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치른 고 3 수험생에게...”

평화뉴스
  • 입력 2004.11.2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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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의 시사칼럼 41>
“이웃을 생각하는 공동체의식, 그리고 역사와 품성...”


지난 주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 3생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대학과 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그 많은 호기심과 열정과 실험정신을 유보한 채 교과서와 참고서와 학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지금의 대학입학 제도와 관련해서, 우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잘 해주었습니다. 잘 이겨냈고 수능시험까지 잘 치러냈습니다.

기대보다 적게 나온 예상점수 때문에 상심한 학생들도 적지 않겠지만, 크게 보고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을 잘 이겨내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생이 보람과 성취로 열매 맺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에게 몇 마디 당부를 곁들일까 합니다.
노파심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만, 대학에 몸담아 여러분의 몇 년 선배들과 늘 만나 대화하는 한 교수로서 평소에 느낀 점들이 없지 않아서 예비 대학생 여러분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우선 부모님과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고생했다는 위로의 인사를 건네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 함께 고생을 나눠지신 부모님들에게는 자식에게서 듣는 따뜻한 위로의 말씀 한마디가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옆에서 같이 고생한 친구들에게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넉넉한 마음을 가져주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제 곧 여러분은 성인의 대열에 들어섭니다.
열흘 전입니다. 지난 12일에는 국무회의가 민법의 성년 규정을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낮추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만 19세 이상의 청소년들은 부모 동의없이 결혼도 할 수 있게 되고 부모 등의 법정 대리인 없이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며 부동산도 취득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선거법도 곧 개정이 되어 만 20세 이상만 투표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이 만 19세 이상이면 투표할 수 있게 바뀌게 됩니다. (열린우리당은 ‘만 18세 안’을 추진 중이고 한나라당은 ‘만 19세 이상’을 당론으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최소한 만 19세가 되면 대통령도 뽑을 수 있고, 국회의원도 시장. 도지사, 군수 구청장, 그리고 시.도.군.구의회 의원도 뽑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책임있는 민주시민으로서 소중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개인에겐 영광이요 자랑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또한 무거운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책임을 소홀함이 없이 다하기 위해 여러분은 성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만 19세만 되면 저절로 민주시민으로서 합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쉽지 않은 노력과 준비와 훈련이 뒤따라야 합니다. 예컨대 여러분의 부모님 세대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어떤 역사를 어떻게 헤쳐 왔는지 좀더 진지하게 공부해 보기 바랍니다.

왜 지금 와서 과거사 진상규명법 제정을 놓고 나라가 시끄러워지게 됐는지 여러분도 이성적이면서도 합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언제 어떻게 제정됐고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왜 그 법의 개폐를 놓고 어른들이 다투게 된 건지 역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나름대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사립학교법의 어떤 조항이 쟁점이 되고 있는지,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사립학교와 아니면 주위 친구들이 다니고 있을 사립학교의 현실과 관련해서 책임있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추구하고 또 만들어 가야 할지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는 어떤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좋은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소신있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판단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의 판단이 모여 나라의 앞길을 결정하고 우리 사회가 사람 살만한 사회가 될 것인지 삭막하고 후진적인 사회로 추락할 것인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또 책임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책임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위해 여러분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또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앞서는 것이 공동체의식입니다.
이 나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고 이 나라와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하나만 잘 살고 나 하나만 편하면 됐지 하는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 하나 역시 잘 살고 편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정의감입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함께 분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젊은이답게 도전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지 않고 공익과 정의와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정의감이야말로 젊은이를 젊은이답게 해 주는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또한 역사와 사회와 자신의 할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판단을 내렸더라도, 자신과 다른 결론에 도달한 사람을 매도하거나 적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각자 다른 의견과 생각과 판단들이 민주적으로 어우러지고 토론되고 걸러지면서 우리 사회의 미래가 그려지고 만들어진다는 포용력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심성과 자세를 길러야 합니다.
며칠 전 골든벨을 울린 경기도 파주 문산여고의 지관순 학생은 많은 어른들의 마음도 진하게 울렸습니다. 나 역시 그 여학생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충분히 믿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단지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기고 골든벨을 울려서만은 아닙니다. 그 여학생이 보여준 건전한 역사의식, 우리 사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 개인적인 출세나 부나 권력이 아닌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하는, 그 여학생의 인생관이 나를 비롯해 많은 어른들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넘쳐나고, 속물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절망하고 있던 많은 이들이 그 여학생으로 인해 감동하고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필자는 여러분의 세대에 그런 여학생이 많으리라 확신합니다. 부디 그래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입학 전형이 끝나지 않았고 아직도 논술이다 면접이다 해서 대입의 압박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도 많을 텐데 너무 이르게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짬짬이라도 건강한 청소년으로, 책임있는 성인으로 고등학교 문을 나서기 위해, 이제 이 나라의 큰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당당히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스스로를 훈련시켜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칫 해방감에 들떠 시간을 허비하거나 하루하루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하루하루가 너무도 긴박하고, 그만큼 우리의 판단과 실천이 너무도 중차대한 시기입니다. 건강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으로, 책임있는 공동체의식으로,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으로 여러분의 품성과 가치관과 인생설계를 크게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더욱 매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또, 지역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도 대구KBS <화요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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