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로 싼 가을 들꽃다발”

평화뉴스
  • 입력 2005.10.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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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에세이] 이은정...
“과포장 선물, 사람의 진심도 덧칠되지 않을까”

나는 꽃이나 인형 선물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처녀 적에도 그랬다. 차라리 밥 사먹는 게 더 낫지, 꽃이나 인형은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후배들은 생일상을 선물한 적도 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으로 상을 예쁘게 차려서 짠! 하고 펼쳐놓았다. 상 밑에서 애인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이벤트까지 곁들여서.

그런데 나를 감동시킨 꽃 선물이 딱 두 번 있었다.
내가 오래도록 작업(?)한 선배가 있었는데, 나의 다양한 연애전술에 견디다 못해 그이가 사랑고백을 할 때였다.

워낙 숫기 없는 사람이었던 선배는 술이 잔뜩 취해가지고선 “어디서 주웠다”면서 다 시들어빠진 카네이션 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실제로 그 선배는 물건을 잘 주웠다. 교문 앞에서 주웠다는 시계를 나에게 주기도 했고, 심지어 내가 잃어버린 벙어리장갑 한 짝까지 찾아서 주워온 적도 있었다. 주웠건 말았건 어쨌든 그 꽃다발은 나를 감동시킨 첫 번째 꽃다발이었고 그 선배는 지금 나의 남편이 되었다.

두 번째는 역시나 어떤 선배가 나에게 준 꽃다발이다.
문화답사전문가인 선배가 가을 산에서 꺾어온 들꽃다발. 한 아름이나 되는 들꽃을 신문지로 둘둘 싸서 등 뒤에서 꺼내 줄 때! 갈대, 개망초, 구절초, 들국화... ‘가을 들꽃 잔치’같은 꽃다발도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 어떠한 꾸밈도 없는 신문지 포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방에 놓인 들꽃다발을 보면서 그것을 만들기 위해 가을 산을 이리저리 헤매었을 선배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문제는 들꽃다발에서 벌레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루는 무심코 방문을 열었다가 소스라쳤다. 노란 꽃 수술을 달거나 흰색, 초록색의 작고 작은 벌레 무리들이 온 방을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 뒤에도 여러 번 꽃선물을 받았지만 더 이상 나를 감동시킨 꽃다발은 없었다.
내가 꽃다발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꽃다발의 과포장 때문이다.

비닐포장이나 형형색색의 부직포,알록달록한 커다란 리본 같은 것들이 꽃보다 더 많이 싸여져 있는 꽃다발을 보노라면, 사람의 진심도 그렇게 과포장되거나 덧칠되어 지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이 잘 포장된 선물세트로 바뀌는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싫었다.

요즘은 꽃에다 염색을 해서 형광색으로 바꾸거나 꽃잎에 은색가루를 뿌리기도 해서, 꽃냄새를 맡으려다가 온 얼굴에 반짝이 가루를 붙이기도 한다.

요즘처럼 무슨 ‘데이’가 많은 시절에는 과포장된 선물꾸러미가 더욱 많이 쏟아진다.
공장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선물은 상품성 때문에 갈수록 더 과포장되어 나온다. 환경단체에서 ‘과포장 실태조사’를 해서 자원낭비, 쓰레기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때는 꽃다발 포장지가 아까워서 모아두었다가 다른 선물포장으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어떤 선물이든 선물은 정성이고 마음이다.

때문에 비싼 물건보다 때로 육필로 쓴 엽서 한 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나도 가끔 꽃선물을 하고 싶을 때는 그냥 투명비닐 한 장으로만 싸서 주기도 한다.
축제니 발표회니 행사가 많은 계절에 한 번쯤 신문지로 둘둘 싼 꽃다발을 전해주면 어떨까.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이은정(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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