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평화뉴스
  • 입력 2005.07.0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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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시사칼럼 59]
...“사립학교법 개정, 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사립학교법 개정이 또 무산됐다.
대신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 시한을 9월 28일까지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 때까지도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직권 상정하겠다고 했단다. 석 달 더 기다리란 얘기다. 기다리다 지친 것도 억울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9월 처리 약속도 믿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금년 2월, 다시 4월, 또다시 6월, 이제는 9월이다. 그 때도 안 되면 또다시 12월을 이야기하겠지.

대체 17대 국회는 뭐하는 국회인지 모르겠다. 특히 여당 하는 일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정권도 잡았고 여대 국회도 만들었으니 반드시 처리해 내겠다고 큰 소리 치더니, 이제는 야당과 합의해야 한다며 어렵다고 한다.


그간 한나라당의 막무가내식 반대를 숱하게 봐 온 터여서 쉽지 않다는 것쯤이야 모르지 않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도대체 뭐 하자는 여당인지, 17대 국회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난 6월에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촉구하는 교수 국토순례단이 전국을 누볐다. 호남과 영남, 강원에서 각각 출발한 교수 순례팀은 모두 1천km의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달 17일, 서울 여의도에 입성했다. 6월 임시국회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처리될 수 있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무위로 끝난 교수들의 국토순례대행진...언제까지 연구실을 뛰쳐나와 외쳐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일에 교수들이 연구실을 뛰쳐나와 플래카드 들고 빗길을 헤치며 거리 시위를 해야 하는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국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좋다. 그렇게 고생해서라도 성과가 있다면 그것으로 위안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물겹도록 처절한 국토행진도 결국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하기야 돌아보면 이런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립학교법 개정 운동은 오래 전부터 처절하게 계속되어 왔다. 교수, 교사, 대학 총학생회장단, 학부모,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은 별 뉴스거리가 안될 정도로 일상사가 되었다. 정세가 급박할 때는 걷기대회, 범국민대회, 규탄 집회, 서명운동, 철야농성이 터져 나왔다. 삭발 단식농성, 국회 앞 노숙투쟁, 정당 사무실 점거농성도 있었다. 거의 모든 운동 방식이 총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처리를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 국회요 한국 정치다.
소수 야당의 상임위원회 개최 거부, 법안 심사 회피, 시간 끌기에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 정치인 것이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의 탁월한 원내 전략에 감탄이라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여당의 절절한 여야 합의 정신에 감탄해야 하는 것인가?
“사립학교법 개정, 2004년 11월 여론조사 72.2% 찬성...힘있는 대통령, 여당, 여론,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 답답한 현실이 이해될 수 있는 여지는 딱 하나 남아 있다.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다.
교수와 교사, 학부모와 학생, 시민사회단체가 아무리 강력하게 요구한다 해도 국민 다수가 반대한다면 지금의 이 현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국민 여론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절대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2000년 8월의 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서는 88.2%의 국민이 사립학교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작년 10월에 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난 뒤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개정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예컨대 교육혁신위원회 조사에서는 무려 92.5%가 찬성한다고 답했고, 11월의 MBC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여론은 72.2%로 나타났다. KBS가 17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한 의원은 불과 2.3%에 그쳤다.

이쯤 되면 불가사의라고 해야 할 판이다.
70%를 넘는 높은 찬성 여론이 뒤를 받치고 있고, 그 많은 교육주체들이 저토록 절박하게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 뿐이 아니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공약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고, 그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있고 17대 총선에서도 또다시 공약한 여당이 다수당인데도 안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이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회는 정녕 민주주의 사회인가? 정치사회학을 가르치는 나로서도 도저히 설명해 낼 재간이 없다. 정말 답답한 일이다.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학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또, 지역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도 대구KBS <화요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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