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보편화의 시대”

평화뉴스
  • 입력 2005.03.3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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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용의 목요칼럼 4>...
“정부의 비정규직 확대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노 정권, 분배와 성장의 균형 포기한 듯...벌써 노동계 통제효과에 중독됐는가?”


서울 모 일간지 편집부에서 일하는 조카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몇 년 전 지방 신문사에서 퇴출 압력에 전전긍긍하다 그래도 안정적인 자리로 옮겼다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핵심요원들을 제외한 직원들 대부분이 회사에 사표를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적자’라는 냉혹한 지표 앞에서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통과한 독종들조차 양떼처럼 고분고분 비정규직의 길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화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는 안전지대는 어디인가.

민주노총은 진보인사들의 따가운 비판과 조직내부의 극렬한 반대까지 무릅쓰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에 폭력사태에 대한 여론의 화살까지 감수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 양산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비정규직 보편화의 시대가 열릴 예정이다.

노동계의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재계가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목표로 삼고 정치권이 이를 법과 정책으로 뒷받침하려 드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물러설 자리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스타일 구기고 심한 내상을 입어가면서까지 막아보려는 이 법안과 관련해 노동부장관은 이미 한참 진행된 논의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거나, 현정권이 잘나가고 있다고 여기는 착각의 소치일 것이다. 지지부진한 국정 지지도를 감안할 때 후자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좀더 많아 보인다. 그 확신의 내용이 무엇일지는 상상만 하겠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미 민노총이나 노동부 혹은 국회의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 사회의 최대 당면 과제로 떠올라 있다. 이 문제를 다수 국민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도록 풀지 못하는 정치집단은 과거사에 발목잡힌 정치집단 못지 않게 장래성 없다.

비정규직 확대 기도의 본질은 경영합리성 제고도 아니고 성장조건 개선도 아니다.
내수침체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는 데에 별 이론이 없는데, 비정규직 양산으로 내수침체를 심화시키는 것이 성장에 유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확대 기도는 자본과 친자본 정치권이 노동계 내부의 차별을 이용한 착취와 통제효과에 중독되었다는 증거라고 여겨진다.

그 동안 비정규직을 늘임으로써 노동계를 분열시켜 착취하는 자본의 전략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왔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해온 노동운동은 회복하기 쉽지 않은 도덕적 상처를 입었다. 노동계 내부의 차별에 대한 정규직의 소극적 자세는 전태일 정신의 소멸로 여겨져 노동운동의 말문을 조여왔다.

기아차노조나 부산항만노조 노동귀족들의 비리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비리는 반복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원한을 정규직에 돌리려는 수법 또한 끊임없이 애용될 것이다. 정규직 임금 인상분을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몫으로 돌리자는 재계의 최신 제안도 속보이는 분열책으로 비쳐진다. 한동안 노동계는 이를 운동의 기본환경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자본의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이 어지간해야 하는 것이다. 절대다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화되고, 정규직이 언제라도 비정규직으로 밀려날 수 있어 그 구분이 별 의미 없어질 경우, 차별에 따른 분열 효과는 미미해지고 단결의 새로운 기반이 조성될 것이다. 이로써 노동운동은 이제까지와 다른 차원에 들어설 것이다. 자본이 추구하는 비정규직 확대의 일시적 단맛이 반자본 정치 성장의 쓴맛으로 돌변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극심한 고용불안 상황과 임금반감의 고통을 허리띠 졸라매자는 옛노래로 가라앉힐 때는 지났다.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해야 분배 요구가 존중될지 확신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유연성논의가 실제로 사회적 합의를 겨냥한 것이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부터 정착되어야 한다. 의료, 교육, 주택, 교통 등 기본생존권의 확실한 보장 또한 유연성논의의 전제조건이다.
재계와 정치권이 복지와 분배를 실패한 사회주의와 동의어라고 못박아놓고 비정규직의 자유로운 확대에 합의해달라고 몰아붙일 때, 노동계는 필사의 저항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다.

현정권이 미래를 기대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서민층과 실질적으로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앞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주요 과제로 표방하고도, 실제 정책으로는 자본의 비정규직 확대 욕망에 적극 부응해서는 곤란하다. 원조 보수 한나라당을 앞지르는 정치헌금 모금실적을 당연시하면서, 스스로 친자본집단임을 천명하면서,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자신의 구호를 실제의 정책으로 배반해가면서, 서민층의 지지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런데 현정권은 분배와 성장 사이의 균형감각을 이미 일찌감치 포기한 듯하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혹은 비정규직 양산 보장법안은 그 확실한 증거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가 그렇게 애석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 보수 타령으로 표를 모으던 좋은 시절은 벌써 끝났고, 그만큼 진보정치의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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