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망각증에 저항하자”

평화뉴스
  • 입력 2005.04.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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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용의 목요칼럼 7>...
“헐리우드 ‘마이너리티 리포터’, 미국의 패권주의 환상”
“세계 민중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주체...부시, 그들을 미래 범죄자로 대하지 않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황당한 미국영화를 본 적 있다.
사람 같지 않은 초능력자 세 사람이 괴기한 분위기로 특수한 수조 속에 누워 몽상모드에 들어가면 미래의 범죄들이 이들의 머리에 미리미리 떠오르며, 보통사람들도 특수한 장치를 통해 그 미래상을 함께 볼 수 있다. 화면에 떠오르는 미래상황에 근거해 경찰은 흉악한 범행이 일어나기 전에 예상 범죄자들을 체포도 하고 아예 처단하기도 한다. 꿈 같은 이야기다.

물론 그것은 행복한 꿈이 아니라 악몽이다.
이 영화가 생생한 화면으로 보여주는 범죄의 예견가능성이라는 전제는 정치적으로 불순하고 철학적으로 불길하다.


정치적으로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부시와 그 일당들에게 악의 축이나 테러국가로 찍히면 테러의 테자도 저지른 적 없는 힘없는 나라 착한 백성들까지 미래에 저지를 테러에 대한 죄값으로 폭탄 세례 받는 것도 당연하다는 식의 위협을 내포한다. 영화는 세 명의 초능력자라는 원시적 마술사의 이미지와 얼마간의 초현대적 사이언스 픽션 소품들을 뒤섞어 부시의 포악한 독단론을 전세계에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헐리웃이 미국 패권주의의 환상들을 제조해온 것은 유서 깊은 악습이니, 이 영화가 유별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아님을 잊지는 말자.

철학적으로 그것은 재수 없는 숙명론을 주입하면서 인간의 주체성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부정한다.
특정한 범죄 혹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필연적일 수 있다. 문제는 현대인의 정보처리 능력으로는 그 필연의 내용을 완벽하게 미리 인식하는 것이 대체로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영화 속의 초능력자들만 아니라 부시의 막강한 정보부대들이 유전자 지도를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하더라도, 개개인들의 미래 행위를 예견할 때에는 늘 결정적 장벽에 부딪친다. 그러한 예견이 현실 속에서 미래의 행위와 얽힐 때 야기되는 간섭효과가 그 원흉이다.

즉, 예견은 행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는데, 예견의 주체들이 이 영향을 포함하여 예견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향을 포함하여 예견한다는 것은 예견 주체들 자신까지 예견 대상인 미래 행위의 변수로 삼는 것이며, 이로 인한 불확정성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영향을 배제한 예견은 설혹 냉정한 과학의 포즈를 취하더라도 결정적인 대목에서 틀려버릴 수 있다.

모든 일이 세계사의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을 일반론의 차원에서 인정하더라도 그 필연의 내용을 누구도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필연의 동생뻘 되는 대세라는 것도 사람들 하기에 따라 항상 뒤집힐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은 매 순간 자기 나름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근거해 선택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방식을 지닌다.

이렇게 스스로 인식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존재야말로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인식과 선택과 행동이 여러 사람에 의해 공동으로 이루어질 경우 이들은 공동주체를 이루는 셈이다. 인간은 인식하지 않고 선택하지 못하고 행동을 포기할수록 주체성을 잃는다.

인간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아니다.
강아지도 손님을 향해 짖어야 할지 꼬리를 쳐야 할지 그때그때 상황을 인식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한에서 주체다. 그러나 강아지의 주체성은 그 비슷한 수준을 별로 벗어나지 못할 만큼 매우 제한되어 있다. 어항 속 붕어의 주체성은 좀더 제한되어 있다.

반면에 인간은 모든 것을 객체로 삼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의식이나 무의식적 욕망까지 객체로 삼고 그에 대해 인식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관습의 마력을 깨뜨릴 수도 있고, 목숨을 걸고 독재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상식이나 남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선한 쪽으로든 악한 쪽으로든 인간의 주체적 잠재력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주체사망 혹은 주체소멸에 대한 온갖 과잉진단들은 기본적으로 궤변이다.

우리는 타인을 공동주체로 대하거나 객체로 대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압도해온 과정, 즉 소수 권력자들이 다수 민중들의 인격과 의사를 무시하고 이들을 괴롭히고 착취해온 과정에서는 민중들이 객체로 취급되어온 셈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매질하고 고문하고 폭탄을 퍼붓기 위해서는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그들과 공동주체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소나 돼지를 도살하면서 소나 돼지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그냥 객체로 대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의 미래 범죄자들은 주체로 대우받지 못한다. 추적과 제압의 객체일 뿐이다.
부시는 이라크 민중을 포함해 대부분의 세계민중들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주체로 대하지 않고 그냥 객체로 대했다. 그러나 그렇게 객체로 대우받는 세계민중들도 엄연히 주체이며, 그들 또한 불가피하게 부시와 그의 미국을 객체로 대할 것이다. 부시와 그의 패권주의집단이 자초한 인류사적 불행이다. 그런데 크고 작은 부시들, 즉 패권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인류사는 어떤 패권주의자들의 초능력 정보기관이나 권력장치가 예견하고 의도하는 그대로 필연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패권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적 공동주체성이 발현될 예측불허의 공간들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패권주의자들만이 타인들도 주체임을 쉽게 망각할 뿐이다. 자신이 주체임을 망각하는 것도 광범하고 심각한 증상이긴 하다. 범세계적 주체 망각증에 저항하자. 공동주체의 행복을 나누자.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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