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자극적인 제목, “꼭 이렇게 써야 하나?” (3.15)

평화뉴스
  • 입력 2005.03.19 14: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체비평]...
매일신문 “끌어 묻겠다” / 영남일보 “女근로자 신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와 제목, 불온하고 사납지만 그것이 가지는 흡인력과 전파력은 매우 강하다. 그래서 신문은 이 선정성의 딜레마에서 매번 고민한다. 독자들 역시 선정적인 기사를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의 공급자와 수용자 모두가 선정성에 중독된다면, 신문은 더 이상 이성적 사고가 어려워질게 뻔하다. '선정성의 유혹'에 신문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3월11일자 매일신문에는 그런 선정성이 엿보인다.
일진회. 전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한 이 '기막힌 조직'을 다룬 매일신문의 보도는 섬뜩하다. 사나운 광기마저 감돈다. 그것은 제목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매일신문(2005.3.11.1면) "돈 안주면 끌어 묻겠다" / 조폭 뺨친 일진회 횡포


이날 매일신문은 '대구 어느 고교생의 악몽'이라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리고 대문짝만한 제목 두줄을 걸었다.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끌어다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에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이 고교생의 진술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아이를 둔 독자라면 혀를 찰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매일신문은 이날 이 사건을 지면으로 끌어오면서 절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끌어 묻겠다'라는 사나운 협박, 이날 매일신문은 오히려 이것을 부각시켰다. 잔혹함이 느껴지는 저 제목에서 독자들은 분명 불안감과 냉소가 교차했을 것이다.

짐작컨대 저 제목을 읽었을 독자들은 '어떻게 저럴수가 있나?' '학교가 저 모양인데 어떻게 애들을 학교에 보내'라는 불안감으로 몸서리 쳤을 것이다. 그 불안감은 다시 '요즘 애들 왜 저 모양이야?' 라는 냉소로 이어지고, 급기야 그 냉소는 학교전체를 불신하는 단계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폭'이라는 텍스트를 끌어와 대입시킨 제목도 문제다. 이 '위험한 비유' 역시 자칫 사건을 증폭시킬 소지가 있다.
과연 일진회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폭의 개념과 일치하는가? 일진회의 폭력성이 조폭을 닮긴 했지만, 조폭 뺨칠 정도로 악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서다. '조폭'까지 들먹인 매일신문의 저 제목은 지극히 비약적이고 선정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사건의 실체를 리얼하게 전달하려고 한 편집기자의 의욕은 이해된다. 하지만 제목이 너무 섬뜩하고 사나운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더욱이 신문이 실체를 파악하고 정제하지는 못할망정, 사건의 변두리에서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들떠있는 것은 반드시 제고되어야할 문제이다.

그렇다면 매일신문이 이날 '조폭 뺨치는 일진회' 기사를 굳이 1면 톱으로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쉽게 나온다. 들머리에서 말했듯이 이런류의 기사는 잘 읽힌다.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이것은 곧 수익과 무관치 않다. 수익과 직결되는, 이것이 선정적인 기사가 가지는 문제의 핵심이다.

영남일보는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이날 영남일보도 일진회 관련기사를 사회면 톱기사로 올렸다. 하지만 영남일보의 편집은 '일진회'보다는 '일진회를 방치한 학교'를 향해 날을 세웠다.

영남일보(2005.3.11.사회면) “학교가 일진회 숨겨주나?”


영남일보의 저 제목은 일진회의 폭력성만을 부각시킨 매일신문과는 달리 사건의 이면에 '어른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매일신문과 마찬가지로 '산에 끌고가 묻어 버리겠다'는 사나운 협박도 기사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 지면을 편집한 기자는 그것을 절제했다. 물론 기사의 팩트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매일신문과 영남일보의 편집, 이 두 신문의 편집과 제목은 기억해 둘 만하다.

그렇다고 영남일보가 선정적인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3월10일자 영남일보 사회면에는 '야릇한'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영남일보(2005.3.10.사회면) “성서.검단공단 女근로자 신음”


용역업체에서 불법파견된 성서.검단공단 여자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을 다룬 이 기사에서 편집기자는 '신음'이라는 야릇한 제목을 끄집어냈다. 마침 이 기사의 옆에 위치한 '유사 성행위 성행'이라는 기사가 '신음'이라는 제목과 연결되면서 야한 성적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신음'대신 '고통'이나 '불안'과 같은 제목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말이다. 편집기자의 세밀한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선정적인 기사를 완전히 지면에서 배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매일신문의 '조폭 뺨치는 일진회' 제목처럼 사건의 본질을 흐리거나 문제를 오히려 증폭시킬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재고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문이 지켜야할 품위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평화뉴스 매체비평팀>
* 이 글은, 2005년 3월 15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으로, [평화뉴스 매체비평팀]은 대구지역 언론사 10년차이상 취재.편집기자 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달에 2-3번씩 비정기적으로 지역 언론의 보도기사와 편집에 대한 의견을 싣습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3월 15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