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4.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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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1>
“아이들 고생시켜 점수따는 교사들..‘수업연구’ 왜 하나?”
“부당한 관행일 줄 알면서 떨쳐버리지 못하는...숱한 대회, 학교에 학생은 없다”


그리운 J야.
요즘 동경 생활은 어떻니? 참 딸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텐데, 일본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학창시절 너도 교사가 되고 싶어 했잖아? 근데 넌 일어를 전공하고, 결국은 남편 따라 일본으로 가버렸구나.

몇 년에 한번씩 볼 때마다, 그래도 여자가 애 키우면서 직장생활 하기에 큰 어려움 없고, 방학이 있어 적어도 일년에 몇 달은 쉴 수 있고, 보수 적당하고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이 어디 있겠냐고 부러워했지?
그래 맞아.
그런 말은 비단 너에게서 듣는 것만은 아니니까.
근데도 왠지 난 어디서 내가 교사라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해.

J야.
올해 학교를 새로 옮겼어. 개인점수가 적어서 집에서 4-50분 거리에 발령을 받았어.
개인점수를 많이 따려면 각종 대회에 나가야 하는데 동교과수업연구란 걸 제일 많이 해.
나도 두 번이나 했으니까.
동교과 수업연구는 교사들이 몇 명이서 한 팀을 이루어 한 과목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제도야. 연구결과는 실적물 만들고, 수업방법개선해서 적용하고, 보고서 작성해 내서 심사에 통과되면 개인점수를 5점주는 제도야. 학교를 이동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점수지. 그리고, 한번 이동하면 제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참 좋은 제도인 것 같지?
한 과목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도 기를 수 있고, 연구결과를 애들에게 적용시켜 학력신장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교사들에게 인센티브인 점수를 줌으로써 적절한 경쟁을 통해 자기성장도 될 것 같고.

근데 난 부끄럽게도 동교과수업연구를 한 번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어.
먼저 동기부터가 불손해. 한 가지라도 더 연구해서 애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서가 아니라, 내 개인점수를 따기 위해서였으니까.

방법도 편법일색이야.
3월달부터 계획 세워 애들에게 무리가지 않게 차근차근 준비해서 11월 쯤 심사를 받아야하는데 동교과 수업심사가 있기 2-3주 전부터 바짝 서둘러 준비를 하지.
실적물을 남기기 위해 애들에게 매일 1시간 정도는 수업진도 나가는 대신 각종 학습지를 풀게해. 연수물 남기기 위해 교사들은 동교과주제 관련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느라 바쁘지. 교실환경도 동교과연구주제에 맞게 재정비하고, 한사람은 맡아서 보고서 쓰고, 심사당일 수업할 지도안 짜서 비슷한 주제로 애들과 수업도 해보고 그야말로 정신없는 2-3주를 보내.

오죽하면 작년 우리 반 진이의 일기장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겠니?
‘우리 선생님이 요즘 정말 이상하다. 매일 학습지를 하라고 한다. 난 학습지 하기 싫은데’...그래도 평소에는 나름대로 충실한 수업을 위해 준비도 많이 하고, 적어도 대충 넘어가지는 않았는데 난 정말 부끄러웠어.

근데 J야, 내 변명도 좀 들어줄래?
7-8개 과목을 매일 다른 차시의 수업을 하고, 일기검사, 생활지도, 청소지도, 각자 맡은 업무처리, 다음날 수업준비 등을 하면서 한 과목에 대한 집중연구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 거기다 각종 행사는 왜 그리 많은지, 체육대회, 운동회, 예술제, 다독상 시상, 동시암송대회, 창의력경진대회, 과학상상화 그리기대회 등등등.

애초에 내실 있는 동교과수업연구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점수에 연연해 그만두지 못했던 내가 한심스러워. 또 이건 팀플레이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못한다고 하기도 곤란해. 근데 우스운 건 누구나 나처럼 생각하면서 한다는 거야. 그래서 거의 모든 교사가 하고 있는 실정이고, 결국은 누구나 하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점수를 얻는 게임인 것 같아.

교육청은 동교과수업연구를 많이 하는 학교에다 표창해서 학교점수도 주고 상금도 준단다. 비단 이런 것뿐 아니라 각종 대회(교육과정운영보고서 대회, 각종 시범학교 운영 등)를 열어 많은 상금을 주고 있는 실정이야.

인근의 학교는 그렇게 탄 상금으로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직원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걸로 알고 있어. 언제부터인지 학교는 학생들은 없고, 교사들이 점수를 따기 위한 각종 대회, 학교점수를 따기 위한 각종 대회만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J야, 난 부끄러워.
애들에게 교육이라는 미명으로 많은 억압을 했고, 많은 관행들이 부당한 줄 알면서도 과감히 떨쳐버리지 못했고, 나 자신의 작은 이익을 포기하지 못했으니...

자랑스럽게 내가 교사라고 말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까?

* 이 글은, 대구지역 초등학교에서 10여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는 30대 후반의 여교사가 쓴 것으로, 학생들보다 자신들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학교와 교사들의 성찰을 바라며 글을 보내왔습니다. 글을 써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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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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