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교학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하고 싶나

프레시안 남빛나라 기자
  • 입력 2014.01.0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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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따라 국정 교과서?…선진국은 자유발행제 시행

 
1.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혁명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2.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

3.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5.16 쿠데타에 대한 3가지 서술이다. 1번은 1977년 유신 시대, 문교부가 발행한 고교 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다. '제3차 교육 과정 국사 과목의 목표'에 따라 만들어진 국정 교과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경선에서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치켜세웠다. 유신 시대 국정 교과서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발언은 대선 때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지만 당선을 저지할 정도는 못 됐다.

그리고 2013년,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역사 교과서 논쟁이 벌어졌다. 3번은 바로 그 교학사 교과서 320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차마 1977년의 교과서만큼 낯 뜨거운 찬양을 하진 못했지만 5.16 쿠데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30여 년 전 국정 교과서와 비슷하다.

1977년판 고교 국사 교과서
1977년판 고교 국사 교과서
 
선진국은 자유발행제인데…북한 따라 국정교과서 가나

새누리당이 연일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방지하려면 국정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국정 교과서 논란으로 번졌다.

교과서는 3종류로 나뉜다. 국정 교과서는 교과서 발행 과정에서 집필진 선정, 내용 감수 등 정부가 모든 역할을 다한다. 검정 교과서는 민간 출판사가 집필진을 섭외해 교과서를 만들고 정부의 심사를 받는다. 인정 교과서는 시·도 교육감의 인정을 받은 교과서다.

지난 1974년, 박정희 정부는 검인정 교과서였던 국사 교과서를 국정 교과서로 전환했다. 정부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문교부의 중학교 국사 교과서 개편 지시사항을 보면 △유신 정신의 반영 △새마을, 수출 증대, 교육재료 보강,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 등이라고 나와 있다. 유신 정권의 정당성을 주입하고 정부의 정책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도서출판 미래엔(과거 대한교과서)에서 제출받은 1977년 발행 국사 교과서를 보면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나 있다. "제3공화국은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어 제 1,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후략, 228쪽)",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229쪽)"는 등,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서술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후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정권 홍보와 반공 교육에 치중한 국정 교과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2003년부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 교과서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각각 2010년, 2011년에 검정 교과서로 바뀌었다. 현재 중고교 역사 관련 교과서는 모두 검정 교과서다.

이런 흐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정 교과서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실제로 미국,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선진국은 검정 교과서에서 한발 더 나아간 자유발행제를 시행하고 있다. 민간 출판사가 자유자재로 교과서를 만들며 경쟁하는 것이다. 현재 국정 교과서를 택한 나라는 독재국가나 개발도상국이 다수다.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은 8일 JTBC <뉴스9>에 출연해 "러시아나 베트남, 필리핀 등이 국정 교과서를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국정 교과서를 쓰지만"이라고 말해 여론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정교과서=교학사교과서…"정권 발행 교과서라 위험"

교육 현장에서는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부천여자고등학교 교사)은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률이 적다고 국정 교과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불성설이다. 국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과서가, 교학사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위험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새누리당이 교학사 교과서를 보호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독재 정권이나 군사 정부 시절에 국정 교과서를 유지했는데, 그 교과서들이 낳은 폐단이 엄청났다. 거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검정 교과서로 갔고 검정 교과서도 이미 국가가 많이 개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정 교과서에서 자유발행제로 나아가야 할 판에, 외려 국정 교과서로 퇴행하고 있다는 것.

그는 "국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이 발행한다는 것이다"라며 "5년 뒤에 정권이 바뀌면 새누리당은 또 검정제를 주장하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성호 배명중 교사는 "러시아나 북한 등, 경제적으로 낙후돼서 시장에 맡겨졌을 경우에 교과서 발행과 공급 자체가 어려운 나라나 독재 국가를 빼고는 국정제를 하는 나라가 없다"며 "공산당 일당 독재인 중국도 국정 교과서는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내용을 일단 차치하고라도, 옛날 국정 교과서는 일단 학생에 대한 고려나 이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검정 교과서가 되면서 편집, 사진이나 도판의 질, 탐구문제 등이 굉장히 꼼꼼해졌다"며 "검정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교과서가 학생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확산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만약 국정 교과서로 전환된다면, 역사교사모임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유신으로 회귀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전국민적인 저항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2014-01-09  (프레시안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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