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7.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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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9] 울진 Y교사
...“시골 작은 학교, 교사들의 자녀도 없다”
"작은 학교의 문제...모두 사회의 탓, 구조적인 탓으로만 돌리고 있지는


먼저 교사들의 고백이라는 지면에 내 글이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함께 고민해볼 내용도 좋다는 말에 용기 내 써본다.
정말 나혼자 반성하고 나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에 근무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골에서 아주 큰 학교에 근무한다.
공교롭게도(공교롭다는 표현이 맞겠다) 발령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겨우 두 학교에서 근무해봤다. 또 그 두학교 다 이곳에서는 규모가 큰 학교였다. 요즘 시골학교가 다 그렇듯 이곳도 많은 학교들이 비워지고 있고 한창때는 군내의 반 정도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 이젠 면지역에 한 개 정도의 학교만 남아 있을 뿐인데 그것도 겨우 버티고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와 3,4개의 상대적으로 큰 면의 학교를 빼고는 모두 전교생 4,50명이 대부분이다.
뭐, 시골에 사람이 줄고 초등학교를 다닐만한 아이가 있는 젊은 식구들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 시골 일자리를 창출해야 된다는 것,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을거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 알 이야기일뿐 아니라 여기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에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곳도 군민 수가 아주 빠르게 줄고 있다. 그래서 학생수도 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도 학생이 줄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작년에도 학급을 늘렸고 올해도 늘렸다. 또 학급당 학생수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학교는 지금 학년당 5,6개 학급이 있고 학생수는 1100여명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요즘 같은 불황에 전학을 오는 경우는 시골에서는 두가지다.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다른 어려운 사정으로 자녀를 돌보지 못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맡기려고 왔거나 직장이동의 경우다. 하지만 전학 오는 아이들 중에서 얼마는 그런 경우인 것 같은데 나머지는 대부분 가까운 이웃면에서 온다. 즉 군 전체의 숫자에 영향을 전혀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한쪽에서는 급속도로 학생수가 줄고 있고 한쪽에서는 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거주지로 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우리학교 가까이에 사는 아이들이거나 학교 통학버스가 다니는 곳이 우리학교대상자가 된다. 그래서 굳이 따지면 학교버스외의 차량을 이용할 아이들은 아주 드물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학급마다 서너명은 꼭 우리학교 대상 거주지가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직접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부모들이 태워주면서 다니고 있다. 물론 등록되어 있는 거주지는 우리학교 주변이지만 실제 살고 있는 곳은 다른 학교를 다녀야 되는 옆동네 아이들인 거다.

"선생님들 애들도 다 큰 학교 다닌다던데요?“

그럼 어떻게 된 건가?
전학을 올때 담임들은 대부분 어떻게 이사를 오게 됐냐를 물어보게 된다. 멀리서 온 경우는 보호자가 먼저 직업이나 형편을 아이의 이해 차원정도에서 이야기를 해주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관내의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오는 경우는 열중에 아홉은 가족이 이사를 해서요라고 얼버무려버린다. 그런 경우는 반드시 실제 이사가 아니고 주민등록상의 이사이다. 여긴 정말 작은 시골이고 우리학교가 있는 곳은 그냥 읍소재지일뿐이다. 이런 일이 무슨 서울의 강남, 강북에서 일어나는것도 아니고 일명 유명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발빠른 부모들의 방편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오는가?
왜 굳이 바로 옆에 있는 학교를 두고 그 어린아이들을 차에 태워 먼 학교로 보내려고 하는가?
아주 평범한 우리학교에 교사가 특별히 뛰어난것도(오히려 읍소재지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젊은 교사보다는 나이 지긋하신 분이 더 많고 3,4년마다 이동을 하기 때문에 다를건 더욱 없다) 아니고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다. 시설은 오히려 작은학교가 더 좋다.

생각을 해보라. 우리 학교는 학급수가 많고 학생수도 많아 과학실 한번 쓰기 어렵고 전산실 한 번 쓰기 어렵다. 게다가 무슨 행사를 해도 다른 시설에 비해 학생수가 워낙 많아 아이들 한명, 한명을 배려하는 행사를 할 수가 없다. 시도하다가도 한계가 워낙 많아 학교행사가 구태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서 다른 학교에서는 수십명의 아이들과 함께 교직원,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육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우리 학교로 오는가?
나는 엄마들 몇 분과 작은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로 여러차례 이야기를 해보았다.
처음엔 엄마들이 하는 말씀이 참 어이가 없었다. “옆집에 애도 그 학교로 가니까요” “똑똑한 애들은 다 이사가고 형편 안되어서 못가는 애들만 남아있으니까 우리 애들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요.” 여기서 형편은 차로 부모가 태워줄 수 있는 형편이다. “ 큰 학교는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요?” 답답해졌다.

