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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보험: 상상의 나라 ‘율도국’의 복지제도
[김윤상 칼럼] 정당한 재원, 충분한 급여, 사후 심사의 3원칙
2020년 06월 29일 (월) 10:53:01 평화뉴스 김윤상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필자는 우리 사회문제의 해법을 모색할 때 상상의 나라 ‘율도국’의 사례를 참조하곤 합니다. 최근 긴급재난지원금과 함께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 복지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율도국의 지인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선, 다음과 같이 한국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닥치자 한국에서는 전례 없이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라고 밝혔고 6월 9일 국무회의에서도 이런 방침을 확인했다.

현재 고용보험 가입자는 전체 취업자 중 절반 정도이며, 배달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은 제외되어 있다. 고용보험료는 직장인의 경우 ‘급여’를 기준으로 회사와 반씩 내고, 자영업자는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혼자 부담한다.

이렇게 한국 상황을 간략히 소개한 후 율도국 지인의 견해를 물었더니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일시적인 조치이므로 논외로 하고, 실업·취업 지원을 위한 복지제도를 확대한다는 한국 정부의 방침은 물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급여의 대상자와 기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복지 확대에 반대하는 쪽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율도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설명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율도국에서도 복지제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건강한 사회적 토론을 거쳐, 직업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기본 생활을 보장하는 생존권보험에 합의할 수 있었다. 한국의 ‘4대 보험’ 중 생계비와 관련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기초연금 포함), 고용보험제도, 공적 연금제도를 하나로 통합한 제도라고 보면 된다. 생존권보험 외에 건강보험이 따로 있지만,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 대구시 동구 신암동의 한 쪽방주민(2019.10.30)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기자

율도국의 생존권보험에는 정당한 재원, 충분한 급여, 사후 심사라는 3대 원칙이 있다. 합의를 위해서는 세 원칙 중 ‘정당한 재원의 원칙’이 가장 중요했다. 재원의 정당성에 주목하지 않는 전통적인 복지를 ‘부지런한 개미가 게으른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제도’라고 인식하는 반대편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미가 열심히 일해서 번 소득과 무관하게, 베짱이를 포함한 국민 누구나 균등한 지분을 가진 공동자산이 있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토론 끝에, 아무도 생산하지 않았지만 모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자산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토지, 자원, 환경과 같은 자연이다. 공동자산에 대해서는 당연히 모든 국민이 균등한 지분을 가진다. 따라서 이 지분으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존권보험을 설계하면 누구나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자연의 가치는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불어난다.

‘정당한 재원의 원칙’에 합의한 후, 다른 두 원칙에는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두 번째인 ‘충분한 급여의 원칙’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보다는 같은 재원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지급할 수 있는 보험 방식을 채택하였다. ‘충분한’ 수준이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하며, 최소한 중위소득의 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구체적인 금액은 가용재원의 크기와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하기로 하였다.

세 번째인 ‘사후 심사의 원칙’은, 심사가 아예 없는 기본소득 방식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마련한 원칙이다. 기존의 복지제도가 대부분 채택하고 있는 사전 심사 방식은 코로나19와 같은 갑작스러운 원인에 의한 실업, 소득 감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득이 소정의 생계비 이하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부족액을 자율적으로 인출할 수 있다는 원칙에 합의하게 되었다. 물론, 부당 인출 또는 착오에 의한 인출을 예방하기 위해 안내, 상담, 온라인 조회 등 여러 장치도 마련하였다. 인출자가 사후 심사에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인출금을 회수하게 된다.

생존권보험의 3대 원칙 외에 또 하나 언급해둘 특징은 보험금 상환제도다. 일시적으로 가난에 빠졌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부유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또 스키장처럼 겨울에는 소득이 높지만 다른 계절에는 그렇지 않은 업종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런 경우에는 긴 시간 단위로 보면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에 인출한 보험금을 형편이 좋아졌을 때 상환해야 한다는 데 자연스럽게 합의하게 되었다. 아울러, 젊어서부터 여유 있게 사는 사람도 혹시라도 경제 상태가 악화할 때에 대비하여 미리 적당한 금액을 적금식으로 예치하는 방식도 두고 있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존권보험금을 인출하지 않는다면 적립금에 이자를 붙여 본인이 도로 찾아간다.

이런 설명을 듣고 필자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고용보험에 관한 최근 변화에 대해 조언을 들으려고 했다가 아예 전체 복지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존권보험 3원칙은 매우 상식적입니다. 재원을 공동자산에서 조달한다면 현재 근로자와 고용주가 내는 사회보장 부담금이 절약되는 점도 좋습니다. 상환의무제가 있으면 복지 재정도 그만큼 건실해집니다. 더구나, 생계비 지원을 위한 각종 복지제도가 통합된다면 국민의 이해도 쉽고 제도운영의 효율도 대폭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방향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윤상 칼럼 93]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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