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소나무가 고향인 너 재선충은 사람들처럼 그냥 지구라는 거대한 언덕에 기대사는 평범한 존재였을텐데 일본에 와선 모든 소나무를 죽이는 살인마로 한국에 와서도 넌 어디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구나. 1988년 부산에 처음 상륙했을때 한국 사람들은 너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더구나. 알고봤더니 너의 비상(飛上)을 도와주는 친구 솔수염하늘소가 니곁에 있더구나.
우리가 가난할 때 몸의 이를 잡듯 DDT를 뿌렸듯이 한국사람들은 항공방제로 너의 친구 솔수염하늘소를 잡고 있어. 요즘은 이것도 모자라 널 ‘소나무에이즈’라고 부르더군. 소나무를 소나무라 부르기 전에는 넌 재선충이라고도 불리지도 않았을텐데. 이제 널 막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이 되었어. 넌 역시 대단한 놈이야.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애기생충, 너를 미국 애리조나에서 옮겨온 존재는 사람들인데 넌 이리도 역대 불청객중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구나. 애리조나에서 수출한 상품을 포장한 포장재에 실려 1960년대 일본에 도착한 너는 얼마나 힘들었겠니. 너에게 맞지도 않는 새로운 환경에다가 언어도 이상하고. 일본의 소나무들은 너에겐 밥맛이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싹쓸이를 해버렸구나. 너에겐 단지 살아갈 물이 필요했고 너의 집을 노크한 솔수염하늘소가 친구였을뿐인데 말야. 일본은 이제 홋카이도에만 소나무가 자생한다지.
마치 엄마의 품을 떠나 미국으로 입양간 코흘리게 혼혈인처럼 살아가면서 스스로 문화적 정체성을 고민해가며 살아야 하는 고립무원의 존재감을 아마 너는 겪었을 테지. 그래서 너무 외로워 넌 아주 강한 번식력을 지니게 되었을꺼고 너의 손자의 손녀들과 함께 나무 하나를 통째로 삼키는데 몇주일이 걸리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난 소나무 재선충, 너를 환영한다. 너는 인간들에게 아주 엄청난 교훈을 남겨주고 있어. 스스로 움직이고 경계를 넘지 않는 자연의 신비로운 질서를 파괴하고 유전자변형을 통해 생태계의 친구들을 돌연변이로 만드는 인간들에게 넌 외로이 투쟁하고 있는거야. 너의 투쟁에 솔수염하늘소가 동참했고 이제 나도 너의 길고 긴 싸움에 동참하는 거야.
"인간의 손으로 심어진 소나무, 끝을 맺다."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 군자를 상징하는 동북아시아의 애호수였지만 요즘 겨울산은 겨울산 답지 않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것이다. 비무장지대의 산림을 3년동안 지켜본적이 있다. 그곳의 산림은 겨울에 푸르지 않았다. 겨울은 완전한 회색이었다. 시린 겨울의 싸늘함속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의 푸름이야말고 절개를 말할 수 있지만, 박정희대통령시절 치산녹화(治山綠化)사업으로 심어진 대부분의 소나무들은 절개를 말 할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는 겨울의 산의 절반이상이 다 소나무다. 다 푸르다. 나무들이 다 푸른데 무슨 절개를 말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람의 살갗을 담은 백두대간의 자작나무만도 못한 흔해빠진 소나무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의 산이 한국전쟁과 땔깜시대를 벗어나 푸른 옷을 입게 된 것도 불과 20년 안팎의 일이다. '84년 임업통계요람' 에 따르면 남한 전체 임목면적의 84%가 20년생 이하, 즉 나무 10그루중 8그루 이상이 박정희시대에 심어진 것이다.
박정희는 73년 손수익을 산림청장으로 임명하면서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고속도로.공업화.새마을운동은 성과를 거뒀는데 치산녹화가 잘 안되고 있어. 임자가 맡아 치산녹화를 이룩해봐. " 손청장은 5년8개월간 재임하면서 집무실 입구에 '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라고 써붙여 놓고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 (73~82년) 을 진두지휘, 예정보다 4년 앞당겨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국을 순시할 때 경부고속도로 양편을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1백50분동안 무려 50건, 3분마다 한건꼴로 녹화사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 당시 산림녹화사업은 화전 정리사업으로 이어졌다. ‘화전’이라는 수천년을 이어온 서민들의 삶의 방식은 74년부터 78년까지 5개년계획으로 공비소탕작전 하듯 군용 헬기까지 동원, 강원.경북.충북등 깊은 산간지방에 흩어져 있던 30여만가구를 정리했다고 한다.
10년간의 녹화사업으로 전국수목의 80%를 심었으니 인간이 산의 생태를 만들었다고 봐도 거의 무방한 것이다. 그것도 심자마자 시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소나무와 자생력이 강하지만 다른 나무에 배타적인 아카시아나무를 너무 많이 심었다는 지적이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경상도 가로수는 대부분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가 심어졌지만 전라도는 메타쉐콰이어가 많다고 한다. 특별히 그렇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경상도는 플라타너스를 많이 보유한 업자가 계약을 했고 전라도는 메타쉐콰이어를 생산한 조경업자라고 했다. 자연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천박한 수준의 산림조경사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인간의 무지, 소나무로 오염된 국토"
지금 우리 눈 앞에서 죽어가는 소나무의 대부분은 박정희의 손가락 지시로 심어진 나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기보다 자연을 지배하고 점령하고 우리의 손아귀에 두려는 개발경제의 산물은 결국 자연이 가진 위대한 힘, 자기정화의 질서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큰 눈으로 보면 지구상에 번창했던 동물이나 수종은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도 어느땐가 사라지고 다른 종이지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는 은행나무가 지구상에서 가장 번창했으나, 지금은 은행나무는 식제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다. 은행나무 다음으로 소나무가 번창했던 것이나 지금은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산림전문가들은 소나무 다음으로는 아카시아가 지구를 덮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아카시아는 변화하는 기후에 가장 잘 적응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재선충 때문에 죽어가는 것은 ‘소나무’가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재선충이 위협하는 것은 자연에 손을 대고 있는 인간들의 욕망인 것이다. 재선충의 수줍고도 은밀한 생명활동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박정희, 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있다. 녹화사업이 잘된 서독을 다녀와 자존심이 상해 녹화사업을 끝내기 전에는 유렵에 다시는 안 간다고 선언했던 자존심으로 뭉친 군사독재자의 욕망에 재선충은 도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나무 구제작업만 고집하는 것은 또다시 자연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어설픈 몸짓인것이다. 그러므로 재선충 구제작업은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전반적으로 숲의 생태성을 회복하는 마스터플래을 세워아 하는 것이다.
"생명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을 기원하며..."
우리에게 생명다양성보존협약을 기억한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회의에서 각국의 정상들이 생물종을 보호하여 희귀유전자의 보전, 생태계의 다양성, 생태계의 균형유지 등의 협약에 서명한 일을 말한다. 우리가 지금도 항공방제로 죽이고 있는 솔수염하늘소와 재선충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올해 10월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을 채택추진중이다. “문화상품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유경쟁 시장에 맡겨야 한다.” “문화상품은 한 지역, 민족, 국가의 정체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두가지의 입장이 전 세계를 한 단위로 삼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제 생명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은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켜야될 마지노선임을 국제사회가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 권상구 사무국장은, [경북대영자신문사] 편집국장과 [대구YMCA] 이사, [대구거리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대구관광정보센터] 자문위원과 [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시민참여형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5월 16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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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5.16(월)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5.23(월)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5.30(월)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6.6(월)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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