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타이타닉, 대구”

평화뉴스
  • 입력 2004.09.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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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덕률의 시사칼럼 32 >
“두달 넘긴 지하철 파업, 신뢰 잃은 버스요금, 대책 없는 대구시...”


지하철 파업이 오늘로 62일째다. 두 달을 넘긴 것이다. 지하철파업 사상 최장기록을 세운 지 이미 오래다.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곤혹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끔씩 노사가 만나 협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성과없이 끝났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고는 노사간 불신과 갈등이 더 깊어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필자가 걱정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렇게까지 돼도 별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파업이 석 달을 채우든, 아니 일년을 채운다 한들 그런가보다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노사협상이 다시 시작된다 해도 별로 기대하지 않겠다는 무관심이 저변을 흐르고 있다. 부산과 인천의 지하철 파업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잠시 대구는 왜 이러나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 대구시민들 반응은 대개 무덤덤이고 시큰둥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구시민들마저 대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대구 밖의 사람들이야 대구를 포기한 지 꽤 됐지만, 그래서 대구에서 지하철 파업이 두 달을 끌든 석 달을 끌든 아예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기 시작한 지도 이미 오래 됐지만, 이제는 대구 사람들 자신까지 대구는 정말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담담한 분위기와 저변의 무관심도 실은 초월과 여유의 결과가 아닌 실망과 포기의 결과인 것이다.

필자 보기에도 지하철 참사가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지하철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와 사가 저렇게까지 하고 있는걸 보면 이제는 그냥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한 때는 답답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으며 분노도 치밀었지만, 이제는 쳐다보기도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대구시는 또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구시는 대체 왜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250만 대구시민의 안전과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이 참에 누구든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벼르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도 그런 대구시를 지켜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흥분하고 실망하는 나 자신이 딱해진다. ‘역시 대단하다’, ‘또 그런가 보다’, ‘구제불능이다’는 생각 뿐이다.

얼마 전, 대구시는 또 버스 요금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시민의 심사를 건드렸다. 대구시민의 심사 정도야 애초부터 고려 사항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요금인상도 인상이지만, 그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또한 신뢰할 수 없는 용역 보고서에 기초해 있다며 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있다. ‘당연히’ 대구시는 ‘너희들 떠들어라’ 하는 정도다. 역시 대구시는 ‘대단하다.’

‘대단한’ 대구시 덕분에 대구 분위기는 해가 다르게 가라앉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 표정들이다. 의욕도 잃고 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갈수록 가라앉고 있는데도 별 뾰족한 대응도 안보인다. 무슨 수라도 내야 될 시 행정의 책임있는 사람들도 늘어져 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늘 중앙정부 타령이고 시민 탓이다.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따로 놀기만 한다.

시민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대단히 경직되어 있다. 마음을 열려고 하지도 않는다. 옛날부터 해오던 관행과 무사안일에 묻혀 있다. 역사적 사명감도 찾기 힘들다. 21세기의 화두인 유연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민사회와 함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그들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마인드도 없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아직도 공직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전문가를 찾아 의견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행정에 있어서 전문가는 귀찮은 들러리일 뿐이다. 시대가 그렇다니까, 중앙정부가 요구하니까 마지못해 민관협치 기구, 거버넌스기구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실은 귀찮아하는 내색이 역력하다. 왜 그런 걸 해야 하는지 철학도 문제의식도 없다. 좀 달라지자고, 열심히 하자고 설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건 ‘그래, 너 잘났다’, ‘잘난 척 한다’, ‘네가 뭔데 설치냐’ 하는 식의 저급한 비아냥이다.

가라앉는 타이타닉호를 보는 느낌이다. 선장과 선원들과 승객들은 타이타닉의 침몰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가 탄 배가 가라앉고 있는 사실도 잘 못 느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한다. 배를 지켜야 할 선장과 선원들, 그들은 아마 배가 가라앉아도 살아날 수 있는 보트 한 척씩은 갖고 있는 모양이다. 저토록 태평하니 말이다.


홍덕률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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