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의 고민을 아십니까?”

평화뉴스
  • 입력 2005.03.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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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 다시 시작하는 시민운동...”
“묵묵히 헌신하는 활동가들의 어려운 삶...자랑스런 시민운동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


2005년 3월 2일 오늘,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여덟 살이 된 현진이(8.사진)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가족들 사이에서 '꼴통'이라 불리는 도영이는 태어난 지 50일이 된다. 그리고 나는 2년여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의 첫 업무를 시작한다. 전업적인 시민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새내기가 되는 것이다.

3월 1일 밤, 현진이의 입학식에 들고 갈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홍역예방접종증명서 등을 챙기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리기만 했고 보호해주어야만 했던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이제부터는 가혹한 경쟁과 다툼이 있는 세계를 경험하겠구나 하는 애처로움, 앞으로 겪을 외로움과 힘듦을 가족의 품 안에서만은 사랑과 행복으로 보듬어 주어야겠다는 책임감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태어난 지 50일이 된 도영이의 잠자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어떻게 먹여살리지' 하는 고민이 가장 먼저 든다. 가진 것도 없고 앞으로 그렇게 가질 것도 없는 나로서는 당연하게 드는 생각이다. 밤사이 잘 자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보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나는 다시 시민운동을 시작한다.
가족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포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결정은 경제적 풍요에 대한 일차적 추구는 경쟁과 다툼, 정복만을 부추길 뿐이며 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린 것이다. 솔직히 냉혹한 경쟁사회에 쉽게 적응하고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기도 하다.

한편으론 건강한 시민운동가로 살아가는 것이 나와 가족의 마음의 풍요를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해보기도 했다. 또한 시민운동가로 오랫동안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너무나 부족한 나 자신을 좀 더 완성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판단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경험치의 판단일 수도 있다. 다만 좀 더 성숙한 삶을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운동의 본질이자 원칙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것을 위배하고 운동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 자신과 자신의 조직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일각의 시민운동을 개탄하기도 한다. 현실상황을 빌미로 실용주의적 운동을 주장하면서 고난을 피해 안일만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을 쉽게 발견할 수도 있다.

시민을 대변한다는 명분아래 위임받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시민운동이 지탄받고도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자행하는 시민운동도 있다. 권위적 구조와 이에 영합하는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는 시민단체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활동가들의 삶의 피폐함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시민운동의 현주소일 수도 있다.

초등학생이 되는 딸, 생후 50일이 되는 아들을 보며 다시금 시민운동을 시작하는 아빠로서 몇 가지의 속다짐을 해본다. 위를 보기보다 아래를 볼 것이며, 개인에 집착하기 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운동이 삶의 철학이자 실천의 지침이 되도록 하며, 안일을 추구하기 보다 고난에 과감히 다가가는 건강하고 맑은 정신의 시민운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너희들에게 자랑스런 시민운동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러한 고민과 다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시민운동가의 고민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운동가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권혁장(시민운동가)
* 1968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권혁장씨는, ’97년 <참여민주사회를 향한 청년광장> 대표와 ’98년 <대구참여연대>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또, <참언론대구시민연대> 활동위원과 <대구참여연대> 시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을 맡고 있으며, 2005년 3월부터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3월 2일 <평화뉴스> 메인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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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3.2(수)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3.9(수)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3.16(수)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3.23(수)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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