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꼭 격리시켜야만 하나?”

평화뉴스
  • 입력 2005.05.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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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 수용시설보다 장애인의 사회참여정책이 더 필요하다”


청암재단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우리 지역에서도 장애인 시설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 졌다. 시민들은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허탈하고 분노했다. 시설운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을 도둑질했고, 관리ㆍ감독해야할 공무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더욱이 TV 화면에 생생하게 잡힌 생활인들의 강제노역과 끔찍한 폭력을 보면서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리와 인권유린이 일부 시설이 문제이고 대부분 시설은 잘 운영된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거꾸로 대부분 시설이 문제이고 일부 시설이 그나마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여전히 많은 장애인 시설에서 비리와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청암재단 비리가 폭로되기 직전에도 충북 옥천에 C재활원에서 똑같은 사건으로 이사장이 구속되었다. (SBS 04. 12. 6) 특히,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따라서 통제도 받지 않는) ‘미신고시설’의 인권 유린은 수 없이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시설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속성 때문이다.
시설은 장애인처럼 독립할 수 없는 주변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사회적 문제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그 수용자들은 사회적 일탈자들이며, 사회의 경제적, 도덕적 부담일 뿐이다. 그들은 하루 세끼 밥과 잠자리, 혹은 양식 있는(?) 시민들의 따듯한 온정이 필요할 뿐이다.

그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일거수일투족을 젊은 사회복지사들의 통제와 지시를 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이고, 사회에서 필요한 기능과 지식이 필요 없는 폐기된 인생들이다. 그들에게 자기결정권과 인간의 존엄성은 애초부터 없었고, 통제된 삶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격리와 통제 시스템이 비장애인들(시설운영자, 사회복지사, 전문가, 경우에 따라서 자원봉사자 등)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폭력을 조장한다.

이러한 폭력성 때문에, 서구에서는 이미 60~70년대부터 반시설 (혹은 반시설) 운동이 일어나 지금은 시설수용정책 대신 사회참여정책이 일반화되었다. 정부 예산은 시설운영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혹은 독립하여 살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직접 지불된다. 그 돈을 받는 장애인들은 더 이상 서비스 수혜자가 아닌 소비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장애인들의 자기결정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존중되고, 가족ㆍ지역 사회ㆍ국가는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찌된 영문인지 탈시설은 고사하고 시설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시설은 신고된 것이 237개, 신고 되지 않은 시설이 약350개가 있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약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올 해까지 2년 동안 84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소위 ‘미신고시설’에 지원한다. 미신고시설을 ‘양성화’하여 인권 유린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래서 우리나라는 점점 ‘시설하기 좋은 나라’, 다른 말로하면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영어에서 시설을 표현하는 단어가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colony’라는 말도 있다.
19세기 영국인들은 장애인 집단 거주시설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 말이 의미하듯이 장애인 시설은 비장애인들의 ‘식민지’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반문명적 공간인 장애인 시설을 ‘민주화’하자는 주장은 있지만, 시설을 폐쇄하자는 목소리는 없어 아쉽다. 시설 민주화가 곧 탈시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설 민주화가 오히려 시설 정책을 고착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반시설 운동은 경제 발전의 정도로 보면 이미 늦었는데, 장애인들의 준비 정도와 시민 의식의 수준으로 보면 아직 이른 듯싶다.

윤삼호(대구DPI 정책부장)
* 1966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윤삼호씨는, [대구지역야학연합회] 의장과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를 거쳐, 지난 2003년부터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을 맡아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5월 10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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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월)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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