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방검찰청은 답하라. 증거가 없는 것인가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것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명]
대구지방검찰청은 답하라
증거가 없는 것인가 ‘성인지 감수성’이 없는 것인가
- 대구지방검찰청의 영남대 성폭력 사건 불기소 규탄 성명 -


2021년 12월 29일 대구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영남대 교수 성폭력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변호사는 검찰로부터 아직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지만 12월 28일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배포했다고 한다. 영남대 교수 성폭력 사건은 지난 5월 피해자가 실명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하였고 25만 명의 시민이 이에 공분하였으나 경찰은 불송치 결정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이의신청하여 검찰에서 재수사 하였지만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대구지검의 보도자료에 명시된 불기소 이유 요지는 ‘피의자와 고소인 간 사건 발생 다음 날 통화 내용, 사건 발생 이후 피의자와 고소인의 태도 및 SNS 대화 내용, 참고인의 진술 등 증거관계에 비추어 피의사실을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여 혐의없음 처분’한다는 것이다. 앞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건 발생 장소에 간 사실은 인정되나 피해자가 동의하에 애무를 한 사실이 인정되며 가해자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피해자의 진술 외에 피의자의 범죄혐의를 입증할 증거나 증인이 없음으로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고 하였다. 경찰은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 사실 진술에 대해 전혀 듣지 않고 가해자가 주장하는 대로 성적행위에 동의했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의 불송치 이유와 대구지검의 불기소 이유는 너무나 비슷하다.
성폭력 사건에서 사건 현장에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경우 목격자가 없을 수밖에 없고, CCTV 등의 직접 증거가 없을 때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또한 이 사건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전제하고 조사되어야 한다.
지역혁신선도연구센터(이하 RLRC)라는 2019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총 122억여 원을 지원받는 센터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센터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RLRC사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사업에 참여한 교수들은 매우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다. 이런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렵고 이해관계자인 주변인들은 진실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의해 증언하게 된다. 실제 피해자는 센터 내에서 성추행 피해를 이야기하고 2차 피해를 입게 되자 실명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였다.  

피해자는 RLRC센터 일로 7년간 가해자와 계속 만나야 하는 조건과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할 경우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이룬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불안함으로, 사건 다음날 만날 것을 제안하는 가해자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둘이서만 만나서는 안 되고 만날 필요 없다”고 이야기했다. 더불어 피해자는 가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없던 사실인 듯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완곡하게 자신의 뜻을 분명히 이야기하였다. 이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피해자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1년3개월간 거의 만날 일이 없었던 센터가 다시 가동되자 심각한 성추행이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가며 일어났고, 급기야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도 성추행을 당하자 피해자는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또한 피해자는 다른 교수와 가해자가 함께 있는 업무를 위한 카톡방이 있었을 뿐 가해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한 SNS 기록과 주고받은 문자가 없다. 업무를 위한 카톡방에서도 가해자가 아니라 다른 교수와 주로 대화했다.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개인적 관계도 없으며 센터 내 공적 관계임을 반증하는 것이고 피해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사건 발생 당시부터 사용하고 있던 핸드폰의 포렌식 수사까지 받았다.
또한 피해자는 학교의 다른 교수에게 강간 피해뿐만 아니라 이후 이어진 성추행 피해를 자세히 이야기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직접 들은 참고인에게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검찰에 병원진단서, 사실확인서, 녹취록 등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줄 많은 증거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이 모든 증거를 배척하고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 하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검찰이 말하는 ‘강간 범행을 인정할 증거’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있다.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 당시에 심한 상처를 입더라도 온몸으로 저항하고 사건 직후 울부짖으며 항의하거나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는 ‘완벽한 피해자’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남대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이렇게 물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싫어하는 표시를 냈다가 어떠한 추가 피해가 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죽을힘을 다해 ‘멀쩡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면 피해사실이 없어지는가? 그렇다면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성실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쓰고 있는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미 학내와 언론, 온라인에서 가해지는 2차 피해로 고통스러운 피해자는 또다시 ‘허위로 피해사실’을 이야기하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한 이상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영남대 인권성평등센터에 수사기관의 판단을 받고 난 이후 처리하기로 미루어져 있는 피해자에 대한 여러 가지 신고는 이제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동료에게 성폭력 피해와 지속적인 성추행 피해를 입고 괴로워하다가 용기 내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한 피해자에게 검찰은 ‘증거가 없으니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한다고 한다. 여성단체들이 지원했거나 지원하고 있는 여러 사건과 비교했을 때 영남대 성폭력 사건은 피해사실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검찰에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증거가 없는 것인지 차고 넘치는 증거를 ‘성인지 감수성’으로 보지 않은 것인지.
성폭력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대신해 국가에 소를 제기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검찰은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강간한 사실이 없다’는 가해자의 진술에 근거하여 조사하고 결론 내렸다. 이에 피해자는 항고의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검찰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정의로운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절망의 절벽을 온 힘으로 올라온 피해자를 다시 절벽 아래로 밀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2021년 12월 31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노동자회,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구여성회, 대구여성인권센터, 대구풀뿌리여성연대,
대구여성광장, 함께하는주부모임, 포항여성회, 경산여성회, 경주여성노동자회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