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캘리번과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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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 갈무리 펴냄 | 2011)

 
책은 늘 나에게 공감과 치유, 지혜를 선물한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아 있는 책들이 있다. 인생의 굽이굽이 깊은 고민에서 헤어 나오게 해준 책도 있고, 뒹굴 거리며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 벌떡 일어나 단숨에 읽은 책도 있다. ‘내 인생의 책’으로 가슴에 남아있는 책 중에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단연 으뜸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나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데 있어서도 그 새로움과 탁월함, 재미의 측면에서도 여러 책들을 제치고 첫 자리를 차지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페미니스트이자 교사, 투사이다. 연구와 강의는 물론이고, 투쟁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1972년에는 <국제여성주의공동체>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캠페인’을 국제적으로 펼쳤으며 제1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지역에서 반세계화 운동, 미국의 사형제 폐지 운동을 했다. 이렇게 삶속에서 쓴 실비아 페데리치의 글은 울림이 다르다.
 
이 책은 성차별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심화과정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마녀사냥’ 과정과 식민 지배를 통해 설명한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던 시기 맑스는 ‘시초축척’이 자본주의 이행기에 폭압적으로 존재했음을 이야기 했다. 실비아 페데리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 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관계가 노동의 위계를 구조화하고, 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 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착취의 영역을 감추고 자연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인식하며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을 벌였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은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맑스주의적 개념에 대한 비판과 노동력의 생산에서 가사노동이 수행하는 긴요한 기능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이를 운동으로 펼쳤다.
 
시초축적 과정에 대해 저자는 새로운 성적 분업이 구축되는 물질적·역사적 과정이 맑스를 비롯한 기존 이론에서 설명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공백’을 채우고 누락된 ‘여성’의 역사와 ‘이행기’의 재생산 문제를 생명과 노동력 재생산의 관점에서 재고하는 것이 「캘리번과 마녀」의 과제임을 밝히고 있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캘리번’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했었다. 캘리번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캘리번은 반(反)식민주의 저항을 대표하고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녀’사냥은 300년이 넘게 진행된 여성에 대한 혐오와 학살을 통한 성적 계서제의 확립과정과 여성의 재생산권과 섹슈얼리티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해본다.
 
먼저 ‘시초축적’은 자본주의 이행과정 뿐만 아니라 16~17세기에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 사냥을 통해 확립된 여성지배 과정에서도 있어 왔으며 이후 여성에 대한 지배의 과정과 매우 닮아 있는 식민지배의 과정에서도 ‘시초축적’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지속성을 위해 여성의 재생산권과 부불가사노동은 물론이고 공유지를 빼앗고 폭압적 식민 지배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초축적’은 어느 한 시기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변형된 모습으로 지속되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기존의 학자들은 자본주의를 분석함에 있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전제로 분석하였다. 자본주의 분석의 탁월함을 보였던 맑스도 ‘재생산노동’에 대해서는 주위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동자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의 식사, 청소, 빨래, 감정노동 등등은 시장에서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책정되기 전에는 당연히 누군가가 하는 것이었고 그 누군가는 ‘여성’이었다. 더불어 지속가능한 노동을 위한 재생산, 즉 출산은 당연함을 넘어 ‘의무’로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6년 12월28일 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로 가시화되어 공분을 자아냈으며 하루 만에 사이트를 내렸으나 아직까지 여성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패한 정책으로 회자되고 있다.

「캘리번과 마녀」는 유럽 ‘마녀사냥’을 이렇게 설명한다.
 
중세 봉건시대에 남성들과 함께 투쟁하던 여성들은 마녀사냥을 맞이하게 된다. 15세기말 국가의 후원 하에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의 강간범은 손목을 한 대 맞는 처벌을 받게 하고 모든 계급의 남성들이 무리지어 저지르는 집단강간은 ‘오락’이 되었다. 이렇게 진행된 강간의 합법화는 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을 비하하는 강렬한 여성혐오의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관심해지도록 하여 같은 시기 마녀사냥의 토대가 되었다. 만연했던 계급적대는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에 대한 적대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는 계급연대의 토대를 잠식했다. 계급의 문제를 성의 문제로 전환하여 지배하는 전략 확립과정인 것이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약 3세기에 걸쳐 진행된 여성박해의 과정이며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마녀’라는 이름으로 공격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실비아 페데리치가 찾아낸 그 많은 마녀사냥 기록에서 마녀사냥에 처해진 남성들의 조직적 항거는 1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마녀사냥’을 통해 체계적으로 여성을 배제한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가 구축되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집안으로 '유폐'되었고 남성들의 재산이 되어갔다. 시장에 대한 대응물, 사회관계의 사유화를 위한 도구, 자본주의적 규율과 가부장적 지배의 보급을 위한 도구로서 가족이 등장하였다. 여성의 노동은 재생산 노동으로 급속히 축소되었다. 이는 지금도 만연하여 여성은 돌봄노동 전담자, 노동시장의 예비군이 되어있다. 「캘리번과 마녀」는 그 방대한 자료와 시대적 통찰, 민중적 관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더욱 현실적인 텍스트를 접하고 싶다면 「혁명의 영점」을 함께 권한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은 미투의 열풍과 함께 2015년부터 만연한 온라인 여성혐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역차별 논쟁 등 어느 때 보다 뜨거운 때이다. 이즈음 페미니즘, 젠더, 감수성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기본이 아닌가. 페미니즘은 늘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보기를 선사하니 그 낯설음을 함께 해보자.
 
 
 
 
 
 
 
 
 
[책 속의 길] 141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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