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이슬람도 한 형제였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4.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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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기리며”
“평화, 종교간 대화에 진실했던 교황...그는 상대의 양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한국시각으로 4월 3일 새벽에 숨졌다. 그가 단명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어 교황에 선출된 것이 1979년 2월이었으니 만 26년을 조금 넘게 재위했다.

그는 교황으로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58살에 교황이 되었다.
초기에는 젊은 교황의 개혁성에 기대가 모였으나, 그는 곧 보수정통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아직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개혁정신이 과분출된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는 남미 교회에서 대두하는 해방신학이라는 도전에 대응해야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이끄는 바티칸은 미국의 보수 레이건 정권과 협력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편으로 그는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는 풀뿌리 민중과 함께 하려는 많은 성직자들이 끊임없이 피살당하는 보고를 받으며 괴로워해야 했다. 어쨌든 취임 직후 그의 첫 10년간은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고, 그의 조국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가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면서 승리와 영광의 빛을 띠었다.

그는 또한 한국을 두 번 방문하는 등 수많은 나라를 방문함으로써 “움직이는 회칙”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것은 발달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세계 각지 신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댐으로써 교회의 전세계적 일치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이 수많은 여행 기회마다 꼭 그 지역의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의 여행은 꼭 그 나라의 가톨릭 신자만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 국민, 또는 주민 전체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이다.

세계 각지의 종교지도자들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을 직접 만나 그에게서 종교간 협력을 향한 가톨릭의 진실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비록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동방교회에 관한 교령],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등 그리스도교내 일치나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에 관한 입장을 전향적으로 정리했지만, 각 지역교회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워하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교회의 수장이 직접 와서 자기 나라의 타종교인을 만나고 떠난 마당에, 어떤 이유로도 자기 나라 안 타종교와 만남이나 협력을 기피할 현지 가톨릭 지도자는 없었다.

한국 같은 경우에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에는 특히 개신교와 대화가 활발했고, 이 결과 공동번역 성서까지 나오게 됐다. (이제 곧 새 번역 [성경]으로 대치될 예정이다) 그러나 그 뒤, 개신교 쪽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 가톨릭의 공식 차원에서 다른 종교, 특히 같은 그리스도교가 아닌 불교나 민족종교 등과는 특별히 만나는 계기가 없었다.

그런데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만나고 나서는 [8대 종단협의회]나 [한국종교인평화회의](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의 한국 차원 조직) 같은 조직에 김수환 추기경이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주교가 별 스스럼없이 참여하게 됐다.

결국 종교간 대화나 그리스도교 일치라는 것은, 교리나 철학같은 것을 따지면 서로 엇갈리기 쉽고, 반대로 자주 얼굴 보고 만나 밥도 먹고 부대끼고 하는 것이 훨씬 쉽고 구체적인 열매도 있는 것이다. 사실 종교간 대화라는 것도 서로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자면 평화나 화해, 환경문제나 민중의 고통 경감 같은 상식적인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에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과 개신교의 강원용 목사, 불교의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이 마치 3인방처럼 어울리며 대중 앞에서 종교간 화합을 다지고 사회 발전을 위해 가능한 일을 했던 것은 무척 잘한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는 가톨릭과 불교, 원불교의 여자 수도자들이 함께 [삼소회](三笑會)라는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는 옛 중국에서 불교와 도교, 유교의 세 현인이 서로 친하게 지내다 종교적 금기를 깨고 함께 웃게 된 어떤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 종교지도자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하겠다.

“십자군 전쟁을 겪은 가톨릭과 이슬람...교황은 평화를 위해 상대의 양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에 돌아가신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특히 이슬람이라는 과제를 풀어야 했다.
가톨릭은 유대교나 개신교, 정교회와도 풀어야 할 역사적 문제가 있었지만, 이슬람과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큰 상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 들어서도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일부로서 가톨릭은 이슬람과 직접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로마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의 지리적 조건 자체가 바로 지중해만 건너면 온통 이슬람인이 사는 아랍세계 아닌가.

우선 교황청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이슬람을 국교로 삼는 많은 나라에서 극소수인 가톨릭인들이 겪는 종교자유의 문제였다. 교황청은 세계 어떤 나라, 어느 상황에서든 가톨릭인들이 하느님을 자유롭게 예배하고 종교 집회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황청은 바티칸시국이라는 국제법상 국가의 지위를 유효적절하게 사용하고자 하며, 해당 국가와 정식 외교관계를 맺거나 아니면 비공식적인 교황 사절을 파견하여 현지 가톨릭인의 종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애쓴다.

이렇듯 이슬람권에서 '소수 약자'(minority)인 가톨릭의 경험은, 그리스도교가 지배적인 서유럽권에서 '소수 약자'인 이슬람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바티칸이 옛날 어느 때처럼 유럽내 이슬람인에 대해 이교도라든가 하면서 배척한다면, 반대로 중동 같은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더욱 소수인 가톨릭인도 탄압받게 될 것이다.

물론 바티칸이 “복음을 만방에 퍼뜨려야 하는” 선교 사명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바티칸은 유럽연합(EU)이 결성되어 헌법을 초안할 때 전문에 “그리스도교 문명”이라는 문구를 넣자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므로 바티칸의 종교간 대화나 공존에 대한 입장은 원칙적으로 완전한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한 것은 아니고, 현실상에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필요성을 인정한 차원에 머물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이끌던 바티칸이 다른 종교에 앞장서 종교간 협력과 대화를 위해 애썼다는 것 자체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비록 한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누군가 앞장서 나서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 한국에서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도 아닌 이슬람의 주요 종교 축일인 라마단이나 알-피트르 때, 불교의 부처님 오신날 같은 때마다 교황청은 축하 메시지를 빠뜨리지 않고 보냈다.

이처럼 상대의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 선도적인 우호조치는 곧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마련이고, 이제는 세계 각지의 이슬람이나 불교의 여러 지도자들이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면 그리스도교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흔하게 됐다. 산에 가서 절에 들러도 법당 안에 들어서는 것을 무슨 죄짓는 것처럼 여기는 일반 신자들이 아직도 적지 않기는 하지만,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조차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들르면 불교나 힌두교 등의 유서 깊은 사원에 들르는 일이 잦다. 진실로 평화와 우호라는 것은 아무 전제 조건 없는 선도적 조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가톨릭의 관심은 특히 이슬람권 안에서 강경 근본주의가 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 같은 중요한 예언자 가운데 하나로 본다. 물론 무함마드 예언자보다는 덜 치지만 말이다. 이를 두고 “하느님인 예수를 그냥 예언자로 보다니, 멸시한다”고 본다면 싸우자는 얘기가 되지만, “예수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면 화해하자는 얘기가 된다. 교황청은 이 공동의 유산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은 적이라기보다는 형제와 같으며, 함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고 촉구한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죽으면서 후임 교황으로 언론 물망에 오르는 이들 가운데 유독 “이슬람 전문가”라는 측면이 강조되는 이들이 여럿 있다. 다음 교황이 이 이슬람 전문가들 가운데 한 명이 될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후임 교황은 이슬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영(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 1960년 태어난 박준영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부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한국지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과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역서 <교황의 죄>(Papal Sin, 도서출판 중심.2005)를 펴내기도 했다.

* 교황 사진은, [가톨릭신문사]가 교황의 방문(1984)을 기념해 펴낸 책 <평화의 사도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화보>에 실린 사진을 편집한 것으로, 1984년 5월 5일. 대구를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모당(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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