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1945년 8월 15일 꿈에도 그리던 해방은 현실이 되었지만 청산되지 못한 식민적폐에 따른 혼란은 계속되었다. 미군정은 이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우리 민족의 자결권 무시하고, 식량배급까지 제멋대로 손 대면서 민중의 생존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침묵과 굴종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항쟁으로 맞선 용감한 지역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대구였다. 그리고 자랑스런 대구시민이었다. 민족자주와 민중생존을 위해 스스로 떨쳐 일어섰던 그들의 항쟁은 이내 들불처럼 번져 새 사회 건설의 뜨거운 열기를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이러한 10월 항쟁이 일어난 지 오늘로서 꼭 72년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10월 항쟁을 제대로 된 역사적 지위에 올려놓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일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건으로 제한하거나 폭동 운운하는 등 희생자에 대한 색깔론적 혐오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또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역사적폐를 외면한 채 민족의 미래를 밝히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앞으로 민중당 대구시당은 <10월 항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 등 모든 정치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10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로운 한반도, 민중이 주인되는 참된 정치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2018년 10월 1일
민중당 대구광역시당
10월 항쟁 72주년, 특별법 제정으로 명예회복 이루어야
1945년 8월 15일 꿈에도 그리던 해방은 현실이 되었지만 청산되지 못한 식민적폐에 따른 혼란은 계속되었다. 미군정은 이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우리 민족의 자결권 무시하고, 식량배급까지 제멋대로 손 대면서 민중의 생존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침묵과 굴종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항쟁으로 맞선 용감한 지역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대구였다. 그리고 자랑스런 대구시민이었다. 민족자주와 민중생존을 위해 스스로 떨쳐 일어섰던 그들의 항쟁은 이내 들불처럼 번져 새 사회 건설의 뜨거운 열기를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이러한 10월 항쟁이 일어난 지 오늘로서 꼭 72년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는 10월 항쟁을 제대로 된 역사적 지위에 올려놓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일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건으로 제한하거나 폭동 운운하는 등 희생자에 대한 색깔론적 혐오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또 정부는 지금까지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역사적폐를 외면한 채 민족의 미래를 밝히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도 너무 늦었다. 앞으로 민중당 대구시당은 <10월 항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 등 모든 정치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10월 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로운 한반도, 민중이 주인되는 참된 정치를 위해 더욱 매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2018년 10월 1일
민중당 대구광역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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