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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왜 미국식 로스쿨인가?" - 정재형
"고가의 등록금, 대학강좌의 로스쿨 입시화...로스쿨제도의 부작용도 걱정해야"
2004년 10월 16일 (토) 09:50:03 평화뉴스 pnnews@pn.or.kr

얼마 전 사법개혁위원회는 사법개혁의 하나로써 법조인 양성방식을 종전 ‘사법시험-사법연수원’에서 ‘미국식 로스쿨’로 바꾸겠다고 밝혔는데, 대중매체는 위와 같은 바뀔 내용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미국식 로스쿨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젊은 구직자의 관점에서 법조인 자격취득은 소위 ‘한탕주의’라는 매력이 있고, 법조직역은 항상 수요초과 상태여서 정원을 늘여도 그 이상 수요가 증가한다는 특성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이면 문과생이면 대개 ‘법대’를 선호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법대생이면 당연히, 비법대생이라도 한 번쯤은 ‘사법시험’을 생각하게 된다.

사회는 다원화되고 대학생들의 사회진출도 다양화되어가고 있는데, 유독 사법시험이 모든 대학생(특히 명문대학 일수록 심하다)의 화두가 될까?
이 현상을 솔직히 분석하면, 법률이나 법률가의 업무가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가 우리사회에서 누리는 특혜 내지 ‘경제적 렌트’가 선호된다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당연히 법률가가 누리는 특혜가 존재하는 한, 법조로의 진입압력은 끊임없이 존재하고, 이것은 로스쿨제도가 시행된다고 하여 해소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와 같은 쏠림 현상을 제거하려면 법률가가 우리사회에서 누리는 경제적 렌트만 제거하면 누구나 법률가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방법도 간단하다. 판사나 검사의 직급을 하향 조정하고, 변호사의 공급을 법률서비스 수요총량 이상으로 늘여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전문직’이라는 개념이다.
전문직에 대하여 Carr-Saunders와 Wilson 그리고 Freidson의 견해에 따르면, 전문직업은 ‘특별한 훈련에 의해 얻어지고 사회에 대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며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는 지적인 기술’이라고 하고, 전문직의 특성으로 ‘전문화된 기술과 훈련, 전문직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이나 보상, 자발적 결사조직, 윤리강령, 그리고 숙련된 서비스나 자문을 제공하는 업무내용’ 등이 개념적 징표로 들어진다.

위에서 보듯이 전문직은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개념인데도 전문적 ‘독점’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징표를 함께 지니고 있다. 즉 타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실상의 전문성과 함께 진입장벽을 법제도로써 허용하는 한편 반대급부로써 고도의 공익성, 직업윤리와 사회봉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법개혁의 한 부문으로써 법조인 양성방법 변경 논의가 위와 같은 전문직업인의 특성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현재 사법개혁의 논의는 그동안 법조인들이 누리던 특혜(경제적 렌트)를 없애는데 집중된 것이 아니라 법조인들의 전문성과 전문적 독점을 없애버리는데 집중되었으며, 진입장벽의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만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법조인들이 제공했다는 것을 필자는 부인하지는 않는다.

미국식 로스쿨을 지지하는 가장 큰 논거는, 로스쿨의 입학자들이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상태로 로스쿨에 입학하므로 법률가들의 사실관계 인정에 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어 법조인의 경쟁력이 고양되고 사법시험 때문에 황폐화된 법학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대학의 법과대학을 존치한 가운데, 법조가 누리는 특혜를 그대로 둔 채 로스쿨을 만든다면 학부에서의 법학강의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의 강좌가 로스쿨 입시학원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로스쿨제도..."기층 민중의 이익은 무시되고 법조개혁의 변죽만 울린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 법조인들이 누리던 특혜...집단의 이해타산을 떠나 진정한 사법개혁을 고민해야"


