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 야합한 고양이

다산연구소
  • 입력 2019.03.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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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송재소 / 단속하는 자와 받는 자...쥐와 야합한 고양이가 지금 여기에도?


다산 정약용의 작품 중에 「고양이」란 제목의 장편 우화시(寓話詩)가 있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온갖 못된 짓을 해서 주인의 근심이 가득한데, 한술 더 떠서 이 고양이가 쥐들과 야합하여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왜 쥐와 야합을 했을까? 이 시에서는 “쥐들은 훔친 물건 뇌물로 주고/ 태연히 너와 함께 돌아다닌다”, “이로부터 쥐들은 꺼릴 것 없어/ 들락날락 껄껄대며 수염을 흔든다”라 묘사되어 있다. 쥐들이 고양이에게 뇌물을 바친 것이다. 그래서 뇌물을 받은 고양이가 쥐를 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을 방기하고 쥐들과 한통속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도둑업' 개업할 때 포도군관에게 '신고식'을?

이것은 현실의 생태계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은 왜 이런 기상천외의 발상을 하게 되었을까? 다산은 그가 살았던 조선 후기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풍자하기 위하여 이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도둑과 도둑 잡는 관리의 결탁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집 주인은 일반 백성에, 쥐는 도둑에, 고양이는 도둑 잡는 관리에 비유되어 있다. 『목민심서』의 다음과 같은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무릇 포도군관(捕盜軍官)은 경향을 막론하고 모두 큰 도적이다. 도적과 내통하여 그 장물을 나누어 먹고, 도적을 풀어 도적질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공하며, 수령이 도적을 잡으려고 하면 미리 기밀을 누설시켜 도적으로 하여금 멀리 달아나게 하고, 수령이 도적을 처형하려고 하면 비밀히 옥졸을 사주하여 옥졸로 하여금 도적을 고의로 놓치게 하니 그 천만가지 죄악을 다 말할 수가 없다." 「이전6조(吏典六條)」, 〈어중(馭衆)〉

'포도군관'은 도둑 잡는 임무를 맡은 관리인데 이 포도군관이 도둑과 내통한다는 것이다. 또 『목민심서』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도둑이 ‘도둑업’을 개업할 때 포도군관에게 ‘신고식’을 해야 하며, 처음 세 번까지는 훔친 장물을 모두 군관에게 바치고 네 번째부터는 3·7제로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다산은 우화시의 형식을 빌려 이 기막힌 현실을 고발하고 풍자한 것이다.

사진 출처. KBS 뉴스(2019.3.22 /'버닝썬-경찰 유착 고리' 전직 경찰관 송치…"뇌물 혐의도 수사")
사진 출처. KBS 뉴스(2019.3.22 /'버닝썬-경찰 유착 고리' 전직 경찰관 송치…"뇌물 혐의도 수사")

이런 일이 다산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강남의 유흥업소 ‘버닝썬’ 사태가 그것이다. 도둑에 관한 일이 아니라도 무릇 단속하는 자와 단속받는 자가 야합하면 세상에 못 할 짓이 없고 그렇게 되면 사회질서가 바로 잡힐 수 없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마약 밀매, 성관계 동영상 몰래 촬영, 폭력, 미성년자 출입 등의 불법행위가 ‘버닝썬’에서 자행되고 있었는데도 경찰이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이면에 뇌물거래가 있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쥐와 야합한 고양이가 지금 여기에도?

아직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관계는 거의 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 과거 ‘버닝썬’의 관할 부서인 강남경찰서에서 클럽, 주점 등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경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윤모 총경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대기발령 상태에 있고, 이 사건 피의자로 입건된 현직 경찰관이 4명이나 된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현직 경찰관이 직접 주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A 경감은 화성동부경찰서에서 성매매 단속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질서계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직접 성매매 업소를 차려 운영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만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업소 운영의 전면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한 중국동포를 이른바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운영했다고 한다. 그는 또 다른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B 씨로부터 뇌물을 받고 ‘이번 주 무슨 요일에 단속이 뜨니 주의하라’는 등의 단속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경찰관에게 해당되는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일지라도 단속하는 경찰과 단속받는 유흥업소의 이러한 유착관계는 고양이와 쥐가 야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고양이는 모름지기 고양이의 본분을 지켜 쥐를 잡아야 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으면 세상엔 너무도 많은 쥐들이 들끓을 것이다. 이 나라의 고양이들이여! 제발 본분을 지켜주기 바란다.

 
 





글쓴이 : 송재소(성균관대 명예교수)

[다산연구소 - 다산포럼] 2019-3-26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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