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 60년만에 이제 시작이다”

평화뉴스
  • 입력 2005.09.1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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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1>...
"친일인사 명단 발표, 그리고 임종국과 김영식 선생"
“선조의 잘못이 있다면 후손은 그것을 인정하고 대속할 미덕을 지녀야 한다


내가 역사 교사라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같은 숙제를 한번 내고 싶다.

여러분의 할아버지는 일제 때 어떻게 사셨는지, 일제강점 36년 동안 사셨던 조부 증조부께서 하신 일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낌을 적어 볼 것. 그리고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해서도 숙고해 볼 것.

나라를 빼앗긴 일제 때 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운데, 일제의 수탈은 계속되고, 징용으로 끌려가고, 순사에 잡혀가고, 공출에 시달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뜻있는 분들은 식솔도 돌보지 않고 가산도 팔아가며 오직 조국독립을 위해 몸 바치면서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 다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일본인들 그리고 일제에 붙어 살은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이른바 부일배 친일배 친일파들의 삶은 그게 아니었다. 글로써 말로써 붓으로써 일제를 옹호하고 학병 출전을 권장하고 일본 천황을 미화하는가하면, 일제보다 더 앞서서 수탈의 첨병노릇을 하고 일제체제 유지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는 ‘불령선인’이 없나 혈안이 되고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고 없는 죄 조차 덮어씌우는 악질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좋게 말해 친일파들은 일제시대가 참 살기 좋은 시대였다.
일반 서민에게는 경찰의 말단인 순사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으나 그들에게는 순사 따위는 호통도 칠 수 있는 가벼운 존재였다. 그들은 친일의 댓가로 부를 누리며 떵떵거리고 살고 자녀들은 대학도 보내고 유학도 보내면서 ‘차세대 동량’으로 키워나갔다. 그들은 교양있는 좋은 집안이 됐다.

미당은 그래도 솔직한 시인이다. 친일을 한데 대해 “해방이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말했으니. 적어도 백년 이백년은 갈 줄 알았는데 일제가 겨우 한 40년 만에 끝날 줄은 미처 몰랐다고.

친일파들에게는 조국해방이 너무 끔찍한 사건이었다.
죄값을 어떻게 받나. 불안 초조 긴장 불면의 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언제나 대세순응형인 이들은 대세를 꿰차고 역전의 호기를 잡게 됐다. 민족정기 확립에는 관심조차 없는 점령군 미국이 있고, 반공을 기치로 내걸면서 정권야욕에 불타는 이승만이 있으니. 아, 이 얼마나 행운인가. 생각 할수록 신기한 일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친일파가 아니고서는 또 절대로 잡을 수 없는 호기. 미치도록 꼬집어 보고 싶은 형국이 죄많은 이에게 도래하다니. 승승장구. 어제까지 일제 때는 일본 형사로서 독립운동가를 때려잡고 해방된 오늘부터는 해방조국의 경험많은 경찰로서 같은 독립운동가를 좌익분자로 몰아 때려잡고.

든든한 줄을 잡은 그들은 반민특위도 걷워 치우며 더욱 더 뻗어나갔다.
그들은 교양을 갖춘 훌륭한 집안이 돼버렸다. 뒤틀린 해방정국이 이성을 잃고 토해내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질은 그후에도 계속돼 ‘친일을 한 집안은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망한다’ 는 참언을 낳게 된다. 뼛속 깊이 사무친 이 조소에 찬 절규는 그대로 운명처럼 적중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월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사’ 309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해방 60년 만에, 국치를 당한지 95년 만에, 이제야 겨우 1단계 친일명단을 밝힌 것이다. 누가 올려놓았는지 떠밀려 올라온건지 을사오적 그중에서도 선두에 선 이완용은 1926년 2월11일 69세의 일기로 저택에서 제 명을 다 살고 편안히 숨을 거두고 장례도 국장처럼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졌다. 이완용 뿐 아니라 1차 명단에 오른 ‘친일인사’들은 (일부는)추앙까지 받으면서 잘 살다가 목숨을 다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 없다.

친일한 당사자도 없는데도 그 명단을 발표하는데에 광복하고도 60년이 걸린거다. 국치로 보면 95년이 걸린거다. 그것도 ‘누구를 단죄하려고 만든게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정리와 역사적 평가를 통해 사회의 가치기준을 세우고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려는 것’이라는 길다란 토를 달면서 조심스럽게 내놓은 것이다.
“아버지의 친일을 대신 사죄한 파인 김동환의 아들...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의 부친도 친일 명단에 들어있다”

친일 명단을 보면, 친숙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물론 동명이인이지만. "ooo, 너도 친일했구나“ 하는 농담이 오갈지도 모를 만큼 우리들은 친일파의 이름을 아는 둥 모르는 둥 아이들 이름 지으면서 많이도 써온 것이다. 한 편으로는 우리들 속에 그만큼 많이 친일이 녹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친일 1세대는 죽고 없다. 친일 2세대 3세대 4세대가 있을 뿐이다. 선조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후손은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선조의 잘못을 대속할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살펴보는 미덕을 지녀야 한다.

얼마 전 8.15광복 특집에서 일본의 전범1호 동조영기(東條英機)의 손녀가 의기당당하게 조부의 천황옹호 조국애를 역설하며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 자세를 취할 때 일본은 나라와 개인 할 것 없이 왜곡의 바다에서 도취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가련한 감마저 들었다. 그들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남경에서 30여만명의 양민을 학살하고도 그것을 언급하면 조작이고 왜곡이라고 하면서 절대로 학살한 적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은 한류열풍에 반하여 나온 ‘혐한론(嫌韓論)’이라는 우리 역사를 왜곡 날조 조작한 만화책이 날개돋친 듯 팔린다니 가소롭기까지 하다.

나는 친일파 명단에 들어있는 파인 김동환의 아들인 김영식씨를 존경한다. 그는 아버지의 친일을 그대로 인정할 뿐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을 찾아 모으고 정리해서 대신 사죄하는 보기드문 아름다운 양심을 지녔다.

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분이 1989년에 작고한 임종국 선생이다. 그 분의 ‘친일문학론’이 없었다면, 그분의 친일파 연구 노력이 없었다면 사실 이번의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은 물론 인명 발표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도 부친의 친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 친일문학론을 저술했다. 이번 발표명단에도 일제때 천도교 임원으로 친일한 그분의 부친도 들어있다.

이제 흥했던 친일 3대도 그 기한이 다됐고, 망했던 독립운동 3대도 그 기한이 다됐다. 앞으로 흥하든 망하든 조상 탓 할 세월은 지나고 있다. 그러나 친일은 남아 있다. 또한 이번이 시작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는 내년에 지방토착 및 해외친일 혐의자, 항일운동가에서 친일로 변절한 자, 1차 명단에서 재검토된 자 등을 담은 2차 친일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친일문제는 짚고 넘어가야한다. 이와 함께 곳곳에 스며있는 일제잔재도 정리돼야한다. 우리 모두가 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일제잔재가 없는지 역사인식을 갖고 찾아볼 일이다. 최근 종영된 ‘불멸의 이순신’을 감명깊게 시청했을 것이다. ‘과거가 뭐그리 중요하냐’ 같은 말은 편한 대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간주해 주길 바라는 쪽에 표를 던지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된다.

한류 열풍이 중국 일본 동남아는 물론 유럽 미국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파를 타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가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깨끗한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유영철(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유영철 전 편집국장은, 1978년 영남일보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8년동안 매일신문에서 근무했으며, 1989년 복간된 영남일보로 돌아와 사회부장과 편집부국장 등을 거쳐 2005년 5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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