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중소도시 시민운동의 희망 찾기"

평화뉴스
  • 입력 2004.11.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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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 비판을 넘어 지속적인 지역자치운동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교양의 표준이 없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한 <시민과 세계> 최근호의 [전환기의 한국사회, 새로운 출발점에 선 사회운동]이라는 글에서, “현재 한국의 정치사회국면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즉 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점차 독자성을 가지는 세 가지 영역의 하나로 중앙권력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사회의 자율성 강화”를 지적했다. 지역사회라는 새로운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경제문제 특히 일자리 창출이며, 여기서 개발론과 환경론 혹은 투자활성화를 위한 개방과 지속가능한 개발론이 대립하고 있지만, 냉전하에서 마비된 중앙과 지역 시민사회의 상상력은 효율성의 담론에 대항할 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한국에서는 국가가 지정하는 교과내용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강조되는 교양의 표준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교양을 담지하고 있는 사회적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인권, 환경, 여성의 가치를 제창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모두 이러한 지점에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운동의 공학이 아니라 운동의 기반이며, 철학적인 기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최근의 독일 출판계 흐름을 ‘슈바니츠 물결’로 표현한 한 신문의 기사를 인상적으로 읽은 적이 있다. 이 물결의 산파역할을 한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작가 이름을 따온 표현이다.
다양한 문화와 집단 간의 의사소통 능력과 이를 가능케 하는 지식습득 활동을 ‘교양’이라고 한다면, 김동춘 교수의 지적은 “대중은 대중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시민사회운동은 시민사회운동대로 각기 지정된 교과서의 한계에 갇혀 공통의 의사소통 지대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 결과로서 지적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교양과 그 담지 집단의 부재”는 시대변화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도하는 데 요구되는, 창의적 영역의 시민사회운동의 실력에 대한 한계와 그에 따른 대중적 신뢰의 하락에 대한 우려로 해석된다. 대구지하철노조파업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의 하나로 차용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제 시민사회운동도 분명한 자신의 가치지향과 완성된 대안체계를 갖고서 사회적 의사소통의 지평을 확대하는 문제, 즉 이데올로기 활동에 대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지방중소도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존경받는 도시, 존경받는 주민’...브라질 참여예산제, 일본의 산골마을 만들기, 그리고 예천군 용궁면

큰 돈 들이지 않고, 인간중심의 창의적 아이디어로 세계 최고의 친환경도시를 만든 브라질의 <꾸리찌바시>에 대해 세계는 ‘세계의 존경받는 도시’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유엔에 의해 세계 40대 훌륭한 시민제도로 선정된 ‘참여예산제’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안하고 실천한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 시민들에 대해선 ‘존경받는 시민’으로 칭송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홍덕률 교수는 이번 주 <평화뉴스>에 실린 일본의 ‘산촌마을만들기’ 현장방문 소감문을 통해,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Small Town but Big Think!’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했다. 녹색관광을 통한 주민소득보다 도시민들의 물신주의에 대한 우려와 마을환경개선 차원에서 시작된 작은 산촌 주민들의 자치공동체 운영 모습에 감동한 홍 교수는, 이들이야말로 ‘큰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 역시 ‘존경받는 주민’으로 칭송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브라질 참여예산제와 일본 마을만들기 사례가 현실의 변화를 갈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배경의 공통점은, 철학적.사회적.교육적 기타 모든 차원에서 ‘자치’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 우월성에 대해 세계가 합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 크고 작은 모든 영역에서 자율과 합의에 기초한 자치가 갈수록 중시되는 사회로 바뀌었다. 정책 실현이나 투쟁에 있어서 일방통행 밀어붙이기 방법을 선택할 경우,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으로 상징되는 민간에 대해서도 시민들이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올해 여름 서울지하철노조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에서부터 본격화된 이래,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판결로 절정에 이르렀다. 시민사회운동도 이러한 변화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같은 사례를 만든 도시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의 지방중소도시도 다양한 영역의 주민자치 활성화를 통해 ‘존경받는 도시, 존경받는 주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지표이다.

“단편적 비판과 견제를 넘어, 시.군과 읍.면.동의 주민자치를 아우르는 지속적인 ‘지역자치운동’이 필요하다”

최근 경상북도의 ‘2004 주민자치센터 운영요원 워크숍’ 주관과 기조발제문 작성을 준비하면서 예천군 용문면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했다.

인구 3,116명에 불과한 용문면의 주민자치위원회는 2003년 12월 19일 면사무소 대회의실에서 군수와 이장, 남녀지도자, 작목반장 등 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자치위원 5명이 1개월 동안 직접 지역내외에서 수집한 자료와 농사경험을 바탕으로 △감 재배를 통한 농가소득 증대방안 △예천 청결고춧가루 가공처리장운영 활성화방안 △농촌관광으로 승부하는 정보화마을 △금당실 환경개선과 활성화방안 △비가림 재배를 통한 소득증대방안 등을 발표했다.

전국 최초의 사례인 이 토론회를 통해 비닐하우스 풋고추를 처음으로 재배하여 8천여 만원 소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자 14호로 출발한 작목반이 내년엔 70~80호로 증가할 전망이며, 예천 청결고춧가루를 (주)두산 종갓집 김치에 연 50톤 납품계약,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으로서 금당실 돌담 복원화(군비 지원), 감나무 식재 3㏊(2년 후 소득화) 등의 성과를 냈다.
성과에 힘입어 주민 주체 지역경제 토론회가 예천군 읍․면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또한 이 토론회를 기점으로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으며, 주민자치센터 미 개설 지역으로부터의 설치 요구도 확산됐다고 한다.

특히 주민자치센터 서예 프로그램의 경우, 예천읍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용문면 거주 향토서예가의 지도로 수강생들의 실력이 도 단위 대회에 입선할 정도라고 한다. 수강생들의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는다고 하는데, 지역의 경제적 규모나 나이보다 강사의 역량이라는 인적자원의 우수성이 보다 중요하다는 주목할만한 사례이다.

지역발전의 견인차인 지역경제와 인적자원 모두 열악한 지방중소도시 시민운동의 활로는 무엇인가?
단편적 사안이나 시사(時事) 차원의 현안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넘어 시.군 차원의 주민자치와 읍.면.동 차원의 주민자치를 함께 아우르는 ‘지역자치운동’에서 지방중소도시 시민운동의 희망을 찾아보자. 주민자치는 지방중소도시 시민운동이 티 없이 능수 능란하고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할 이데올로기 활동의 본령이다.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 196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조근래 국장은, 15살 때 구미의 한 봉제공장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지난 ’94년부터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을 맡아 10년째 지역 시민운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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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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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수)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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