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명당…여자들 몰려온 곳'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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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넝쿨당」,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관련 사실도 잘못


부처님 오신 날을 이틀 앞둔 지난달 5월 26일. 우리 일행(‘돌과 함께 하는 문화’ 답사팀)은 ‘생명문화축제’가 막을 내린 경북 성주군 월항면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제444호. 문화재청이 밝힌 정식 이름은 ‘성주 제종대왕자 태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대구와 가까운 곳이어서 늦은 봄의 경치도 즐길 겸 일행은 이번에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로 다사역에 내려 거기서 성주 가는 버스(250번)를 타고 성주읍정류장에 도착해 세종대왕자 태실로 가는 차편을 정류장 매표소에 알아봤다. 매표원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오늘은 태실 가는 차를 묻는 손님이 와 이래 많은지 모르겠네.” 궁금증이 발동했다. 일행 중 한 사람과 매표원의 문답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어떤데요?” “평소에요?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넝쿨당' 드라마 방송 후 관심 '수직상승'


우리 일행은 성주읍 버스정류장에서 초전 가는 버스를 탔다. 처음에는 길을 헷갈려 월항면 가는 버스(왜관행)를 탔는데 그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를 잘못 탔으니 기다렸다가 초전면 가는 버스(김천행)로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초전면에 도착한 일행은 택시로 갈아탔다. 20분도 채 되지 않는 태실로 우리를 태워 간 운전기사는 가는 길에 내내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자랑을 한껏 했다. 그곳에서 성주군수가 ‘생명문화축제개막식’을 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애향심이 진하게 묻어났다(영남일보 5월 18일 8면(경북)보도를 보면 태실에서 열린 것은 ‘생명선포식’이었다). 성주 사람들 입을 통해 우리 일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 태실에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일행이 24년 전(1988년 9월 초순) 첩첩산중 적막 속에 누워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세종대왕자 태실을 이미 답사한 사실이 있어 쉽게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그 방향을 살펴보자.

<영남일보> 2012년 5월 18일자 8면(경북)
<영남일보> 2012년 5월 18일자 8면(경북)

매표원이나 택시기사 말대로 태실 아래 주차장엔 관광버스며 승용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솔밭 사이로 난, 태실로 오르는 야트막한 언덕길도 태실로 올라가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으로 여느 관광지 못지않았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아니지만 해설을 해 줄 수도 있다는 분도 만났다. 태실 외엔 별로 공간이 없는 태봉 정상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 일행은 계단을 오르면서, 또 태실 돌난간을 돌아보면서 관광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고 또 말도 건넸다. 그것도 이번 답사의 좋은 소득이 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관광객들의 대화내용, 주차장에서 아이스크림이며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아주머니들, 관광객 안내 부스를 지키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다음과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향 빗나간 스토리텔링 시작

△4월 28일 KBS 2TV에서 주말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쿨당’, 19회)에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소개된 이후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 태실에서 기를 받으면 임신한다고 해서 왔다.
△기를 받고 빌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
△세종대왕의 왕자들 태실을 묻었으니 명당 중에 명당이 아니겠나.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현장의 담론은 △명당, △기 받기, △임신 기원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런 담론은 왕실의 태실 관련 행사를 성주군이 기획하면서 유도되어 만들어진 것. 1988년 당시 태실을 답사했을 때 농로와 논두렁, 산비탈길을 헤치고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성주군 문화공보실 담당 공무원은 그저 태실이 있다는 사실, 태실수호사찰인 선석사의 유래와 같은 현장 정보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 태실에 △명당, △기 받기, △임신과 같은 스토리가 얽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시각에서 보면 참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태실을 찾은 관광객들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에 놀란 우리 일행은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으로 「넝쿨당」(19회, 4월 28일 방송)을 검색했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태실로 향하게 한 「넝쿨당」의 태실 관련 영상과 대사는 이랬다.

KBS2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홍보사진과 19회(2012.4.28 방송) 장면. 할머니(강부자 분)가 "그저 금년 안에 건강한 애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어라"고 말하고 있다 / 사진 출처. KBS2 드라마 화면 캡처
KBS2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홍보사진과 19회(2012.4.28 방송) 장면. 할머니(강부자 분)가 "그저 금년 안에 건강한 애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어라"고 말하고 있다 / 사진 출처. KBS2 드라마 화면 캡처

장면
△태실로 가는 야트막한 계단을 오르는 장면.
△태실 돌난간을 도는 장면.

