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구로 돌아와 일한지 이제 3개월째를 맞고 있다. 이런 글을 쓰게 되는 인연이 징하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고, 아무튼 자극은 된다. 2005년 9월 3년 조금 넘게 일한 일터를 그만두고 자칭 가정주부로 9개월 보내고 2006년 4월일자리를 찾아 경북 안동으로 가게 되었다. 경상북도청소년지원센터, 2년 계약직으로 청소년상담을 주 업무로 하는 곳에서 조금은
요새처럼 매서운 한기가 느껴지는 겨울날이면 아직 총각인 남자후배들로부터 여자친구를 소개시켜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매일 결혼을 독촉하는 부모님의 짜증나는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에서부터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에 너무 외롭다는 이유까지 후배들의 구혼사유는 그 절박함만큼이나 간절하다. 먼저 결혼한 사회복지사 선배를 바라보는 후배의 눈
지난 10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사회복지 관련 우두머리는 모두 모였다. ‘투명사회협약 체결’사회협약은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기에 이러한 협약이 발표된 것이 무진장 반갑다. 그런 한편으로 협약과정이 금시초문이라는 내 무관심과 그 동안 우리의 살림에 무슨 문제가 그리 많았기에 이러한 협약을 끌어내야만 하는 지 안타까움도 있다.협약내용은
난 처음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기도 전에 종합사회복지관이란 곳에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하였다. 졸업식날 희비가 엇갈리는 졸업 동기생들 사이에서 난 약간의 우쭐함과 부모님에 대한 당당함으로 졸업식장을 누비벼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새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관에서 일을 한지 10년째가 되었고, 3일간의 고심 끝에 더이상의 고민 없이 새로운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종사자, 선생님, 여태까지 스스로 또는 다른 이들에게 불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름이다. 택시를 타 ‘형곡동 장애인복지관이요.’하면 기사님이 복지관 직원이냐고 물으며 건네는 말이 ‘좋은 일 하네요.’라는 말이었다. 그 때마다 나의 대답은 ‘좋은 직업을 가졌지요.’였다. 주위 분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임무를 수행하듯 그들
사회복지 현장경력 7년 10개월. 벌써 만8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처음 자기소개서에 ‘내 나이 서른에는’이라는 주제로 서른 살까지는 복지사로서의 내 삶에 무슨 결론을 내더라도 내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으로 몰두 했었는데, 벌써 내 나이는 서른 하나를 넘기고 있다(헉~). 그러면서 지금은 일꾼 복지사라기 보다, 기관을 책임져야 하
사회복지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남을 도와주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대는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의 자격증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청춘의 혈기는, 사회복지수급권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사회복지현장으로 뛰어들게 하였다.
2000.5.18일자로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시행되기 얼마 전 서울에서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의 동사무소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여건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동사무소의 사회복지 업무는 공공부조의 최일선 행정기관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기초법
몇 년전 후배 사회복지사들과 상대하기 어려운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후원물품을 받지 못할 경우 복지관을 찾아와서 눈물로 호소하다가 급기야는 큰 소리를 내며 항의하는 재가복지서비스 대상자를 사회복지사들은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저 역시 갖고 있습니다.복지관이 위치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소문이 쉽게 나는 데다 특히 겨울
우리 사회를 들어다보면, 사회 속에서 거부당하기만 하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가? 도시개발의 미명아래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쫓겨나야만 하는 철거민, 주민등록도 없이 일자리와 먹거리를 찾아 전전하는 노숙자들, 7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술과 폭력 속에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일찍이 남편을 잃고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대비해 정신지체인 딸을 위해 평생
사회복지사의 고백이란 코너의 글을 요청받고 글쓰기를 미룬 지 2주일째다. 미뤄놓은 시간동안 거창한 고백이나 글들이 떠 오를리는 만무하지만, 맘 한켠에 계속 무거운 추를 달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든다. ‘사회복지사의 고백이라...과연 무엇을 고백해야하는가?’란 화두는 내 머릿속에서 온갖 이야기들을 고백화 시켜서 적절한 제목 만들기를 해 보고 있다.
나는 사회복지영역의 활동을 2년째 접어들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10년이상 한 길을 걸어가는 분들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고, 활동을 되돌아보며 정의내리기 보다 앞으로의 계획과 성취가 더욱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정의와 평가가 아니라 나침반으로 방향을 맞추어가는 조심스러움과 흥미로움으로, 이제 막 사회복지계의 활동에 발을 적셔가며 재미를 느끼고 종종 허
사회복지계의 미운오리새끼 청암노동조합입니다. 저는 청암 노동조합의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 청년입니다. "사회복지 개혁"을 목청껏 외쳤던 청암재단 노동조합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부칩니다. 작년 이맘때 보건복지부에 저희 노조위원장님이 항의 방문하러 갔습니다. 그 곳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재단에서 노동조합 만들면 시설할 사
『 기초생활 수급자로서 생계급여를 지급받는 조건부 수급자의 경우, 자유로운 의사가 아니라 관련 법에 의해 소정의 생계급여를 지급받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점, 참여과정에서 자활사업 시행주체로부터 ‘참여조건’(장소ㆍ근무시간ㆍ수당, 음주ㆍ근무지 이탈 금지 등)의 이행여부에 대한 감독을 받고 있으나 이는 생계급여 지급여부 결정 등 자활사업의
1. 클라이언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절대로 고개를 들지 마라.-> 아마도 가장 마음 약한 동료 복지사가 맞이할 것이다. 아무도 상담하려 하지 않더라도 절대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마라. 클라이언트가 1분 이상 서 있으면 그래도 제일 마음 약한 사람이 일어날 것이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면 바쁜 척 해라. 전화 수화기를 들고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한지도 어언 9년이 되어 간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이번처럼 진지하게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면서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고민과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건만, 이렇듯 진지한
2000년 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늘 어리게만 느끼며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가던 필자는 대학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은 있지만, 이제부터 평생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생각하니 내 스스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 둔
[사회복지사의 고백 1]...진정성 있는 맘으로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 [과감히 NO라고 말할 수 없는 우리의 현장]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나는 진정 사회복지 활동가로써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새롭게 복지운동을 시작하면서 갖는 고민이다. 과연 일상에 안주하는 획일적인 삶을 살 것인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매개체로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