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 '지름신'을 아십니까?"

평화뉴스
  • 입력 2005.07.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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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 46> 이명희(대구녹소연)
...“급속히 퍼지고 있는 소비중독 바이러스”

요즘 신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지름신’이라고 한다.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신세대와 기성세대간의 문화적,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며, 신세대가 사용하는 말을 50세 이상된 어른들이 맞히는 코너에서 ‘지름신’이 나온 것을 보게 되었다. 엉뚱한 답변으로 한명도 알아 맞히지 못했다. 필자도 그전에 ‘지름신’에 대해 듣지 못했더라면 절대 맞힐수 없었을 것이다.

‘지름신’은 예쁜 것, 귀여운 것, 신기한 것, 새로운 것 앞에서 너무너무 갖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내리는 신이며, 지름신이 오는 순간 갈등은 사라지고 ‘질러버리게’ 된다는 말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 행위’를 뜻하는 신세대 용어이다.

현대사회가 소비사회라고도 하지만 참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도 과소비, 충동소비는 있어 왔지만 ‘지르다, 지름신’이란 말이 생겨날 만큼 무분별하진 않았던 듯하다. 이 지름신이란 말에서 이미 소비는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인구 5퍼센트이면서 전 세계 자원의 25퍼센트를 소비하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25퍼센트 배출하고 있는 진원지, 미국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있는 한 책에서는 소비중독 바이러스 ‘어플루엔자’가 미국이란 사회 곳곳에 퍼져 소비에 감염되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고는 비단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사이 대구에만도 10여개의 대형마트가 생겨났고, 앞으로도 더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쇼핑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로 일컬어졌다면, 지금은 단연코 아니다. 쇼핑은 새로운 취미, 오락이 된 지 오래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대형마트에 가보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나들이 하는 마음으로 마트에 들러 쇼핑카트 하나를 밀고(아이까지 태워) 층을 옮기며 곳곳을 둘러본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들떠 있다.

이제 주말이 되어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형 쇼핑센터에 가는 것은 새로운 ‘가족나들이’가 되었다. 가까운 공원을 찾고, 산에 가기보다 아이들은 쇼핑센터에 가는 것을 더 즐긴다고 한다. 힘들지 않고 새로운 물건을 맘껏 보고, 원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지름신’이 수시로 내려 자신의 소비충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인이 될 가능성은 당연히 높다.

거기에다 TV를 틀면 수십개의 홈쇼핑 채널에서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지금 사고 돈은 나중에’라는 말로 유혹한다. 또한 수만부의 통신판매용 카탈로그가 각 가정에 배달된다. 하지만 쇼핑센터, 카탈로그, 홈쇼핑을 능가하며,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사이버 쇼핑’이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떤 곳에서도 컴퓨터만 있다면 손가락을 움직여 소비할 수 있다. 이제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시민이 소비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길잡이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너무 많다.

‘경기침체, 소비심리 악화’ TV뉴스, 신문에서 익히 듣고 보던 말이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때 마다 경제에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경기가 침체되면 당연히 소비심리는 악화되는 건데, 왜 저렇게 연일 보도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다가 “백화점, 각종 쇼핑센터 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이 드디어 지갑을 열었다, 소비심리가 회복될 조짐, 경기호전” 등 이런 보도를 접하면 화가 난다. 물론 경제적 흐름으로 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소비가 활발해져야 경제가 돌아간다, 산다는 것은 20세기적 세계관에서나 적용되던 논리가 아닌가.

1970년 미국인들의 쇼핑 시간이 마침내 유럽인들의 4배에 이르렀으며, 2000년 미국인의 34%가 쇼핑을 가장 좋아하는 활동으로 꼽았다고 한다. 한국 사회가 미국을 모델로 하고 따라가고 있는 만큼 이러한 통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형쇼핑센터, 홈쇼핑, 사이버쇼핑, 자동차 증가 등이 이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소비는 또다른 소비를 부르며, 소비에는 엄청난 환경비용이 따라온다.
소비문제는 빈곤, 환경, 인구문제를 모두 포괄한다. 세계인구 중 부유층 20%의 육류 및 목재 소비는 지난 50년대에 비해 2백배, 플라스틱 소비는 5배 늘었으나, 하위 20%의 소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지구의 1억8천만 마리 소 중 1/4은 미국인이 소비한다. 이로 인한 대규모 축산단지는 사막화의 원인이 되고, 소들은 ‘방귀’를 통해 메탄가스를 방출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있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비해 환경오염유발이 많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자원을 생산하고 배출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토지와 물의 양을 계산한 생태파괴지수에 따르면 우리 국토가 생태적으로 공급가능한 일인당 토지 규모는 0.19(헥타르)인 반면 소비로 인한 생태파괴지수는 1.81로서 소비수준이 950%나 초과하고 있다.

소비사회는 사람들에게 생활의 속도를 빨리하라고 강요한다.
경제적으로 풍요해진다는 것은 달리 말해 조급해진다는 것과도 같다.

대구라는 도시를 설명할 때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소비도시’란 말이다.
그리고 대구시가 내건 슬로건도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이다. 이 모두는 기업, 소비, 경제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흔히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을 국가 번영의 지표로 삼는다.
국가뿐 아니라 한 도시를 평가할 때도 그 도시의 경제성장지수를 지표로 한다. 하지만 경제성장척도가 그 도시, 나라가 살기 좋은 곳인지, 시민들이 행복감을 느끼고 생활할 수 있는 곳인지를 나타내주기에는 부족하다. 기존의 국민총생산이나 국내총생산 개념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 소장 경제학자들이 주창한 새로운 경제지표, 시장가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경제활동 외에 가사노동, 육아 등에서 유발되는 긍정적 가치와 범죄, 환경오염, 자원고갈의 부정적 비용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진정 진보 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를 사용하는 추세다.

영국의 한 역사가는 ‘한 문명의 성장의 척도는 에너지와 관심을 물질적 측면에서 정신적, 심미적, 문화적, 예술적 측면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지에 대한 양적 개념이 아니라 무엇을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가가 우리 행복의 척도가 되어야 할 것이며, 대구라는 도시를 설명할 때 단순한 경제, 소비 척도만이 아닌 도시환경, 문화, 녹색생산과 녹색소비를 모두 포괄하는 살기 좋은 도시, 녹색도시대구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명희(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명희 사무국장은, 지난 ’99년부터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활동하며 지역의 환경운동과 녹색살림을 실천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 작은 실천들을 모아 네이버 블로그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아가기]를 남편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7월 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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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제 4기 필진이 우리 지역 각계의 이야기를 담아 새롭게 글을 씁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7.4(월) 이명희(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7.11(월) 조광현(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7.18(월) 권만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칠곡지회 회장)
7.25(월) 안미향(청소년 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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