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무엇이 불안한가" - 김두현

평화뉴스
  • 입력 2004.09.1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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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운동장, 어르신들의 불안감 그러나...”


새벽 5시면 어머니는 늘 집 근처 경북대 운동장을 찾아 새벽운동을 하러 가신다. 8시가 가까워져야 눈을 뜨는 나는 아침을 먹으며 어머니에게 요즘 세상 여론에 대해 듣곤한다. 물론 새벽 운동을 하러 오시는 분들은 대개 50대가 넘은 중년, 노년의 어르신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찍은 우리 어머니는 아침운동장에서 소위 ‘왕따’다. 운동을 하다 쉬면서 이분들은 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씹어댄다. 60이 넘은 어머니는 수적 열세에 무슨 체계적인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라 늘 듣기만 하신다. 즉 당하고만 오시는 것이다.

‘노무현이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 ‘운동권들이 정권을 잡아 나라가 절단났다’. ‘열린우리당은 빨갱이 당이다’ 이야기는 그나마 늘 들어오던 이야기라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6일 아침이었다. 어머니가 평소처럼 아침상에서 새벽운동장에서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나는 그만 드는 밥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노무현이가 대한민국을 김정일이에게 갖다 바쳤다’,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잡아 먹었다’

6일 아침 새벽운동장의 여론은 월간조선의 특집제목처럼 내귀에 박혔다. 이날은 5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이 TV대담을 통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발언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잡아 먹혔다(?)”

새벽운동장의 여론은 곧 공식화 되었다. 조선일보에서 건국후 최대규모의 시국선언이라고 표현한 지난 9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에서이다.

“아직 적화통일은 안됐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공산화됐다”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말이란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시장판’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경로당’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50대 이상의 세대에게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소위 원로라는 분들의 말씀처럼 경로당 어르신들의 넋두리처럼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었나’.

자칭 원로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니올씨다’이다.
대한민국은 오히려 건국이후 최대의 안정된 정치체제를 누리고 있다.
얼마전 어느학자가 말했듯이 군부의 구테타 가능성은 이제 제로에 가까울 정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군사독재시절 거리를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뒤덮게 했던 반정부시위는 거의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는 이제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서 정치세력의 교체는 이루어질지언정 혁명 - 그것이 좌익혁명이든 우익혁명이든 - 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것은 다름아닌 군사독재정권의 퇴출과 87년 6월항쟁이후 진행된 점진적 민주화에 의해 가능해졌다. 다시 말해, 이제야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제대로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작동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전체제 해체가 불안감의 근원"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에 참가한 자칭 원로들은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었다고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늘 따뜻한 아랫목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듯 하던 그들이 찬바람 불어오는 거리에 나와 낯선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 것일까? 기실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군사독재와 냉전체제에 의해 숨조차 쉬지 못할 때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쳤던 분들이 아닌가? 죽어가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군사독재의 총칼에 맞서 거리로 나설 때 외면했던 분들이 아닌가? 아니 외려 그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살해했던 자들과 한패가 되어 일신의 안일을 추구했던 분들이 아닌가?

그렇다. 그분들은 진실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본능적으로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그들이 기득권을 누려오던 냉전체제의 종말을 가져오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6월항쟁과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그들은 5년만 참으면 다시 자기들의 세상이 오리라 믿었다. 그러나 연이은 집권의 실패와 탄핵쿠데타의 실패는 그들에게 위기감을 가져오게 했다. 이제 국가보안법마저 폐지되면 그들은 지탱해오던 냉전체제 - 반공군사독재체제 - 가 밑바닥으로부터 해체된다는 것을 그분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

그래서이다.
그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결코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 잡혀먹힐만큼 허약하지 않다. 오히려 북을 반대한다는 그분들이 북을 필요이상으로 고무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이제 대한민국을 전복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경제규모가 20배이상 차이가 나고 우리의 군사비는 97년 북의 국민총생산에 달하고 있다.
북의 군사비 규모는 2000년 국방백서에 의하면 14억 달러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분들도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 앉아 남쪽에 있는 4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머릿속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을 고무찬양할 의도가 없다면(?) 그분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냉전의 유물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이제 스스로 나서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냉전체제, 반공독재체제의 대한민국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지 몰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 새벽운동장의 어르신들께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대한민국은 바로 여러분들이 논과 공장에서 흘린 땀과 노력, 여러분 자식세대가 거리에서 흘린 피와 눈물로 경제도 민주주의도 이만큼 성장해왔으니 이제는 좀더 열린 마음으로 북을 바라보시라고’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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