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애우’를 싫어하는 이유"

평화뉴스
  • 입력 2005.06.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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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 44> 윤삼호(대구DPI 정책부장)...
“장애우는 동정의 이미지, 비장애인 중심의 표현...그냥 ‘장애인’이면 충분하다”

“나를 ‘장애우’라 부르지 말라!”
몇 해 전, 여성 장애인 활동가 박지주씨는 ‘장애우’에 대한 반감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장애‘우’ 즉, 장애인을 ‘친구’로 생각하자는 표현이 왜 나쁜가?
장애인들이 너무 속 좁은 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비장애인들이 더러 있을성 싶다.
하지만 나는 박지주씨의 항변에 공감한다.

‘장애우’라는 말은 1987년 어느 장애인 단체가 당사자들의 견해나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만든 신조어이다. 장애인을 친구로 생각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잡자는 취지였다.

그 뒤, 유행에 민감한 언론이 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자칭 장애인 애호가들인 전문가들(사회복지사, 치료사, 의사 등), 종교인들, 교사들,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투어 ‘장애우’ 전도사가 되었다. 그 결과, 이제 일부 장애인들마저도 자신을 ‘장애우’로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장애 운동의 성장과 함께 ‘장애우’란 말이 장애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장애우’를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장애우’에는 동정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처럼, 장애인들 가운데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을 터인데,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친구로 보자는 것은 지나친 동정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해서는 물론 안 되지만, 나쁜 장애인조차 ‘친구니까’ 봐주는 것 또한 차별이다. 장애인을 무조건 친구로 봐주는 대신 보편적 권리와 책임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라는 인식이 먼저일 것이다.

그리고 ‘장애우’는 비장애인 중심적 표현이어서 나는 이 말이 싫다.
가령, 어느 장애인이 자신을 두고 ‘나는 장애우요’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나는 장애인의 친구요’가 되어 논리적 모순이 일어난다. 따라서 이 말은 장애인들이 쓰기에는 알맞지 않다. 다만, 자칭 개혁주의자라는 일부 오만한 비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함부로 지어 부르고 있을 뿐이다. 경험적으로, 나는 ‘장애우’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치고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끝으로, ‘장애우’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장애인들의 저항성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이 싫다. ‘장애우’는 따뜻함, 감동, 인간 승리, 고난 극복과 같은 단어들과 어울리지만 대립과 투쟁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근로자 투쟁’이라는 말이 없듯이 ‘장애우 투쟁’이라는 말도 없다. 친구 사이에 투쟁이 왜 필요하겠는가.

누구나 타인 혹은 다른 집단의 이름을 부를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그 대상이 소수자나 소수 집단일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성매매피해여성‘우’, 이주 노동‘우’, 성소수‘우’, 노숙‘우’가 생뚱맞을 뿐만 아니라 모욕적 표현이라면, 장애‘우’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서 장애인을 지칭할 때 그냥 ‘장애인’이면 충분하다. 장애인의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역외자일 뿐인데, 그 ‘이름’만 시민권을 얻는다고 해서 장애인이 저절로 동등한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삼호(대구DPI 정책부장)
* 1966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난 윤삼호씨는, [대구지역야학연합회] 의장과 [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를 거쳐,
2003년부터 [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을 맡아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5년 3월부터 4차례에 걸쳐 <시민사회 칼럼>을 써 주신 윤삼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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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제 3기 [시민사회 칼럼]은 2005년 3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16차례 연재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5.30(월) 권혁장(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6.6(월) 윤삼호(대구DPI(대구장애인연맹) 정책부장)
6.13(월) 권상구(거리문화시민연대 사무국장)
6.20(월) 오택진(대구경북통일연대 사무처장)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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