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총선 참가기

창비
  • 입력 2012.05.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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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오관영 / 반(反)정당의 정당, '녹색당 더하기'로 새롭게


내가 녹색당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이유는 나의 삶과 가장 일치하는 정치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학생운동부터 노동운동, 지금의 시민운동까지 30년 정도 사회운동을 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 창당부터 선거운동까지 녹색당원이면서 자원봉사자였습니다.

내가 좋은예산센터나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참여예산 등 납세자운동이라는 주제를 기본으로,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 성평등한 사회, 풀뿌리민주주의, 세계시민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내가 살고 있거나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동네에 주목하다보면 내 삶의 변화와 지역적 실천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은 녹색당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녹색당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생애 첫 당원이 대부분이고, 여성 당원이 더 많고, 청소년 당원도 있습니다.

반(反)정당의 정당, 제도와 현실의 차이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속기록을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개발' 1666건, '복지' 1376건, '기업' 1265건, '노동' 857건, '여성' 518건, '평화' 325건, '장애인' 263건 등이 검색되는 반면, 녹색당의 중요 가치인 '핵발전소' '탈핵' '재생가능에너지' '채식' '유기농업' '소수자' '동물권' '생명권' '토종 종자' 등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핵발전소'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소' 등 법적인 용어나 다른 단어로 검색되는 경우는 있지요. 나는 이런 가치와 의제들을 국회에서 논의하는 정당이 필요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국회에 진출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녹색당과 함께했습니다.

녹색당은 권력을 잡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풀뿌리민중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지향합니다. 처음 참여예산을 시작한 브라질의 뽀르또 알레그레에서 PT당(노동자당) 관계자를 인터뷰했을 때 이들은 "정치권력을 통해 민중을 위해 무엇을 해주겠다기보다는, 그 권력을 민중에게 다시 되돌려주려는 것"이 자신의 정치철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뽀르또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은 제도가 잘 고안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이러한 사상적 기반과 의지, 지역 주민조직들의 참여를 위한 노력이 결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녹색당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현재의 정당법과 선거법 등 제도가 강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현재의 정당법상 창당을 위해서는 5개 광역시에서 각각 천명 이상의 당원이 있는 지구당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창당 발기인 대회 이후 5개월 안에 창당해야 합니다. 녹색당의 가치와 선거운동 전략에 대해 밑에서부터 충분히 논의를 모아나가기에 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 녹색당은 숨이 찼습니다.

각종 정책은 최우수 평가를 받았지만

선거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선거법에 따르면 SNS에서의 유권자 표현의 자유는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선거운동이 행해지는 현장인 오프라인에서는 녹색당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역구 후보가 없는 녹색당은 지지를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방송토론도 기존 4개 정당만 대상으로 하고 녹색당 같은 신생정당은 끼워주지 않습니다. 선거자금을 모으는 후원회도 둘 수 없고 국고지원도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알고도 창당하고 선거에 참여한 이유는 녹색당의 가치를 선거공간에서 알리고 유권자의 지지를 모아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녹색당의 탈핵 등 에너지정책, 동물권 등 생명정책, 농업기본소득 등 농업정책, 비정규직 등 노동정책 등은 각종 평가기관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현행 선거법에서는 없습니다. 이번 녹색당의 성적표는 이러한 제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녹색당의 지향과 현실의 제도정치 사이에 간극이 컸고, 제도정당으로 등록하면서 현실의 제도적 틀이 강제하는 힘이 녹색당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했습니다.

녹색당이 이번 선거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 오로지 외부의 제도 탓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녹색당은 기존 제도정당의 장벽에 균열을 내는 녹색당다운 소통방식, 선거운동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평가를 하면서 아픔도 있고 상처받는 이도 있습니다. 다만 결과가 안 좋을 때 평가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는 앞으로 녹색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 많은 지혜와 노력을 모아나가자는 것입니다.

‘녹색당+(더하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녹색당은 우리 사회에서 탈핵과 농업, 생명권 등을 이야기하는 국회의원이 한명쯤은 있는 국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제도정치는 이러한 녹색당의 꿈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0.48%의 득표이고, 정당등록 취소입니다. 해산이 아니라 정당법상 2% 득표를 못해 등록이 취소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좌절하는 당원도 있고,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당원도 있습니다. 녹색당의 가치에 동조하는 유권자가 10만명이나 된다고 기뻐하는 당원도 있고, 이웃나라 일본의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보고도 탈핵에 동의하는 사람이 10만명밖에 안되는 나라, 친(親)원전 인사가 비례대표 1번인 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치현실에 절망하는 당원도 있습니다.

정권심판이나 선거연합 등은 녹색당의 선거 평가 키워드가 아닙니다. 이러한 평가는 권력을 잡겠다는 정당들의 평가기준입니다. 녹색당은 수명이 지난 고리 1호기를 지금 당장 폐쇄하겠다고, 지금부터 원전을 줄여 탈핵사회로 가자고, 성장과 경쟁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하고 가난해도 더불어 같이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농업을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이상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녹색당을 만들었고, 이것이 선거에 참여한 이유입니다. 녹색당이 선거 결과에 절망하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녹색당 더하기’는 등록이 취소된 녹색당의 새로운 당명입니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와 사람을 모아나가겠다는 도전과 실험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비주간논평]
오관영 / 좋은예산센터 상임이사

[창비주간논평] 2012-5-2(창비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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