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NLL지도 고의 왜곡 논란… 등면적 지도 알고도 묵살?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 입력 2013.07.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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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허위유포·이적행위" / 김경수 "국정원 모를리 없어" / 국정원 "답할 필요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남북경협 보고서에 NLL 기준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이 설정된 지도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정원이 불과 나흘 전에 발표한 자료에 기재된 지도가 허위라는 비판과 함께 무슨 근거로 국정원이 그런 지도를 그렸는지에 대해 의혹을 낳고 있다.

등면적 지도가 수록된 보고서 ‘남북경제공동체구상’의 존재에 대해 이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정상회담 준비회의, 실무회의 등에서 수차례 거론됐다는 점에서 회의에 매번 참석했던 국정원 간부들이 이를 몰랐겠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NLL과 서해어장을 포기하는 논의를 했다고 대국민성명을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지도가 담긴 보고서를 김정일 전 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는 회담 중 전달된 문건으로 정상회담 기록의 하나이며, 당시 전달된 세가지 보고서 가운데 ‘남북경제공동체구상’이라는 보고서에 수록돼 있다”며 “나는 그 보고서 중 지도만 (당시 회담 관계자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연설기록비서관을 하면서 노 전 대통령 회의와 발언을 기록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자료 세 권은 기록관에 비공개 일반문서로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NLL 기준 등면적 지도. 윤호중 의원 공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이른바 NLL 기준 등면적 지도. 윤호중 의원 공개.

이 지도를 보면 정상회담 회의록에 ‘NLL을 기준으로 등면적에 해당하는 구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한다’는 언급은 전혀 없었다는 국정원 주장과 달리 백령도 서북방과 동방, 소청도 동남방, 연평도 서방 등지에 걸쳐있는 NLL을 기준으로 사각형을 그려 이 곳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지정하도록 그려져 있다.

그러나 불과 나흘전 국정원이 대변인 성명에 수록한 지도를 보면, 강화도 위쪽 휴전선(군사분계선) 각도를 따라 서해상에 서남방 쪽을 향하는 사선으로 직선을 그어놓은 곳까지 우리 해군이 물러서는 반면, 북한은 기존 NLL 북방에 그냥 있는 것으로 표시돼 있다. 남북 정상이 서해 5도와 군병력(해병대)가 있는 서해를 몽땅 북에 갖다 바치는 것으로 인식되도록 그려놓은 것이다.

김경수 본부장은 “이런 지도 자체는 정상회담 전후로 본 기억이 없는 지도로, 김정일 위원장 얘기를 지도로 완전히 옮겨놓은 지도”라며 “과연 국정원이 누굴 위해 일하는 조직인지 의심케하는 지도”라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는 국정원이 회의록 텍스트만 발췌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도와 그림까지 왜곡한 것으로, 정상회담과 완전히 다른 지도를 만들어놓아 버렸다”며 “이는 NLL 정도가 아니라 서해바다 전체를 내어준다는 식의 지도로 어떻게 얘기해도 설명이 안되는 지도”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이 대변인 명의로 지난 10일 발표한 성명에 작성해놓은 지도.
국정원이 대변인 명의로 지난 10일 발표한 성명에 작성해놓은 지도.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등면적 지도가 김 위원장에 전달된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국정원이 알고도 이번에 이런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는지, 아예 모르고 했는지도 사건의 실체를 밝힐 관건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국정원은 당시 회의록 내용을 근거로 대변인 성명과 NLL 지도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지도 밑에 “공동어로구역 설정시 우리 군함만 덕적도 북방선까지 일방적으로 철수하게 됨”이라고 썼다.

김경수 본부장은 이 보고서와 여기에 수록된 등면적 지도의 작성을 두고 “당시 노 전 대통령이 ‘등면적 어로구역 지도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며, 회의를 통해 검토와 재가했던 것”이라며 “이 보고서는 정상회담 직전에 최종적으로 완성됐으며 그해 9월 말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보고됐으며 회의과정에 국정원장과 국정원 간부들이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김 본부장은 “자료가 김정일 위원장에 전달된 것은 김만복 원장도 알고 있었다”며 “이를 현재 국정원이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 없으며, 몰랐다면 책임방기이자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국정원이 지금까지 정상회담 회의록으로 해온 일들을 보면, 모르고 있을 수 있다”며 “대화록을 해석하는 것조차 이렇게 해메는 수준인데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를 눈여겨 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은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의 등면적 지도 전달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묻자 “답할 필요가 없다. 답하지 않겠다”며 “대변인 성명에서 쓴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열린 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안한 등면적 지도. 윤호중 민주당 의원 공개.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열린 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안한 등면적 지도. 윤호중 민주당 의원 공개.

국정원이 발표한 성명에 나와있는 지도를 작성한 별도의 근거가 있는지에 대해 이 대변인은 “대변인 성명에 나와있는 대로 정상회담 회의록을 근거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천앞바다까지 내어줄 것처럼 국정원 성명을 발표한 대목의 경우 허위사실 유포를 넘어 이적행위를 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윤호중 의원은 인터뷰에서 “국정원과 새누리당 주장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했다’는 것과 등면적 언급이 없었다는 부분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대북정보 업무를 하는 국정원과 지난 정부에서 통일비서관을 했던 정문헌 의원처럼 알만한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 인천앞바다까지 내주기로 동의해주고 왔다’는 씻을 수 없는 거짓말을 한 것은 북쪽에 충분히 이용될 말을 국가기관이 버젓이 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어 “이는 허위사실 유포이자 이적행위에 해당되며 이런 식으로 국민에게 거짓을 통해 불안감에 휩싸이도록 기만하고 호도하는 일을 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놔둬서는 안된다”며 “대통령이 사과와 함께 국정원장을 경질해야 하며, 정문헌 의원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정원 대변인은 “다 성명에 나와있으니 참조해달라”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 2007년 12월 장성급회담에서 제시한 공동어로구역 설정 지도. 윤호중 의원 공개.
북한이 지난 2007년 12월 장성급회담에서 제시한 공동어로구역 설정 지도. 윤호중 의원 공개.

[미디어오늘] 2013-07-15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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