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가 미국에서 왔다고 해 동창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옛추억을 다시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 정문에서 만났다. 미국에서 온 친구는 '미국식'으로 인사를 하겠다며 학교 정문에서 친구들에게 만나자마자 포옹을 하였다. 당황해 하는 남자친구들에게 그래도 한국이라서 뽀뽀는 참았다며 짓궂게 장난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 15년이
주말이 되면 도심이 한산해 진다. 주5일 근무가 정착되면서 가족과 함께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작정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보다는 테마, 이야기가 있는 여행코스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한류 열풍이 이어지면서 인기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가 여행코스로 우선순위에 꼽히고 지방 자치단체들이 각종 후원을 아끼지 않으며 촬영장 유치에 힘을
또 봄이야 우린 이제 지겨워늙은 나무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한 시인의 시를 읽으며,마치 내 마음이 읽힌 듯한 어느 봄날 저녁...딸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웠다.“오늘은 학교에 가져간 크레파스로 뭘 그렸어?”“응, 짝꿍 얼굴 그리기를 했어”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는 학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이 난다.“반 친구들 중에 네 짝이 제일 좋아?”“음..
평화뉴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삼덕동 술집골목’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늘 오고가는 거리를 색다른 관점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도 10여년 전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해서였다. 오래된 앨범 같은 그 풍경 속에는 영화보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함께 영화모임을 만들었던 친구들, 중고음반가게 우드맥에 앉아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민주가 웃는다. 잠을 자면서 웃는 걸보니 배냇짓이다. 예쁘다는 말에 민주엄마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배가 고픈지 입을 삐죽하더니 울음보를 터트린다. 딸이라고 우렁차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다부지고 우렁찬 울음소리가 마음을 놓이게 한다. 출산 한달째.젖은 여전히 마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안을 수 없는 엄마대신, 민주는 동네 아줌마가 태워주는 우유를 아주 힘차게 빤
껌뻑, 껌뻑, 껌뻑, 껌뻑, 껌뻑, 껌뻑...하얀 빈 공간, 날씬한 커서가 제자리걸음한 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헉, 두 시간도 넘게 멍청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커서, 바보, 가 아니라 류, 바보다.라고 일단 써 본다. 그리고, 또다시 껌뻑이는 시간이 흐른다. 서른넷, 처음 써 보는 자기 소개서. 후배는 "그게 무지 어려운 거거든요. 근데 정말 처음 쓰는
설 연휴 마지막 날, 같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는 자리가 있었다. 때가 때인지라 나이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설 쇠었고, 떡국 한 그릇 먹었으니 이제 몇 살이지?’ 하면서 서로 나이를 셈하고 있는데 가장 나이 어린 친구가 새해 들어 스물여덟이란다. 삼십대 후반인 나와 사십대를 막 접어 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와, 좋은 나이
대구여성의전화 20주년 기념 여성인권운동사 책 편집을 위해 그동안의 활동한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놀랐다. 단체가 창립되면서부터 회원과 상근활동가들의 혼신과 노고, 땀과 열정으로 단체가 성장할 수 있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20년 전부터 회원들이 마음과 몸과 돈을 내어 아낌없이 함께 하였고 상근활동가들은 아주 작은 활동비를 받으면서도 기쁘게 활동하였다.
만8년동안 애정을 쏟아왔던 환경연합 일을 그만두자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왜 그만뒀노?", "뭐할려고 하는데?" 하는 것이었다. "그냥 놀려고...", "좀 쉴려고" 해도 당최 믿질 않는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뭐 딴 거 할게 있겠지." 하고 섭섭한 얼굴로 돌아선다.나는 정말로 놀고 싶었다.멀티플레
2007년 새해를 금강산에서 맞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녘 땅에 발을 디뎠다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건 어머니와 함께 한 최초의 여행이어서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나는 나에게 약간의 방랑벽 같은 게 있다는 걸 느꼈다. 대학시절 소리소문없이 우리 땅 이곳 저곳을 자주 밟았고, 여행을 떠나면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십대를 그렇게 보냈던 듯 하다. 이념보다는 그 이념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술 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퍽도 좋아했었던 것 같다.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요즘, 나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소박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
희망 하나.“아니, 얘들과 몸을 좀더 부드럽게 움직여봐. 이렇게 웨이브를 넣어란 말이야 아휴”“아니 아니 잠깐만, 지금 너희 몸이랑 얼굴표정이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구.”춤 선생님(?)의 목소리가 여느때와 전혀 다르게 자신감에 가득차 있다.지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성탄을 앞두고 감나무골 작은학교의 아이들
지난 8월 14일, 동이 틀 무렵 사방에 푸른 기가 가시기도 전의 일이었어요. 인도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즈의 남걀곰파(티베트 사원)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는 아침을 맞이하는 분주함 대신 차분함이 묻어 있었고, 얼굴에는 경건함 마저 감돌았습니다. 법회가 오전 9시부터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서너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짜증
"에구.. 그럼 뭐 비행기는 물 건너 간 거네"1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 오신,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인척쯤 되는 아주머니께서보자마자 대뜸 이러십니다.비행기는 일찌감치 포기하라고요. 아들만 둘이니까.딸 둔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둔 부모는 이제 기차도 못 얻어 타버스나 겨우 탈 거라는 얘기가바다 건너 일본에도 수시로 들렸는 지쯧쯧쯧.. 혀까지 차며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때 그 사람이 나로 인해 불편해 하지는 않는지..상처를 받지는 않았는지 신경 쓰는 사람...어떤 잘못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하루를 지나면서 나의 말과 행동을 되돌이켜 보면서 성찰하는 사람...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안중에 없는 사람이 싫다.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다른 사
“지금 몇시고?”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채 먼저 일어나 놀고 있는 여섯 살박이 큰 놈에게 물었다. ‘음~ 8시 90분이야 엄마“. ”음..7시45분이군..“그러자 킥! 웃음이 났다. 내가 여섯살 아이의 세게와 소통할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행복’이란 단어와 아주 멀리 있었다.누가 “행북한 하루~”하고 인사하면 거부감으로 닭살부터 돋았으니까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삶이 행복할까?30평대 아파트 한 채 값? 유학 갈 자금?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돈?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많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겠지. 그런데 그 기준이 있긴 한 걸까?모두가 가난한 동네에서 특별히 더 가난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내가 가난하단 걸 전혀 모르고 자랐다. 다 자란 다음에야 ‘비교의 대상’이
언젠가 늦둥이 엄마들이 애 학교 보낼 즈음에 얼굴에 보톡스 주사를 맞는다는 기사를 봤다. 자칫 쳐진 피부에 뒤쳐진 패션으로 아이와 동행했다가는 할머니 소리 듣기 십상이라서, 보톡스 주사를 맞아 쳐진 피부를 당기고 간혹은 볼에 지방을 살짝 넣어 통통하게 보이게하는 시술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나역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둔터라 ‘아이가 학교갈 때 즈음에는 나도
“행복해져라.”직장을 그만두려는 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다였다.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근 이년간 잊을라 치면 번번이 터져 나오던 ‘이놈의 직장’이었다. 내가 참을성이 좀 있고 착한 심성이었으면 지치지 않고 응, 그래, 끄덕끄덕 해 줄 수 있었겠지만 결국 “다시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마라”고 매몰차게 잘라 버렸었다. 공허한 토로, 어차피 되
얼마 전 취업을 앞둔 대학생 20여명에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한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1시간30분여의 강의를 정리하며 내가 한 말은 기자를 하든, 다른 직업을 갖든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키 큰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가장 문제에요.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