그런데 내가 더 이상 할 말 없게 만든건 바로 다음 말이다. “선생님들 애들도 다 큰 학교 다닌다던데요”...
“학교는 어디든지 다 똑같겠지만 마치고 학원을 가야되는데 학원이 큰 학교 근처에 다 있잖아요.” “학교는 수업 끝나고 애들 다 보내고 나 몰라라 하는데 애들이 어디 갈 데도 없고 부모들도 집에 없으니까 학원으로 시간을 딱 맞춰서 어른들이 집에 올때까지 안전하게 돌릴려니까 그 방법밖에 없어요.” “중학교 가서 애들한테 따돌림 안 받으려면 큰 학교에 있다가 졸업해야죠.”였다. 앞서 말한 까닭들은 이미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작은 학교에 내가 알고 있는 교사들 자녀는 한명도 없는 것 같다. 교사들 역시 주소를 옮기고 아이를 속이고...”

문득 선배교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 선배교사는 참 열심히 산다. 얼마전에 작은 학교로 가서 아이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정성, 그리고 그 곳에서 하는 실천들은 그저 날 부끄럽게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하는 말이 처음엔 자기 애도 작은 학교로 보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골학교에 와보니까 정말 고민된다는 거였다.
뭐가 고민되는가 하니, 학교에 오는 애들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 곳에 있어야 되는 애들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애가 여덟인데 소위 평범한 아이조차도 없다는 거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내용을 익히게 하는 것도 너무 힘들 정도인 아이들이 더 많으니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해나가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데 내가 우리애를 어떻게 보내겠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는 2중, 3중 복식수업을 하게 되고 그건 너무 힘드니까 교사들이 손을 놔버릴 수 밖에 없는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잠깐 따져보니까 관내 초등학교 중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큰 학교 서너개를 제외한 정말 작은 학교에 내가 알고 있는 교사들 자녀는 한명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부모는 그곳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또 학교가 너무 작아서 그런가 하여튼 아이를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데려오지 않고 멀리 도시에 떨어져 살고 있는 경우는 더 많다. 이게 현실이다. 자꾸만 빽빽해지는 큰 학교는 그것대로 소외되는 애들이 너무 많아진다. 안그럴려고 해도 큰학교에서는 소위 잘나가는 학생들 중심으로 나가게 되어 버린다. 튀지 않고 공부 그럭저럭 하거나 조용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보기 어렵다. 워낙 아이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작은학교에서 교사들이 한사람, 한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관심을 큰 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 거의 몸바쳐 헌신을 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불과 차로 몇 분 거리 안되는 또 다른 학교에서는 이대로 가면 분교, 폐교는 시간문제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모두 다 죽이는 학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충청도에서, 또 상주에서 작은 학교 살리기, 학교바꾸기 목적으로 열심히 학급운영, 학교운영에 대해 공부를 한 교사들이 한 학교에 들어가서 학교가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모여든다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 교사들은 부러움 반 무관심 반이다.
작은학교의 문제, 큰 학교의 문제를 모두 사회의 탓, 구조적인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
또 내가 처음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숨 내쉬었듯이 학부모들의 어리석음만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사들 역시 빽빽해도 사람 많은 데서 살아야된다는 신조로,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을 실천하듯이 주소를 허위로 이관하여 큰 학교로 보내고 있다.

“어렵다고 위층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돼...교사가 학교를 살리고 학교가 마을을 살려야”

좀 더 단순하게 짚어보자.
그렇게 거짓으로 주소를 이관시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이미 거짓된 방법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학교를 다니게 된 과정이 거짓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교사 역시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 그냥 어쩔 수 없다고 모르는척 넘어간다. 거짓에 동조한 거다. 순식간에 아이를 친한 동네 동무들과 떼어놓고 속여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부모와 교사는 아이에게 정직을 비롯한 온갖 중요한 가치를 가르치고 강요하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싶다.
학부모를 비난하거나 그렇게 하고 있는 교사를 마냥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편견 가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교사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는 똑같은 내용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나라전체가 싹 바뀌지 않고는 해결될 수 있을까 싶다.

단지 그런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이라도 하고 싶다.
다만 학생 몇 명 안되는데 괜히 돈만 나가니까 학교없애라는 말이나마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정말 다 죽어간다. 시골 자체가 농사꾼이 죽어가고 상거래도 다 죽어가고 있다. 그 곳에 학교마저 없으면 정말 황폐한 곳이 되어간다. 시골이 죽으면 도시가 죽는건 시간 문제일것이다. 도시엔 사람이 많아서 학교가 새로 생긴다고 한다.

이젠 학교가 다시 살아나서 시골을 살리자.
이 외침이 꿈같은 소릴지 모르겠지만 어렵다고 위층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될것이다. 위층이 변하기만을 바래서는 내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교사가 학교를 살리고 학교가 마을을 살리고 그 마을이 모여서 더 큰 마을을 살릴 수 있길 바래본다.
<경상북도 울진군 초등학교 Y교사>

Y선생님은 10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30대 초반의 초등학교 여교사로,
농어촌 작은 학교의 현실과 고민을 담아 주셨습니다. 글을 써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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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들의 고백 7> - 진주 중등 K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고백 8> - 안동 중등 J교사 ... "교사는 반성하는가?“
<교사들의 고백 9> - 울진 초등 Y교사 ... "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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