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가득 핀 아버지 고향 원산...”

평화뉴스
  • 입력 2005.08.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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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23]...
“광복 60년, 통일의 디딤돌 하나 쌓으면 좋겠다"

필자의 아버지는 원산에서 1930년에 태어나신 분이다.
단지 6.25전쟁때 원산에 폭격이 있을 거라는 소문으로, 배에 혼자 타고 남하하셔서 거지노릇, 남의집살이 하다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고 고생고생해 살만할 때 돌아가셨다. 필자가 워낙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아버지의 생애사도 전혀 모른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원산해수욕장에 ‘해당화’가 모래사장 가득히 핀다는 얘기정도 해준 것만 어렴풋이 안다. 아버지의 부모형제가 모두 북에 있어 아버지가 명절때만 되면 병앓이하듯이 몹시 가족을 그리워했다는 정도만 어머니에게 들어 기억한다.

그래서 필자는 통일이 남의 일같지 않다. 젊었을 때는 우리 사회의 주요모순의 원인이 통일로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인간 및 사회 ‘해방’의 논리적 귀결로 통일을 “외쳤다면”, 이젠 아버지의 고향이 그 곳이고 아버지의 친인척이 보고 싶어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이럴진대,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었을 때 이산가족으로 반세기이상 살아오신 많은 어르신들은 얼마나 통일이 간절할까 싶다.

6.15선언이 5년이 지난 현재, 남북간에는 큰 틀에서 경제외 각분야에서 많은 접촉과 교류가 있지만,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국제정세속에서 여전히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6.15 선언에서 어렵사리 합의된 내용도 실천되지 못한 것도 적지 않다.

물론 50여년간의 누적된 갈등이 근 5년만에 계획대로 착착 해빙될거라고 믿는 것은 너무 복잡다단한 정치현실을 단순화시켜 보는 소아병적 조급증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진전을 보이는 남북민간교류에 비해 쌍방간의 신뢰회복 정도는 무척 더딘 듯 보인다. 근간에 통일부장관이 북한을 다녀온 이후 민족의 동질성과 일체감을 확인하고 한반도 남북문제의 주체로서의 역량을 확인해 보여준 듯 해서, 한편으로는 다시 기대감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진행된 6자회담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의 문제는, 때때로 우리의 능력밖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둘러싼 치열한 줄다리기 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과 기아문제를 둘러싼 남한, 일본, 미국의 공조체제에서 보여주는 한미일공조체제에서의 불협화음은, 주변이해당사국들이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돌적으로 밀려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지역블록화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민족통일의 기초를 닦고 민족경제의 물적기초를 닦아보겠다는 경제협력의 야무진 희망도 우리의 의지대로만 되지 않는 듯 하다.

이것은 어쩌면 100년전의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 갑신정변과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으로 서구의 밀려오는 세력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외세에 밀려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 모습말이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경제력도 커지고, 함께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으며 과거처럼 국론의 분열로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국제적 환경의 유사성은 아직도 지적되고 있다. 분명, 남북이 자신들의 의지로 통일의 결합의지를 밀고 나갈 수는 없다.

속상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남북한이 세계질서속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문제는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해 해결해 줄 수 없다. 설사 우리국민들 가운데 대다수가 분단체제이후에 태어나 분단체제의 부조리와 폭력, 반민주적 긴장이 우리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일거라고 생각해도, 젊은 세대들이 통일을 실용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통일의 당위성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통일을 우리가 풀지 않으면 우리입장에서 통일은 일궈낼 수 없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의 답이다.
“사상의 무게가 너무 이질적인 남북사회"..."어느 한쪽의 무게로 다른 곳을 덮기 보다 서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6.15선언이후 지난한 통일의 과정은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관 주도의 남북대화와는 별개로 민간인이 상호간에 방문하고 만나고, 그 만남을 기억하고 신뢰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구조를 상호보완적으로 보면서 -남쪽의 기술력과 북쪽의 노동력- 하나의 민족경제권을 건설한다는 시각이 이미 개성공단사업을 필두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만일, 통일을 지향하면서, 북한의 “싼” 노동력때문에 중국으로 갈 중소기업이 개성으로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면, 그저 이윤의 극대화를 좆아서 입지조건이 좋은 곳으로 재빨리 이동하고자 하는 생각으로만 움직인다면 이는 시장의 확대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는 남북이 함께 동등하게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나오기 어렵다. 자칫하면 최고의 장시간 노동시간과 최고의 산업재해율을 보여준 60-70년대 우리나라의 저임금노동자들이 치러야했던 사회적 개인적 희생을 우린 성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면서 강요할 것이다.

조금 더 우리 사회의 시장을 생각을 확대해보자.
X파일사건에서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정경언검의 협착관계속에 가능했던 고도의 자본축적과 족벌경영체계, 부동산 투기로 얻는 불로소득이 성실하게 노동해서 얻는 소득보다 월등히 높은 사회, 아파트 가격상승만을 기다리면서 치고 빠지는 투기세력이 전국토를 돌아다니면서 투기화하는 사회, 부도덕한 투기심리에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동조하는 사회, 이를 지켜보는 “돈없고 땅없고 집없는” 소시민들의 사회정의에 대한 회의와 가진자들에 대한 이질감이 지배적인 사회.

이러한 국민소득 20000불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남한의 성장모델이, 어쩌면 선진경제모델로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확장시켜서는 안되는 경제모델이다.

또 다른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자.
경제적 변수에 의해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되고 물량적 사고가 지배적이며 가시적 성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사회이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 공동체적 성찰에 대한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있다. 광고소비자자본주의의 거대한 상품시장에서 모든 삶의 형태가 규정되어 있으며, 무한한 문화상품이 제공되지만 우리의 자율적인 선택능력은 그리 높지 않다.

자유와 개성의 이름아래 사람들을 뿔뿔히 흩어놓고 다시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사회, 지구의 모든 사람과 얘기할 수 있지만 이웃과의 대화가 단절된 사회가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가난한 사람들간의 단절이 더 무서운 것이 우리사회 아닌가..

통일은 우리시대의 과제이자 화두이다.
통일과정은 남북한은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남북이 특수한 공동체의 한부분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모색되면 좋겠다.. 따라서 통일과정은 새로운 사회로의 도약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길지만 힘겹지만 한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으로 말이다. 또한 한민족끼리의 소통과 왕래이상으로 서로 만나면서 희망을 일궈내고 작은 신뢰라도 꾸준히 쌓아가면서 통일의 디딤돌을 하나하나 쌓으면 좋겠다..

쌀을 나눠주든, 기저귀를, 내복을, 비료를 나눠주든, 동족의 고통을 더는 가진자로서의 ‘자기 위안’이 아니라, 통일된 “아직 어디서도 완성되지 못한”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반세기동안 구축한 세계관과 경험세계가 너무 달라 소통이 힘겹겠지만, 서로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노력도 꾸준히 해야 할 듯싶다. “신자본주의적” 흐름의 파도속에서 “적극 뛰어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소득수준 20000불을 앞둔 나라의 시민의 눈으로 일방적으로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다.

사상의 무게가 너무 이질적인 남북사회는, 어느 한쪽의 무게로 다른 곳을 덮기보다는 서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한민족의 지혜가 집약된 새세계으로의 도약이 필요할 것이다.

8.15광복절을 앞두고 다시한번 우리의 철저한 자기확인속에서의 반성과, 책임있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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