대사
손자며느리(김남주)  아-이, 길이 너무 좋아요 할머니.
할머니(강부자)  그렇지 길이 좋지.
손자(유준상)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할머니(강부자)  어- 여기 저기 인제 가보면 알아 어서 와 어서 와 어서들 와.
손자며느리(김남주)  무슨 문화잰가 봐요.
할머니(강부자)  어-, 여기가 세종대왕 자태실이라는  곳이야, 여기가
손자(유상준)  그게 뭐야 할머니.
할머니(강부자)  어- 그러니까, 세종대왕 임금님의 열일곱 왕자님의 태가 묻혀 있는 곳이지 여기가.
손자며느리(김남주)  어-, 신기하다 그러니까 애기 태어날 때 탯줄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할머니(강부자)  그렇지 그러니까 묘에만 명당이 있는 게 아니구 이  태를 묻는 곳에두 명당이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여기가 명당 중에 명당이란 말이여.
손자며느리(김남주)  녜-.
할머니(강부자)  그러니까 예로부터 전국각지에서 애를 가질려구 하는 여자들이 이냥 여기루 몰려가지구 부처님께 기도 올리구 기를 받아가지구 가구 그랬단 거란다.
손자며느리(김남주)  녜-, 녜?
할머니(강부자)  경건한 맘으루 기를 받는다 생각하구 그저 금년 안으루 건강한 애기 하나 낳게 해 달라구 어- 빌어라 여기 다녀간 여자 치구 애 안 가진 여자 없다잔냐 너희들이 애를 낳아봐야 부모 심정도 알구 그래야 진짜 이제 어른이 되는 거다. 에이구.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을 찾은 관광객들의 대화는 바로 「넝쿨당」의 대사 복제판이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성주 태실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서울 경복궁에서 서울시-성주군 공동으로 세종대왕자 태실 태 봉출 재현행사가 치러지기 시작한 때부터니까 대략 2010년 전후의 일이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드라마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왕실의 태실 문화를 고리로 한 우리의 생명존중 전통문화, 세조의 왕위찬탈과 관련한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소중한 유적이 소개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로 판단된다. 성주가 역사유적의 고장, 생명문화의 고장으로 소개돼 많은 관광․탐방객들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소득도 만만찮을 것이다.

첫 단추부터 빗나가

문제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아무도 찾지 않던 첩첩산중 유적에서 전 국민에게 활짝 소개되는 초입에서 세종대왕자 태실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사실도 왜곡되게 소개됐다는 것이다. 왕실의 태실문화를 통해 우리의 생명존중문화 전통이 확인되고 그에 대한 관심을 깊게 하는 현장이 되어야 할 태실이 ‘기를 받고’, ‘빌면 임신이 되는 곳’, ‘명당 중의 명당’으로 왜곡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넝쿨당」이 세종대왕자 태실을 초입부터 기복의 대상으로 소개했고 그에 따라 복 비는 장소로 알고 찾아오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태실 곳곳에 촛불이 켜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넝쿨당」에서 할머니(강부자)가 “경건한 맘으루 기를 받는다 생각하구 그저 금년 안으루 건강한 애기 하나 낳게 해 달라구 어- 빌어라 여기 다녀간 여자 치구 애 안 가진 여자 없다잔냐.”란 대목이나 “그러니까 예로부터 전국각지에서 애를 가질려구 하는 여자들이 이냥 여기루 몰려가지구 부처님께 기도 올리구 기를 받아가지구 가구 그랬단 거란다.” 대목은 마치 세종대왕자 태실이 빌면 임신이 되는 영험 있는 명당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사실과 너무 거리가 있고, 왜곡된 허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대사다. 오히려 태실 현장은 피 비린 내 나는 왕위 찬탈, 무도한 권력, 백성들의 비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세조의 심복이었던 홍윤성이 세조(진양대군)의 태를 이곳에 묻었다는 내용의 글을 새겨 세조 장태비 앞에 세운 비석은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무도한 세조를 미워한 백성들이 오물을 끼얹고 돌로 갈아버려 지금은 글자 한 자 보이지 않을 만큼 반들반들하게 돼있어 왕조 시대에도 백성들의 마음이 어디로 쏠려 있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런 점을 스토리텔링 했어야 하지 않을까. 성주군의 찬조를 받는 「넝쿨당」제작진으로서는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성주군의 바람을 이렇게라도 반영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1988년 답사 당시 태실 일대는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첩첩산중이었고 최근에야 아스팔트길이 닦여 접근이 쉬워진 사실을 고려하면 이곳이 ‘영험 있는 곳’ ‘여자들이 몰려왔다’는 대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열일곱 왕자님 태실" 잘못

「넝쿨당」은 또 세종대왕자 태실을 제대로 소개하지도 못했다. 극중에서 할머니(강부자)는 “어- 그러니까, 세종대왕 임금님의 열일곱 왕자님의 태가 묻혀 있는 곳이지 여기가.”라고 하는데 태실에는 단종의 태실을 제외하고도 18기가 수습돼 있다. 17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성주군이 과거 발행한 책자(『내고장 성주』, 1985.)에는 원래 이곳에는 단종을 포함한 20여기의 세종대왕자 태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 찬탈에 반대한 왕자들의 태실을 파괴하면서 13기만 남긴 것을 1975년 문화재 지정 당시 산 아래 굴러 떨어져 있던 석물들을 수습해 19기로 단장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물론 성주군이 발행한 앞의 책자도 단종태실과 관련해서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지방 브랜드' 자리매김 노력 절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 주관하는 다양한 축제행사는 경쟁력 있는 지방 만들기에 큰 몫을 하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지방의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지방을 넘어 국가를 알리는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이 ‘기를 받고’ ‘빌면 임신하는’ ‘명당’으로만 소개된다면 우리 역사 속에 면면이 이어온 소중한 생명존중의 문화는 설 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세종대왕자 태실이 상징하는 우리 역사 소용돌이의 실타래를 기복의 현장과 관련해 풀어나가는 것이 과연 가당하기나 할까.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 축제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담론의 성격, 역사 유적을 국민과 내외국 관광객들에게 풀어갈 스토리텔링의 판짜기가 무형의 지속적인 관광자원이 된다는 점에 이제 눈떠야 할 때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관련 담론/스토리텔링은 매우 진부하고, 퇴행적, 부정적이다. 사실(史實)이 뒷받침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KBS 2TV로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을 글로벌시대와 소통하는 진정한 생명문화 스토리의 현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성주군과 KBS, 그리고 지역주민의 참여가 사실(史實)과 접점을 이루는 방향전환이 진지하게 검토되기를 바란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86]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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