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진보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평화뉴스
  • 입력 2005.02.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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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노동운동, 시대정신의 공감대를 넓혀야”
“비정규직에 무심한 대기업노조...서민에게 인기없는 민노당"

“진보운동에 대한 국민의 냉담, 흔들리는 사회적 위상”

주요 진보운동 단체들의 불미스런 사건이 잇따르면서 일반 국민들의 태도가 냉담하게 변하고 있다. 운동의 나침반이자 등대인 시대정신마저 희석될까 우려되는 수준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수 년째 겪고 있는 사회적 홍역이 쉽게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그 성격도 단순한 차원의 과격성 논란에서 사회적 위상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변화되고 있다.

단순 과격성 논란의 시기엔 자본.보수언론과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쯤으로 일반 국민들이 방관하는 태도였으나,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고임금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 파업 논란 때부터는 민주노총에 대한 냉담과 자본.보수언론과 정부의 공세에 동조하는 모습으로 일반 국민들의 태도가 변화돼왔다.

최근엔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가 잇따라 터지면서 이 같은 일반 국민들의 태도를 고착화시켜 고정관념으로까지 심화될 정도이며, 온건한 지지 층이었던 시민단체의 회원들마저 흔들릴 정도로 매우 우려되는 상황으로 변화되고 있다.

한겨레 21은 최근 한 여론조사연구소에 의뢰한 소득별 민주노동당 지지율에서, 노동자.농민.빈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정작 150만원 이하 빈곤층의 지지율이 8%로서 가장 낮다는 조사결과를 소개했다.
월수입 150만원 이하 계층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형성돼 있으며,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폐지를 최대의 사회적 의제로 내걸고 수 년째 투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을 조직의 주축으로 하는 민주노동당이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에 견줘 본다면, 일반 국민들의 냉담과 외면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시민운동도 사정은 비슷하다.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 반대운동은 환경운동단체들이 현실론에 따라 비켜간 데 비해, 환경운동에 전혀 무지한 지율 스님이 목숨을 내건 100일 단식을 통해 정치권을 흔들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약속을 어긴 정부를 일시적이나마 굴복시킴으로써 환경운동 단체들도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 따른 언론의 비판과 적잖은 사회적 위상의 실추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한 환경운동단체의 에코생협이 환경파괴 감시 대상인 기업에 자기 생협에서 만든 자가발전 손전등과 라디오 등을 판매하는 영리활동을 했다며 도덕성을 문제삼는 KBS 텔레비전 방송 보도로, 한국 환경운동의 얼굴 격인 이 단체의 이사장이 공개 사과하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북한산 터널공사 반대운동을 주도한 불교계의 중앙인사들은 이 운동에 동참한 한 환경단체가 어느 날 갑자기 터널 시공사의 계열사인 LG카드와 카드 수수료의 일정액을 이용하는 환경캠페인 계약을 맺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당혹스러움과 함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오십보 백보, 똑같은 사람들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몇 차례의 불미스런 일로 사회적 위상이 추락한 이후 다시 선두 자리를 회복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어렵다는 중앙경실련의 사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대한 정치적.사회적.인격적 기대가 일반 지식인과 국민들로부터 상당부분 희석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같은 불미스런 일의 잇따른 발생은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사회가 다층화 되고 이에 따라 다원적 가치가 보편화되면서,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일반 지식인이나 국민들의 태도도 도덕적 책무나 부채의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로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실책의 역작용이 과거보다 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투쟁과 함께 나눔을...시대정신의 공감대를 넓혀야”...“민주노총,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는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이며, 그 해결의 핵심인 비정규직 철폐라는 시대정신은 민주노총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층 강화돼야 한다. 노조가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진보정당도 없는 미국의 민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구미공단 하청업체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마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의 저임금 시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사회정의가 퇴보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정부출연 노동연구원의 책임자조차도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의 일방적인 친자본 정책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오늘 16일부터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교토 의정서의 역사적인 발효에 따라 환경경제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환경운동단체들의 기업감시활동과 신․재생에너지 개발 촉구 활동은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시대정신이다.

다만 민주노총에 부족한 부분은 이 같은 시대정신이 지식인과 국민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균형과 짜임새 있는 모습일 것이다.

원청 대기업노조가 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임금 정책을 적극 추진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대정부 투쟁에 대한 명분과 국민적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제도개선을 기필코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지금처럼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치밀한 국민공감대 확보의 중요성은, 국민과 동떨어진 채 천금같은 시간을 낭비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를 떠올리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구미공단의 민주노총 소속 한국합섬 노조는, 비정규직 350명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정규직 월급을 13만원씩 삭감함으로써 2006년부터는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사업장을 만들기로 한 2003년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에 모범사례로 소개됐다. 같은 공단의 동종 사업장이며 역시 민주노총 소속인 코오롱 노조의 지난 1월 구조조정 합의는 이와 달랐다.

민주노동당 울산북구지구당이 2002년도 연말성과급 지급일에 맞춰 현대차 정문에서 현대차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을 하였으나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응이 냉담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연말이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많은 크고 작은 자생단체와 관변단체들의 지역사회 이웃돕기 행렬을 떠올리면서 한번쯤 성찰해 볼 일이다.

회원 80여명에 연 예산 3천5백만 원에 불과한 구미경실련도 장애인 쉼터 설립기금을 마련해 전달하고, 저소득아동 공부방 건물을 지었다. 나누었기 때문에 그만큼 자체적으로 쓸 예산이 줄어든 것은 당연하다.

민주노총 지역협의회도 비정규직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건립 기금만 만들고, 운영은 자체적으로 하지말고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에 맡기면 간단한 일이다. 비정규직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을 포함한 노동자 삶의 문제로 활동력을 확대하는, 투쟁과 나눔을 병행하는 연대 전략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시대정신의 공감대를 넓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4월부터 ‘한국의 진보’ 1~3부를 내보내는데, 2부 ‘인민노련’편 PD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출신 지역대표인 나를 찾아온 듯한 질문에 대해 “학생출신들이 갖고 있는 생활수단의 격차를 통해 ‘우리끼리도 사회주의를 못하면서, 세상을 사회주의로 바꿀 수 있겠나?’라는 좌절감이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밀려들어 힘들었었다.”라고 대답했다. 대기업노조의 비정규직철폐 투쟁에 대해 “우리끼리도 나누지 못하면서…”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죽은 표정이 사라지길 기대해본다.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 1962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조근래 국장은, 15살 때 구미의 한 봉제공장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노동현장에서 활동하다, 지난 ’94년부터 구미경실련 사무국장을 맡아 10년째 지역 시민운동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2월 16일 <평화뉴스> 주요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실리는 [시민사회 칼럼]은
대구경북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가치와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한 이들의 목소리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005.2.16(수) 조근래(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사무국장)
2005.2.25(수)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2005.3.2(수) 권혁장(참언론대구시민연대 활동위원, 대구참여연대 시정개혁센터 실행위원)
2005.3.9(수) 김동렬(대구KYC(한국청년연합회) 사무처장)
2005.3.16(수) 권미혜(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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