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인 대구, 더 심한 법조” - 정재형

평화뉴스
  • 입력 2004.09.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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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구는 폐쇄적이라고 한다. 그럴까?
필자가 보기에 정말 그렇고 법조는 더하다. 대구 경북지역을 관할하는 대구고등법원 산하에 1심 법원은 대구지방법원 본원과 포항, 경주, 김천, 안동, 상주, 의성, 영덕지원이 있고 각 법원에 대응하여 검찰(지)청이 있으며, 변호사도 법원 단위로 산재되어 있다.

대구·경북을 관할하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320여명이 있고, 이 중 260명정도가 대구 본원 즉, 범어동에 몰려 있다. 특히, 대구에 사무소를 둔 변호사 중에서 필자가 알기로 대구·경북 출신이 아닌 변호사는 딱 1명 뿐인데, 이 분은 처가(妻家)가 대구에 있다.
이것만 보면 대구 출신 변호사는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이 유달리 강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검찰은 인사를 전국 단위로 하기 때문에 검사들의 지역분포가 고른 편이지만, 법원은 통상 고등법원 관할지역을 기준으로 인사를 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 출신의 편중도가 높다. 게다가 경향교류를 포기하고 일정한 고등법원 관내에서만 근무하기를 원하는 속칭 ‘향판’이라고 부르는 지역법관 제도가 있는데, 그 비율도 대구법원이 전국에서 제일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출신들로만 구성된 대구 재야법조에서 생활하면 장·단점이 있다.
고향, 출신학교를 따져보면 전부 선배 아니면 후배, 동기로 엮여져 있어서 변호사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상대적으로 더 친밀한 편이다. 그런 탓에 대구 변호사는 튀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자연히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정과 비리에 있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또, 소송행위에 있어서 지나친 무리수를 두지도 않는 편이다. 인구, 경제규모에 비해 변호사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기 때문에 변호사의 보수도 제일 낮은 편이고, 그래서 대구시민들은 싸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몇 년 전 대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분이 대법관으로 추천되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때 국회의원이 “개업 중에 수임료를 얼마 정도 받았느냐”고 질문했는데, 그는 “약 250만원 정도 받았다”고 답하자, 국회의원들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 적이 있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대구 변호사는 다들 그 정도밖에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국회의원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나쁜 점이 더 많다.
다른 지역 출신 판사.검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도시가 바로 대구다. 몇 년 전 대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법관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경남 출신이었다. 그는 대구법원으로 부임해서 근무하면서 대구 법조인들로부터 ‘밥 같이 먹자’고 제의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면서, 같은 경상도 출신인 자신도 대구에서는 ‘왕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 출신들은 어떨지 말할 필요조차도 없겠다.

또, 다른 지역에서 개업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대구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와 보면 상당한 텃세를 느낀다고 한다. 얼마 전에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체의 사장이 사건을 의뢰한 적이 있었다. “부산에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되지 구태여 대구까지 와서 변호사를 선임하느냐”고 물어보니, “대구법원은 텃세가 심해서 다른 지역 변호사를 선임하면 사건에 있어서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판사가 소송대리인의 출신까지 고려해서 판결을 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런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대구 사람들이 자신들의 배타성에 대해 전혀 무감각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대구지역 재야법조가 지역 인사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대구사람들이 유독 ‘고향 회귀적’인 것이 아니라, 대구는 타지역 출신들이 발을 붙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그렇게 배타적인 집단이 되어 버렸을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대구는 전통적으로 인적자원이라는 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워낙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끼리만 모여도 모든 것이 가능했고, 중앙의 권력이나 정보를 받을 수 있는 통로도 많아서 타지 사람들을 구태여 끼워줄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끼리만 모여도 계를 만들 수 있고, 공도 칠 수 있으며 고스톱을 치더라도 광을 팔 사람까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서 잘 되었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속칭 ‘전라도 정권’이 재생산되니 대구 사람들은 불안한 것 같다. 예전에는 주위 몇 사람만 동원하면 권력 내부의 고급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통로가 막혀버려 부득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정보에 의존하고 그들의 손을 빌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속칭 TK라는 사람들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들만의 불안감이 보수 언론의 선전.선동을 통해 증폭되어 대구의 갑남을녀까지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권력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한 대구의 영세민들조차도 몇 십년간 고이 지켜온 자존심에 상처 입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지역내총생산지수(GRDP)가 전국 최하위를 달리는 대구사람들이 서울 강남에 사는 대한민국 5%에 속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정치적 정서를 가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위와 같은 TK와 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일부 언론의 선전.선동 때문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지방 호족들이 ‘경재소’라는 사무소를 서울에 두고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을 ‘경저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 정치적 지향을 보면 조선시대의 대구경북 경재소와 경저리가 서울 강남에 부활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다른 사람을 끼워주지 않고 우리끼리만 놀다보니 대구는 경쟁력을 스스로 상실해 버렸다. 또, 대한민국의 5%에 속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편이라는 착각 속에 살다 보니, 새로운 발전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변방 중의 변방으로, 흘러간 유행가만 틀어대는 고물 전축으로 한물 가버렸다. 게다가 (심지어는) ‘수구꼴통’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이제 대구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남이가?’라고 서로를 다독거리면서, 몇 년만 기다리면 빼앗긴 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대로 계속 살아야 할까?

*주: 이글에서 ‘TK’는 노태우정권 때 사용하던 뉘앙스로 읽으면 정확하고, 현재의 대구시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임을 밝힙니다.

정재형(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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