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을 넘어 민족적 지혜를 모아가자”

평화뉴스
  • 입력 2005.06.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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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5돌- 홍덕률의 시사칼럼 58>
...“한반도 평화와 통일, 남북의 신뢰를 쌓아가야”

며칠 전 저녁, KBS는 금강산을 배경으로 금강산 온정각 광장에서 개최된 <열린음악회>를 보여 주었다. 남북정상회담 5주년 및 금강산 관광객 100만명 돌파를 기념해 남과 북이 함께 마련한 음악회였다. <반갑습니다>란 북측 가수들의 노래로 시작된 열린음악회는 내내 가슴뭉클한 감동을 함께 전해 주었다.

2년 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두류운동장에서 열린 남북 합동 음악회 때의 그 감동, 그 날 저녁 시내 한 호텔에서의 석별 만찬 및 파티 때의 가슴터질 것 같았던 그 감동을 필자는 다시 느꼈다.

작년 이맘 때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 시내의 한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무대에서 못부르는 노래지만 <반갑습니다>를 열창하며 감동에 취했던 기억도 다시 살아났다.

하기야 남북 관계에서의 감동이 어찌 남과 북이 손잡고 함께 한 음악회 뿐이겠는가?
필자와 아내의 부모 모두가 북쪽이 고향인 분들이어서 그런지, 필자에게 통일은 아니 최소한의 남북 교류와 화해, 협력, 그리고 평화는 늘 간절한 염원이었다. 한민족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5년 전 오늘의 김대중대통령 북한 방문도 필자에게는 가슴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퍼주기니 노벨상을 받기 위한 꼼수니 하는 비난들도 필자에게는 치졸한 시비로 들렸다.

DJ의 방북과 역사적인 정상회담 이전에도 필자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감동적인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여전히 냉전 기운이 창궐하던 1993년 3월 19일이었으니 벌써 12년 전이었다. 남쪽의 장기수 이인모 노인이 북으로 보내진 것이다. 그 뒤 북이 혹독한 식량난을 겪을 때던 1995년에는 남쪽 쌀이 처음으로 북에 보내졌다. 그리고 1998년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북을 방문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장관이었다.
필자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가슴뭉클한 감동에 젖었을 것이다. 그 해 겨울에는 남북협력 제주도민 운동본부가 제주도산 귤 100톤을 처음으로 북에 보냈다. 또 11월 18일에는 금강산 관광선이 남쪽 사람들을 싣고 동해 바다를 첫 출항했다.

하지만 5년 전 오늘의 대통령 방북과 이틀 뒤의 남북정상회담은 그것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빅 뉴스였다. 그 뒤 남북 관계는 많은 우여곡절을 지혜롭게 헤쳐 가면서 신뢰와 평화를 구축해 오고 있기에 그 날의 정상회담은 더욱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의 응원단 파견(2003. 8), 휴전선에서의 선전전 폐기(2004년), 개성공단 착공(2003.6.30) 및 생산 개시(2004.12.15), 남북 장성급 회담 개최(2004.5.26), 남북 함정 사이의 교신 개시(2004.6.14), 올림픽 개폐회식에서의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2000.8의 시드니올림픽과 2004.8의 아테네올림픽), 정상회담 4주년 기념 한민족 축하 행사(2004. 6. 북측인사 103명이 인천 방문) 등, 이제는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운 남북간 교류, 협력 사업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와 같이 의미있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늘 가슴 한 구석 답답함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냉전이념의 발목잡기다. 여전히 남북 대결을 유지하려는 자세, 남북 대결 구도가 지속되어야 자신의 이해를 지켜나갈 수 있는 이들의 저항, 전쟁도 불사하자는 무책임한 사고가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국정을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낡은 시대에 갇혀 1990년 동서독 통일 이후 거세게 휘몰아쳐 온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 전환의 본질과 의미와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국가의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지난 3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소속의 인천광역시장이 며칠 전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몇 가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것 역시 박수받을 일이다.

오늘 북한을 방문하는 6.15 5주년 기념 방북단에 한나라당 의원 3명이 포함된 것 역시 매우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한나라당 내에 그와 같은 탈냉전 기류와 자세 전환 모색을 맹렬히 비난하는 의원들이 있어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의 일부라도 대북 교류, 협력, 평화 정책에 동참하는 쪽으로 고민하는 모습에는 적극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제 탈냉전은 우리 한반도에서도 국민 의식에서나 정부 정책에서나 주요 기조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평화에의 길은 멀다.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도 너무나 많다. 남쪽의 호전적인 냉전 세력 이상으로 북에도 그런 이들이 주요 정책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툭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으르렁거리는 미국의 매파 세력들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위협을 느끼면서 고춧가루 뿌리는 이웃 국가들도 결코 방심해선 안되는 위험 요인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무리 어렵고 골치 아픈 장애물들이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구축해 가는 과제, 그를 위해 남북간 교류, 협력, 신뢰를 쌓아가는 숙제는 너무도 중요한 민족적 과제임을 명심하고, 최소한 이 과제에 대해서만큼은 당파적이고 정략적인 접근을 삼가는 것이 그것이다.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전후해 열리는 이런저런 기념행사들이 지금 한반도가 처해 있는 냉혹한 도전과 환경들을 헤쳐가는 민족적 지혜를 한데 모아가는 의미있는 행사들이 되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특히 TK 주민이 그와 같은 한반도 화해, 협력, 평화에의 길에 적극 동참해 주기를, 그리고 새로 펼쳐지고 있는 새 시대의 주역으로 나서 주기를 염원해 본다.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또, 지역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도 대구KBS <화요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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