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투자의 방향 전환이 절박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5.12 10: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승용의 목요칼럼 8>
..."노 정권의 교육개혁, 대학서열 강화가 해답인가?"

성적 비관으로 또 한 생명이 쓰러졌다.
고3 수험생을 모시고 사는 죄 많은 학부모로서 우리 아이는 오늘도 무사한지, 중간고사 기간인데 큰 사고는 치지 않을지 소심증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팔자다. 어찌하면 꽃다운 청춘들이 입시에 가위눌리지 않고 활짝 필 수 있을까.

교육부의 내신강화 방침으로 고등학교 주변이 좀 어수선하다.
이제까지 어떤 제도인들 입시의 고통을 잠재워준 적 있으랴만, 모처럼 공교육 정상화에 조금 보탬이 될만한 조치가 나오자, 학교를 전쟁터로 만든다고 새삼 아우성들이다. 그렇다고 본고사 부활 따위가 그 대안이 될 리 없다. 물론 내신강화 역시 미봉책이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대학서열체계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한 입시제도를 어떤 식으로 바꿔보아도 사정은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대학서열은 결코 대학들 자체에 맡겨 완화될 수 없다.
범국민적 요구와 이에 근거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 범국민적 요구도 형성되지 못했고, 정부의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개혁의 성패는 경쟁력강화와 공공성제고라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경쟁력강화를 앞세워놓고, 공공성과 관련해서는 3불정책을 방어하는 선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차별화를 통해 기득권을 대물림하려는 세력의 끈질긴 도발을 막아내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어자세 취하기에 급급한 것만으로 공공성과 관련해 정부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면 난감한 일이다.

공공성 제고의 핵심은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교육자원을 온전히 가동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정적 발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능력들을 적극 길러내는 일이다. 그러한 능력들에는 기업들이나 특정 정치권의 직접적 요구사항들을 넘어서는 비판력과 창의력도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이 경우 공공성은 국가경쟁력과 따로 놀지 않고 동반 성장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학지원자 수가 입학정원보다 적은 상황을 대학의 위기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니, 드디어 입시지옥이 해소될 최소조건은 마련된 것 아닌가.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넘기 어려운 장애물, 즉 대학서열 문제가 버티고 있다.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넘쳐나지만 들어가고 싶은 대학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넘쳐나는 대학들 절대다수를 들어가고 싶은 대학으로 힘닿는 한 변신시켜 가는 것이야말로 대학개혁의 본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잘 나가는 소수 대학들이 아니라 절대다수 대학들에 대한 범사회적 투자 없이는 당연히 대학서열의 완화도 요원한 일이며, 대학서열 완화 없이 입시지옥의 극복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투자의 방향전환이 절박하다.
“400억원 기부받는 고려대...보직교수들의 사표 소동은 낯뜨거운 일”
“대학 독과점을 지지하면서 입시지옥을 탓하는 것은 모순...대학평준화 논의를 이제는 회피하지 말자”


그런데 지금은 정부의 빈약한 투자조차 대학서열 완화가 아니라 강화에 쓰이고 있다.
단적인 예로 교육부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 즉 대학정원을 줄이는 일에 국고를 써가며 앞장서려고 한다. 또한 교육부는 그렇지 않아도 요지부동인 대학서열을 만인이 좀더 실감할 수 있도록 압박하고, 잘 나가는 몇몇 대학들에 국고를 더욱 쏟아 붓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교육계를 시장판으로 만들어온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개혁의 이름으로 개발독재 시절의 성장논리를 대학사회에 다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다수서민을 위한 정부가 택할 방향이 아니다. 서민의 입장에서는 비판과 저항이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에서만 해도 400억 원이 넘는 뭉칫돈을 기부 받을 수 있는 고려대처럼 잘 나가는 대학들로부터 서열강화 정책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뾰족한 대응은 기대할 수 없다 해도, 고려대 보직교수들의 사표 소동은 또 뭔가. 낯뜨거운 일이다.

명예철학박사 해프닝에서는 교육철학의 빈곤이나 학문적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서 외형적 성장에 대한 대학의 병적 집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고려대의 경쟁력이 기부금 부족 때문에 위축되어 왔을까. 이건희씨가 우리 사회를 위해 어떤 철학을 펼쳐 보였다는 말인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신이 건강한 학생이라면 문제를 제기하고 몸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

다행히 누가 크게 다치거나 심각한 재산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야만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 어디서도 철학적 논거를 찾을 수 없다. 적나라한 돈 이야기가 비난의 골자다. 기부문화의 싹을 밟았다느니, 거대물주 삼성과의 돈독한 관계를 망쳤다는 등의 험담이 대부분이다. 투명한 거래를 위해 명예박사학위의 가격이라도 공시하면 좋아할 야비한 분위기다.

능력 되면 챙기자는 이 야비한 풍토를 조장하는 어떠한 개혁 방안으로도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체득시킬 수 없다. 대학경쟁력의 독과점을 지지하면서 입시지옥을 탓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대학평준화 논의를 이제는 회피하지 말자.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