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기반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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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 "낡은 정치세력들의 영토싸움과 풀뿌리 정치의 새싹"


 지금 이 나라는 온 천지가 정치로 뒤덥혀 있다.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들, 정치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하루가 시작되고 또 하루가 저문다. 해군을 상대로 한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의 맨 손 저항과 밀양 신고리 마을주민들의 송전탑 설치 저지 투쟁도, 지난 몇 년 간 진보진영의 일상이 되다시피 했던 한미 FTA 반대 투쟁도 모두 정치에 포섭되고 있다.

 게다가 정치와 전혀 무관한 범죄의 영역까지 정치의 늪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기억만으로도 지난해 연말부터 비리로 물러난 공직자들이 한 둘이 아닌 듯 싶은데, 그 들 중에서 처벌은커녕 수사조차 제대로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공천장을 거머쥐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죄질이 나쁘고 비리의 규모가 큰 사람일수록 행방은 더 묘연한데 검찰은 느긋하게 딴청을 피우고 있고 언론은 이들에게 단 한 줄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다 끝난 걸로 알았던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검찰의 입을 통해, 출처불명의 '카더라 통신'에 의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BBK 수사과정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있었다는 외압과 회유,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현직 판사의 기소청탁,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 이야기...그러나 진전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이 모든 진실들, 유쾌하지 않은 음모들, 그로 말미암은 갈등과 원한들, 그에 따른 소모적 논쟁들이 앞으로 다가 올 두 차례 선거에서 모두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 사회가 오욕으로 점철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체제를 갖추고 정치질서를 재편하여 2013년에는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야당의 후보를 단일화함으로써 여야 1:1의 구도만 만들어지면 그것이 가능해질 것인가? 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그리 길게 멀리 나아가질 못하고 그 자리서 맴돈다.

 야권 연합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소야대의 정치질서 재편에 MB 정권에 대한 심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여소야대가 됨으로써, MB 정권을 심판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이 없다. 상상력이 뻗어나갈 동기를 여야 정치권 그 어디에서도 만들어주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서 보여주는 공권력의 무지막지함과 지난 참여정부 시절 평택에서, 부안에서 보여주었던 공권력의 무지막지함과는 어떻게 다른가? 재경부 장관 출신의 모피아를 교육부장관 자리에 앉히고, 또 그를 새삼 공천까지 하는 참여정부 출신 인물들의 교육철학과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이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FTA>와 MB 정권에서 비준 체결하여 올 3월 15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한미 FTA>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가 가진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쉽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난지도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다. 단 한번의 핵 발전소 사고로 이웃나라 일본은 지금 무거운 침묵 속에 반쪽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핵 발전소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천하태평이다. 보수야당과 정책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진보정당 역시 핵 발전소 문제에 대한 대응은 뜨더미지근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되겠지". "별일이야 있을라구...", "어차피 살기 힘든 건 매 한가지인데..." 상상력이 고갈된 정치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다. 이것이 정치가 모든 국민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가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정치 허무주의가 깊어질수록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입지는 늘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그래도 혼잡스런 틈새에서 한 줄기 빛을 본다. <녹색당>의 탈핵 농민 후보 박혜령 후보가 내건 단 한 줄의 슬로건 "이 땅을 제 2의 후쿠시마로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체르노빌, 후쿠시마의 기억을 토대로 유권자들의 상상력을 추동하는 정치를 박혜령 후보가 하고 있다. 절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자신의 삶터와 내가족을 지키려는 지극히 보수적이며 이기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정치가 다음 세대의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진보적 가치로 자연스럽게 이전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일을 설계하는 상상력에 기반하는 정치 아닌가?

 낡은 정치세력들의 영토싸움으로 끝날 뻔 했던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상상력에 기반한 풀뿌리 정치의 새싹을 우리는 박혜령 후보의 경쾌한 발걸음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경험에서 나오는 그의 진솔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다. 박혜령 후보는 20년 넘는 세월동안 퇴행과 퇴행을 거듭해온 87년 체제에서 건져 올린 한 줄기 빛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 땅을 핵없는 평화의 녹색땅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상상력은 경계와 장애물없이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기고]
김진국 / 대경인의협 <생명문화>연구소 소장, 신경과 전문의

( 이 글은 인의협 뉴스레터 109호, 2012. 3.15일자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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