국제 경쟁력과 관련하여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의 독특한 법문화를 형성하는 문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미국식 제도로 편입되어 버리자는 천박한 수준의 논의는 그만하기로 하자. 필자가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당시는 IMF가 닥친 상황이라 변호사개업이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연수생이 행정부로 가기를 원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인재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채용 규모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300명으로 제한할 때도 그러했는데 합격자가 매년 1,000명씩 배출되는 상황에서 사법연수원 졸업자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어떠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기존 송무 위주의 법률시장이 임계점에 이른 시점에서 사법시험을 통과한 사람도 외부로 눈을 돌려야할 상황이 닥쳤거나 곧 닥칠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법률서비스의 전문화와 국제화, 대중화라는 명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로스쿨이 아니면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로스쿨제도를 도입할 경우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통계를 내보지 않았고 그런 통계도 본 적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군을 비교하여 법조인만큼 부모의 직업이 다양한 직업군은 없을 것이다. 즉 법조인은 부모가 농사를 짓던, 영세민이던, 재벌이던 법조인이 되는데 어떠한 제도적인 가산점도 사법시험제도에는 없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사회통합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사회의 정점에 속하는 직업군 예컨대 대학교수나 정치인, 기업가가 되려면 적어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고, 나아가 그러한 유산이 없으면 대개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정도는 기성세대면 대충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그러한 부정출발은 없다. 이것이 사법시험제도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이것이 민간의 영역에 맡겨진다면 법조인 선발에 있어 완전경쟁적인 구조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적어도 대학 4년과 로스쿨 3년간의 거액의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계층의 자녀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없는 집 자식이 공부만 잘해서 ‘영감’이 되는 것이 배 아팠는데 잘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법개혁을 조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위와 같은 점에 대해서는 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을 시행할 경우 그 경비는 모두 수익자부담으로 돌아갈 것이고(현재 사법연수원은 학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연수생들은 모두 봉급을 받고 있다). 커리큘럼에 있어 ‘파킨슨법칙’이 적용될 것이다. 현장에서무익한, 대부분의 법조인에게 무용한 강좌가 남설되고 그 부담은 모두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될 것이다.
또 제한적으로 로스쿨의 설립을 허가할 경우 로스쿨의 운영이 대학의 입장에서는 존립을 다투는 이권이 되고 그것을 둘러싼 대학간, 지역간, 교직원 사이의 갈등이 불거질 것이며, 로스쿨 사이의 서열이 매겨지고 그 서열을 둘러싼 줄서기와 관련한 사회 갈등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이점에 대해 사법개혁위원회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 대학입시제도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도입한 이래 대학입학시험 방식을 몇 년 마다 바꾸어 왔다. 그런데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 사교육의 비대, 대학서열화 등의 문제는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고 더 심화, 확대되었을 뿐이다. 대학을,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인간대접을 받는다는 학부모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절실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명문대학 졸업자만을 구매하는 기업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으로 가는 문을 어떤 식으로 꼬아놓아도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사법개혁, 법조인의 양성도 같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조인의 총량을 파악하여(계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한 번도 위와 같은 연구결과를 본 바가 없다) 법조인이 불로소득을 누릴 수 없을 만큼 선발인원을 늘이면 되는 것이다.
즉, 대학 입학정원이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방식을 학력고사로 할 것인지 또는 수능시험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법조인을 몇 명이나 사회에 공급하는가의 문제 외에 법조인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법조인의 적정한 수에 관한 연구와 논의는 젖혀두고 미국식 로스쿨을 논하는 것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다.
법조인의 수를 늘이는 방법이 로스쿨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그 방편으로 로스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논의가 로스쿨을 둘러싼 여러 계층 이권다툼이 아니냐는 의심만 증폭되는 것이다. ‘미국’식 로스쿨제도는 기존 사법시험의 장점까지 희생하고, 거대한 비용을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면서 도입해야할 제도는 아니다.

사법개혁위원회의 이번 결정을 두고 느낀 소감은 이렇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진다는 진리처럼 기층민중의 이익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법조개혁의 변죽만 울린 것에 불과하다. 사법개혁의 본론은 어떻게 전개될지 감시해야 한다. 집단의 이해타산을 떠나 진정한 사법개혁을 해보자.

정재형(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구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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