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에 얽매인 우리 청소년...”

평화뉴스
  • 입력 2005.10.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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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 59> 안미향
...“아이들에게 입시교육 말고 뭘 물려줄 수 있을까?”


나에게 가끔씩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세상’이란 단체가 나와 후배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단체인 만큼 당연히 가장 어려운 점은 경제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이렇게 경제적 측면을 제외하고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거나 속을 썩이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건 다름 아닌 입시교육의 문제라고 얘기할 것이다.

요즘 입시 교육의 양상은 과거 10여년 이전보다 훨씬 과열된 양상을 띠고 있다. 80년대 이후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우세했고 실제로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졌었다. 전교조를 중심으로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위한 교육제도, 환경의 개선문제가 사회의 중요한 관심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은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고, 평일 12시까지 야간 자습을 하고, 방학 때도 오후 5시까지 수업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강화되었다. 심지어 주말이나 방학에 학교에 등교시키지 않는 곳의 일부 학부모들은 왜 학교가 학생들을 데려다가 더 많이 공부시키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왜, 언제부터 이런 흐름이 생겼을까?

신자유주의 흐름이 우리 교육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던 90년대 중반, 기존의 억압적이고 통제적이던 교육체제가 자본의 필요성과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교육질서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런 교육질서 재편은 1995년 교육개혁안으로 대표되는데, 이 교육개혁의 기본방향은 열린 교육, 평생학습사회의 건설과 도덕적, 창의적, 자율적 인간 형성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교육체제의 기본특징은 학습자 중심 교육, 다양화, 자율화, 수월성 추구, 정보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교육개혁의 목적과 방향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자율성, 창의성을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은 이전보다는 훨씬 발전된 것이었지만 수월성을 중심에 내세운 이런 교육제도의 변화는 그 당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여러 번 개정을 거쳐 발표된 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의 자율성,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방향의 교육내용들이 훨씬 강화되었다.
이렇게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내용 속에서도 입시교육 자체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1995년 교육 개혁으로부터 시작된 교육의 시장 논리화는 창의성과 자율성, 다양성에 대한 강조와는 달리 입시교육의 심화와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시장적 관점에 의해 형성되는 학교 간 경쟁체제는 필연적으로 입시교육의 강화로 연결되고 명문상급학교로의 진학률, 유망직종으로의 진출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쟁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더구나 교육을 통한 계급.계층 상승욕구가 큰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점점 더 많은 학력을 요구하는 정보화 추세로 인해 입시교육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학교 서열화는 필연적으로 소수의 우수학교와 다수의 비우수학교로 구분되는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입시위주의 교육은 과거보다 훨씬 강화되고 있고 아이들에게 학교는 기본, 학원은 필수(?)인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외 없이 입시교육과 관련된 것이었다.
입시제도 자체가 느슨해지면 아이들의 외부 활동 및 동아리 활동들이 활발해지고 입시제도가 강화되면 아이들의 활동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는 조직적인 사고와 자기 정체성, 건전한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사물에 대해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일생을 결정지을 기초가 형성되는 것이다. 청소년기가 이렇게 중요한 시기인 만큼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을 올바로 형성해 갈 수 있는 많은 경험과 체험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입시제도가 그 기회를 박탈하고 있고 그 흐름에 학부모들도 편승하고 있다.
기러기 엄마, 아빠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아이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하러 다니면서 아이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모습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기성세대는 올바른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잘 하고 똑똑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건강한 인성을 형성하고 사람에 대한 애정,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노력을 해서라도 나의 아이만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로 키우면 된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겠다.’라는 생각으로 교육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이다. 만약,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입시교육 말고 무엇을 물려주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전교조 선생님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교육환경이 변화했듯이 지금의 우리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치고 헌신할 때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안미향(청소년 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대표)
* 1970년 대구에서 태어난 안미향 대표는, 지난 ’90년부터 청소년 도서원.문화공간 ‘새벗’ 일꾼으로 활동했으며 '98년부터 ‘우리세상’ 대표와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안 대표는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즐겁게 자기 미래를 개척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꾼이 되도록 돕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10월 1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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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월) 이명희(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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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월) 안미향(청소년 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대표)
10.23(월) 권만구(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칠곡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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