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전용시설은 또 다른 차별”

평화뉴스
  • 입력 2005.04.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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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은 배제와 동정의 이미지..공존이 더 중요하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이연재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윤부장, 저상버스는 장애인들만 탈 수 있는 거야?”
순간, 그동안 여러 차례 장애인 집회에 참석했던 분이 아침부터 웬 생뚱맞은 소리를 하나 싶었다.

“누가 그래요?” 약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 오늘 아침 신문에 대구에 저상버스가 도입되었다는데, 기사에서 저상버스가 ‘장애인 전용’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내가 “틀렸어요. 엄연하게 ‘공용’입니다”라고 하자, 이 위원장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지금 기자한테 항의 전화해야겠어.” 전화를 끊자마자 그 신문을 펼쳤다. 정말, 그 기사의 제목이 “장애인들만 타세요”였다.

이처럼 곳곳에서 ‘장애인 전용’이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다.
승강기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관람석에서도 전용 표식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표식 앞에서 비장애인들은 움찔거린다. 그런 설비를 이용하기라도 하면 왠지 뒤통수가 간지럽다.

그런데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라.
작은 손수레에 짐을 실은 할머니가 휠체어용 리프트를 타고 오르내리면 어떤가. 용변이 급한 비장애인이 장애인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뭐가 문젠가. 아무도 없는 장애인용 관람석을 비장애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특히, 승강기는 누구나 이용해도 상관없는 설비이다. 그런데도 전용 표식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장애인들과 따로 살아가려는 비장애인들의 못된 편견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각종 편의 시설에 장애인 표식을 붙이는 것은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장애인‘만’ 이용하라는 뜻이 아님을 비장애인들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 다만, 주차장의 경우 한 번 주차하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문제 때문에 예외적으로 전용 시설로 분류할 뿐이다.

문제는 설비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위한답시고 장애인 전용 ‘생활 시설’을 만들어 놓고 장애인들을 그곳에 격리시키고 있다. 말이 좋아 ‘생활 시설’이지 그곳이 좋아서 들어가는 장애인은 거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용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설은 소록도 한센인 수용 시설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의 삶과 꿈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반문명적 공간이다.

최근 불거진 청구재활원 사태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곳 생활인들(사실상 수용자들)은 길게는 20년이 넘게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 그 분들이 ‘자신의 의사’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최근 규탄 시위에 참석한 것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 민주화’ 구호는 있지만 ‘시설 폐쇄’ 구호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처럼 ‘전용’이라는 말에는 배제와 동정의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전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을 더 좋아한다. 이는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으려는 소박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전용’ 딱지를 덕지덕지 붙이는 것보다 장애인들과 공존하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아양교 위에 아치형 보도교를 만들고 반월당 횡단보도 없애 장애인들의 이동을 제약한다든가, 장애인들을 격리된 시설에 가두어 놓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데, 전용 딱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침,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 날은 현실 장애인들만의 ‘전용’ 기념일이 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비장애인들은 미래의 장애인들이기 때문이다.

윤삼호(대구DPI 정책부장)
* 1966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윤삼호씨는, [대구지역야학연합회] 의장과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를 거쳐, 지난 2003년부터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을 맡아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4월 11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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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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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월)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4.25(월)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5.2(월)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5.9(월)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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