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가 웃는다. 잠을 자면서 웃는 걸보니 배냇짓이다. 예쁘다는 말에 민주엄마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배가 고픈지 입을 삐죽하더니 울음보를 터트린다. 딸이라고 우렁차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다부지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출산 한달째.젖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안을 수 없는 엄마대신, 민주는 동네 아줌마가 태워주는 우유를 아주 힘차게 빤
껌뻑, 껌뻑, 껌뻑, 껌뻑, 껌뻑, 껌뻑...하얀 빈 공간, 날씬한 커서가 제자리걸음한 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헉, 두 시간도 넘게 멍청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커서, 바보, 가 아니라 류, 바보다.라고 일단 써 본다. 그리고, 또다시 껌뻑이는 시간이 흐른다. 서른넷, 처음 써 보는 자기 소개서. 후배는 "그게 무지 어려운 거거든요. 근데 정말 처음 쓰는
설 연휴 마지막 날, 같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는 자리가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나이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설 쇠었고, 떡국 한 그릇 먹었으니 이제 몇 살이지?’ 하면서 서로 나이를 셈하고 있는데 가장 나이 어린 친구가 새해 들어 스물여덟이란다. 삼십대 후반인 나와 사십대를 막 접어 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와, 좋은 나이
대구여성의전화 20주년 기념 여성인권운동사 책 편집을 위해 그동안의 활동한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놀랐다. 단체가 창립되면서부터 회원과 상근활동가들의 혼신과 노고, 땀과 열정으로 단체가 성장할 수 있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20년 전부터 회원들이 마음과 몸과 돈을 내어 아낌없이 함께 하였고 상근활동가들은 아주 작은 활동비를 받으면서도 기쁘게 활동하였다.
만8년동안 애정을 쏟아왔던 환경연합 일을 그만두자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왜 그만뒀노?", "뭐할려고 하는데?" 하는 것이었다. "그냥 놀려고...", "좀 쉴려고" 해도 당최 믿질 않는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뭐 딴 거 할게 있겠지." 하고 섭섭한 얼굴로 돌아선다.나는 정말로 놀고 싶었다.멀티플레
2007년 새해를 금강산에서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녘 땅에 발을 디뎠다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건 어머니와 함께 한 최초의 여행이어서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나는 나에게 약간의 방랑벽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대학시절 소리소문없이 우리 땅 이곳 저곳을 자주 밟았고, 여행을 떠나면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십대를 그렇게 보냈던 듯 하다. 이념보다는 그 이념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술 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퍽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요즘, 나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소박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
지난 8월 14일, 동이 틀 무렵 사방에 푸른 기가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어요.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의 남걀곰파(티베트 사원)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아침을 맞이하는 분주함 대신 차분함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경건함 마저 감돌았습니다. 법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짜증
"에구.. 그럼 뭐 비행기는 물 건너 간 거네"1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 오신,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인척쯤 되는 아주머니께서보자마자 대뜸 이러십니다.비행기는 일찌감치 포기하라고요. 아들만 둘이니까.딸 둔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둔 부모는 이제 기차도 못 얻어 타버스나 겨우 탈 거라는 얘기가바다 건너 일본에도 수시로 들렸는 지쯧쯧쯧.. 혀까지 차며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때 그 사람이 나로 인해 불편해 하지는 않는지..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신경 쓰는 사람...어떤 잘못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하루를 지나면서 나의 말과 행동을 되돌이켜 보면서 성찰하는 사람...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안중에 없는 사람이 싫다.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다른 사
“지금 몇시고?”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채 먼저 일어나 놀고 있는 여섯 살박이 큰 놈에게 물었다. ‘음~ 8시 90분이야 엄마“. ”음..7시45분이군..“그러자 킥! 웃음이 났다. 내가 여섯살 아이의 세게와 소통할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행복’이란 단어와 아주 멀리 있었다.누가 “행북한 하루~”하고 인사하면 거부감으로 닭살부터 돋았으니까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삶이 행복할까?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 유학 갈 자금?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많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 그런데 그 기준이 있긴 한 걸까?모두가 가난한 동네에서 특별히 더 가난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내가 가난하단 걸 전혀 모르고 자랐다. 다 자란 다음에야 ‘비교의 대상’이
언젠가 늦둥이 엄마들이 애 학교 보낼 즈음에 얼굴에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는 기사를 봤다. 자칫 쳐진 피부에 뒤쳐진 패션으로 아이와 동행했다가는 할머니 소리 듣기 십상이라서, 보톡스 주사를 맞아 쳐진 피부를 당기고 간혹은 볼에 지방을 살짝 넣어 통통하게 보이게하는 시술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역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둔터라 ‘아이가 학교갈 때 즈음에는 나도
“행복해져라.”직장을 그만두려는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다였다.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근 이년간 잊을라 치면 번번이 터져 나오던 ‘이놈의 직장’이었다. 내가 참을성이 좀 있고 착한 심성이었으면 지치지 않고 응, 그래, 끄덕끄덕 해 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다시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마라”고 매몰차게 잘라 버렸었다. 공허한 토로, 어차피 되
얼마 전 취업을 앞둔 대학생 20여명에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한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1시간30분여의 강의를 정리하며 내가 한 말은 기자를 하든, 다른 직업을 갖든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키 큰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가장 문제에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떻
세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은망가진 것들에게서 나오네.몸 속에 구멍 뚫린 피리나철사줄로 꽁꽁 묶인 첼로나 하프나속에 바람만 잔뜩 든 북이나비비 꼬인 호른이나잎새도 뿌리도 잘린 채분칠 먹칠한 토막뼈투성이 피아노실은 모두 망가진 것들이네. 하면, 나는 아직도너무 견고하단 말인가. -음악, 이경임 詩 책꽂이를 다 뒤지고, 책상 서랍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겨우 이 시를
몇 달전 남해안 일대를 다녀왔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남해안 연안답사 길을 따라 가기 위해서였다.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하고 있을 무렵,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했다. 몰살 당한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남해안 연안을 직접 답사했던 바로 그 길을 따라 가던 길이었다. 경상남도 초계에서부터 수곡-진주-하동-쌍계-곡성
얼마 전, 볼 일 때문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을 다 보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서는데 후다닥 뛰어나가던 아이 하나가 과자 봉지를 내 앞으로 휘익 버린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못 참고 한마디 했다. “얘, 봉지를 아무렇게나 버리면 되니?” “어차피 청소하는 아저씨가 치워요.” 이상한 소리 하는 아줌마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아이가
내가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산꼭대기였다. 목까지 차오른 숨을 침으로 삼켜가며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야했는데, 꼭대기에 올라서면 시원한 소나무 숲 너머로 시야가 확 트이면서 대구시내가 다 보였다. 화려한 야경을 보면서 산책하는 일은 산동네 사람들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 안에 우리 집이 있었다. 우리 집은 참 작
재미있게 살자. 한동안의 모토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봤자 강 한번 보러가자 산에 한번 가자가 바램의 전부였거늘,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정도 여유도 없나....’ 헛! 혀를 끌끌 찰 일이다. 게다가 지난 한 달간 틈틈이 재미있자고 읽었던 책조차 마지막으로 갈수록 사회니 자본이니 하는 복병이 나타나 그렇잖아도 시끄러운 대구와 얼추 맞아떨어지는 쿵짝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