 삼아 남자애들과 곡주사에 들락거렸다. 물론! 막걸리도 마셨다. 주로 시문학동인회를 졸업한 남자선배들이 잘 알아먹지도 못할 데모이야기, 문학이야기를 쏟아냈고 우
내 기억속의 곡주사는 술 먹고, 격렬하게 토론하고 노래 부르고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시절 운동하는 사람들의 소통의 공간이었던 같다. 그래서 곡주사는 그냥 그렇게 뭉뚱그려진 채 그런 느낌, 그런 온기, 기억,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중 한 사건(?)은 기억도 아스라하지만 영상의 한 컷처럼 남아있다.20살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이다. 계절이 언제인지
“날 두목이라 카며 패더라”박창원의 인(人)-(3) / 곡주사 이모③“할매, 어느 정도 말을 해줘야 많이 안 맞지. 그러다 전기고문 당하면 죽어요” 당시 집권당과 관련이 있는 김◯◯가 와서 그랬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이모는 나중에야 학생들을 옭아맬 목적으로 어르고 달래는 말
곡주사 이모 정옥순①"한번 찾아온다 해놓고선...떼먹지 않으면 외상장부가 뭔 필요가 있어" “밥 묵고, 술 무라 캤지”박창원의 인(人)-(2) / 곡주사 이모②“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인데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 아가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낭군 빨래가라~” 80년대 초
박창원의 人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연 있는 대구경북의 어르신을 찾아 그 삶을 매주 이어가려고 합니다. 대구 염매시장 대폿집 곡주사 이모부터 반세기 전 자유당에 맞섰던 투사들까지, 굴절된 역사 삶으로 새긴 그 사연들을 엮어가려고 합니다. 한때 지역 신문사에 몸담았던 박창원씨는 성서공동체FM ‘박창원의 자드락길’을 진행하고 있는 평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