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청년 노동자의 사망, 이 법만 있었더라도…

미디어오늘 조윤호 기자
  • 입력 2016.06.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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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직종 직접고용 '생명안전업무법', 원청에 산재 책임 '산업안전보건법' 등 19대 국회에서 폐기


지난달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다 사망한 19세 젊은 노동자 김모씨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가 참사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을 수 있던 법안은 19대 국회에 잠들어 있었다.

지하철이나 철도에서 스크린도어 등을 점검하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는 이미 빈번하게 발생했다. 반복되는 사고의 원인으로는 ‘외주화’가 꼽힌다. 서울메트로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스크린도어 설치 및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 했다.

용역업체들은 저가로 스크린도어를 시공했고 이에 따라 잦은 고장이 벌어졌지만 용역업체는 적은 인력으로 많은 작업량을 감당해야 했다. 위험은 자연스레 용역업체 노동자가 떠안는다. 잦은 고장에 부족한 인력으로 2인1조라는 안전수칙은 깨진다. 사망한 김씨도 홀로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러 갔다 사고를 당했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서울메트로는) 비용절감을 위해 (스크린도어 수리에) 미숙련 비정규직을 썼다. 정규직 직원이 수리하는 5~8호선은 수리가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2인1조로 출동하지만, 1~4호선은 1인 출동이 잦다는 게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한 청년이 사고가 발생한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이 붙여놓은 추모 메모지를 읽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달 31일 한 청년이 사고가 발생한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이 붙여놓은 추모 메모지를 읽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와 관련된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임기만료로 폐기된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생명안전업무법)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은 생명, 안전관련 업무에 정규직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인영 의원 등은 생명안전업무법을 제출하며 그 이유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에 대해 기간제근로자,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외주용역에 의한 인력을 사용하게 되면 해당 근로자는 낮은 소속감, 고용불안 등으로 사용자에게 그 업무의 안전문제를 소신껏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제시했다.

생명안전업무법 제5조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생명안전업무 사업주는 파견근로자, 기간제근로자, 단시간근로자를 사용하거나 도급을 줄 수 없고 생명안전업무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생명안전업무’에는 철도사업과 도시철도사업, 그 중에서도 ‘철도 차량 운행과 이용자의 안전에 필요한 신호시설‧설비를 유지‧관리하는 업무’가 포함돼 있다. 스크린도어도 ‘생명안전업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하나 더 있었다. 김경협 의원이 19대 때 대표 발의했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이 법안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 참사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선박직 종사자의 70%가 기간제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기간제 사용이 무분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기간제법 개정안의 핵심은 “선원의 업무 등 국민의 안전‧생명과 밀접한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업무에 대해서는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선박직이 아니라 철도 운영에 필요한 보수업무도 ‘국민의 안전‧생명에 밀접한 업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서울메트로가 안전사고의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넘기는 것도 반복되는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사고의 책임은 용역업체들이 떠안으면 그만이었다. 1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서울메트로의 계약특수조건(용역계약서) 및 과업지시’에 따르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 책임은 물론 재해자 보상까지 용역업체가 져야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돼 있다.

심상정 의원이 19대에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 같은 사고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해당법안의 핵심은 안건보건 업무를 총괄하고 관리할 안건보건관리책임자를 사업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스크린도어 용역업체 노동자가 사고를 당해도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원청인 서울메트로가 지게 된다는 뜻이다.

심상정 의원 등은 해당 법안을 제출하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내하청‧협력업체 파견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산업현장의 변화된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근로자공급업체 등을 이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 소위 ‘원청 사업주’에게 자신의 사업장에서 근로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할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울메트로’라는 문구가 써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사고가 발생한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울메트로’라는 문구가 써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런 이유로 국회가 19대에 제출된 법안들만 통과시켰더라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 유송화 더민주 부대변인은 31일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발의했던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을 재추진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주선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1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19대 국회에서 ‘생명 안전 종사자 직접 고용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으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반대로 임기 만료돼 폐기됐다”며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철도·선박·비행기·공항·버스 등 생명 안전 업무 종사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역시 1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정의당은 19대 국회 내내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 도급관리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유해·위험 업무의 도급금지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법’,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에 강력하게 책임을 묻는 일명 ‘기업살인법“ 등을 내놓은 바 있다”며 “그러나 정부여당의 반대로 끝내 결실을 이루지 못했다. 곧장 ‘구의역 사고 재발방지법’을 다시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2016-6-1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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