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김수경 “15년만에 졸업장”

평화뉴스
  • 입력 2005.02.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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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전교조 탄압’ 관련 영남대서 투신, 숨져...
'민주화 인정'...모교 경화여고, 15일 '명예졸업장' 수여

“선생님. 제가 전교조를 지지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 선생님을 좋아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하나 만으로 제가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다면, 아니 고통스럽다면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전교조를 지지했던게 죄가 된다면 떳떳이 죄값을 받겠습니다.”
(故 김수경양의 유서 중에서)

지난 1990년, 이같은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김수경(당시 18살.사진)양이, 숨진 지 15년만에 모교에서 졸업장을 받게 됐다.

김수경양의 모교인 [경화여자고등학교(대구 달서구 성당2동)] 박창기 교감은 “오는 2월 15일 졸업식(10시) 때 수경양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경양이 명예졸업장을 받게 된 것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지난 해에 수경양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박 교감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최근 학교에 공문을 보내 수경양에게 명예졸업장을 주도록 권유했으며, 학교측은 대구시교육청과 협의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시 3학년이던 수경양은 숨진 지 15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수경양은 지난 1990년 6월 5일 밤 11시 25분쯤, 경산에 있는 영남대학교 인문관 건물 위에서 뛰어내려 엿새 뒤인 11일에 숨졌는데, 전교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겪어야 했던 힘든 생활을 유서로 남기기도 했다.

수경양이 2학년 담임을 맡았던 최모(47.교사)씨는 “전교조 운동이 일었던 ’89년에 나를 비롯해 경화여중과 여고에서만 10명의 교사가 해직됐고, 당시 전교조를 지지하고 해직 교사를 좋아했던 수경양은 학교 생활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수경양은 학생들의 인권이나 학내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의 고민도 많이 들어주는 학생이었다”고 회고했다.

수경양은 3학년이 된 뒤에도 최 교사를 자주 찾아가 학교생활이나 진로에 대해 상담했으며, 수경양이 숨지기 전에 남긴 유서도 최 교사에게 보낸 편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사는 “이제라도 수경이의 명예가 회복되고 졸업장을 받게 돼 다행”이라면서 “수경이의 죽음은, 당시 학생인권에 무관심하던 교사와 기성세대를 일깨우는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수경양의 선후배와 친구 60여명으로 구성돼 있는 [김수경추모사업회] 이승우(34) 회장은 “지난 2004년 3월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수경양이 뒤늦게라도 모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게 돼 다행”이라면서 “앞으로 수경양의 뜻을 기려 추모비 건립과 기념사업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추모사업회는 지난 1998년에 팔공산 수태골에 수경양의 추모비를 세웠지만, 그동안 크게 훼손돼 지금은 추모비의 받침대 일부만 남아 있다.

한편, 수경양의 가족으로는, 중등교사인 아버지와 초등교사인 어머니, 수경양과 2살 차이인 언니(36)와 남동생(32)이 있는데, 수경양의 부모는 이 날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을 뜻을 학교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김수경양 관련 자료(김수경추모사업회 제공) -

1. 살아온 삶

김수경 열사는 대구 경화여고 3년에 재학하면서 학생회 총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활동하던 중 1990년 6월 5일 밤 11시 25분께 경북 영남대 인문관 4층 옥상에서 투신, 운명하였다.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징계 반대 시위를 10여차례 주도, 학교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던 동지는 "전교조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찍힌 학생은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의 유서와 자신의 죽음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쪽지를 남겼다.


2. 명예회복법안과 인정의 의의

1999년 12월말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0년 1월 13일 이 법이 공포되었으며, 같은해 5월 13일 이 두 법은 정식 법률로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들이 제정되어 시행되기까지는 직접적으로는 유가협 부모님들의 422일간의 여의도 천막농성투쟁이 있었고, 추모연대의 지원투쟁에 힘입은 바이나 크게 보면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을 경과하면서 민주열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민간의 끈질긴 투쟁, 추모(기념) 사업, 지난한 민주화운동이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는 이 법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더욱 튼튼히 자리매김 시키고 국가적 차원의 기념사업으로 진전시켜나갈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89년 전교조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교육민주화에 대한 전국민적인 관심과 바램속에서 학생회 사업을 통해 교육민주화의 일주체로서 당당히 서고자 했던 과정에서 학교측의 탄압으로 인해 죽음을 맞아야 했던 김수경열사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에 기인한 죽음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사회의 참교육실현의 절박한 염원을 널리 알려내었던 열사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을 2004년 3월 우리는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명예졸업장과 추모비건립을 통해 우리는 열사의 삶과 죽음을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려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3. 추모사업 경과

■ 1992년부터 매년 6월 6일 새벗청소년 도서원(현 청소년문화센터 우리 세상), 전교조대구지부, 경화여고 동문, 당시 경화여고해직교사, 열사 동기 및 후배들이 모여 추모제 가짐.

1998년 6월: 전교조 해직교사셨던 박미경선생님과 함께 대구 팔공산 수태골에 추모비 건립
2000년 10월: 김수경열사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에관한법안”에 접수
2004년 3월: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2004년 6월 : 김수경열사 14주기 추모제를 팔공산 수태골에서 가짐
2005년 1월 : 학교측에 두 차례에 걸친 간담회 제안 공문 보냄.
2005년 1월 20일 : 준비위 2차회의 진행
2005년 2월 : 준비위 학교 방문. 교장,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명예졸업장 수여에 관한 확답을 얻어냄.
2005년 2월 15일 (화) : 오전 10시 경화여고 졸업식에 명예졸업장 수여키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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