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개정은 기득권과의 전쟁”

평화뉴스
  • 입력 2005.06.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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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용의 목요칼럼15]...
"법 개정 없이 ‘절대권력 절대부패’를 막을 수 있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가족주의 및 출세주의 메시지의 씁쓸함과 별도의 여운을 맛볼 수 있다. 예컨대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 장면이나 진태의 광기 따위에서 그럴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는 오래지만 그 시대를 사로잡았던 것과 유사한 광기는 우리 사회 밑바닥에 늘 잠복해 있다가 적절한 기회를 만나면 폭발적으로 분출하곤 한다. 물론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광기의 정체를 다소 협소하게 혹은 모호하게 만들어 놓는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은 표면상 화해를 주제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민족사적 광기의 뿌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신천학살을 통해 처절히 드러난 좌우 이념 갈등의 역사적 실체는 친일파 지주들과 그 밑에서 땅을 부쳐먹거나 머슴살이하던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생존권과 인권을 위한 투쟁이자 기득권 사수투쟁이었다.

좌우 갈등은 이념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자와 가난뱅이 혹은 기득권 세력과 약자 사이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사립학교법에 얽힌 오랜 갈등의 실체 역시 법리나 이념의 문제라기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쪽과 이에 도전하는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다. 그런 까닭에 직접적인 총질이나 살육이 없더라도 그 폭발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사학재단들이 지키려는 기득권이 무엇인지는 흔히들 알고 있다.
대다수의 사학 재단들은 등록금과 국고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온갖 세제혜택이 첨가된다. 재단이 실질적으로 학교발전에 기여할 정도의 전입금을 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경우는 희귀한 사례다. 장부를 조작하여 비자금을 조성하고 로비에 쓰거나 부동산투기라도 하지 않으면 꽤 훌륭한 재단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비리사고는 특히 대구경북지역에서 자주 터졌지만, 유독 이 지역 사학들만의 특수현상이 아니다. 사학비리로 문제시된 액수는 지난 2000년 이후만 쳐도 1조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비리는 공개적으로 저지르기 어렵다. 감추는 것이 기본이다. 비리사학들은 재정운영 상황을 만인의 눈앞에 드러내는 개방체제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학교 울타리 내부에서 비리를 견제하거나 폭로할 가능성도 막아야 한다. 따라서 교직원이나 학부모회가 학교운영에 법적 권한을 갖고 실질적으로 개입하도록 놓아둘 수 없다.

일반 기업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려면 엄청난 상속세와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인척이 이사회와 학교운영의 실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사학들의 경우 과거 왕들이 자식에게 왕권을 물려주었듯이 교주 자리를 자연스럽게 대물림한다. 첨단 자본주의를 향해 질주하는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사학들은 운영권의 독점과 세습의 측면에서 아직 절대군주제 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세제혜택과 국고보조에 의지하고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세습하며, 덤으로 교육자라는 존칭까지 듣는 사학재단관계자들이 자진하여 그 막대한 기득권을 포기할 리 없다. 너무 자명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논거는 빈약하다. 고작해야 사기업의 경영권은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다. 경영권의 신성불가침성에 대한 사학재단 관계자들의 확신은 과거의 절대왕권에 대한 맹목적 신봉에 맞먹는다. 그러면서 어느 사학재단이 국고 지원금을 반납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세제혜택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공과 사를 자기 좋은 쪽으로만 택하는 편리한 논리로 요즘 세상에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건학이념도 단골로 등장한다. 그러나 너나없이 입시에 생사를 걸고 있는 오늘날의 교육풍토에서 대부분의 건학이념들은 누구라도 존중할 수 있는 막연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즉 기존 사학재단 관계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해도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데에는 별 타격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합리적 논거가 빈곤할수록 방어의 방식은 극단화된다.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평범한 발언들조차 흔히 좌경으로 치부된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 아예 학교 문을 닫겠다는 비장한 결의도 쏟아져 나왔다. 그 비장함에서 진태의 광기를 엿보는 것은 나만의 착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교육과 상식의 영역을 떠나 막무가내로 표출될 때, 저 뿌리 깊은 민족사적 갈등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법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그에 못지않게 절박하다. 그러나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높여 비리를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사학재단 쪽의 단순한 기업 논리보다 훨씬 더 탄탄한 현실적 근거를 지닌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비리사건들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사학재단들이 아무리 자정 노력을 다짐해도, 다짐만으로 ‘절대권력 절대부패’의 법칙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개정을 공공연히 방해해왔다. 두 차례 대선에서 패하고도 여전히 서민대중보다는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임을 자인해온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비합리적 기득권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안 하고 있는 것인지는 조금만 더 기다렸다 판단하고 싶다. 온건한 개정안마저 다시 한나라당과 합작하여 누더기로 만들지, 아니면 다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할지는 머지않아 확인될 것이다. 그래도 당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문제인 만큼 제발 제대로 싸워주길 기대해본다.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도 사양하지 않았으면 한다.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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