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욕하는 사회”

평화뉴스
  • 입력 2005.11.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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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3>...
“대통령을 신주 모시듯 한 그 시절 신문들...”

어느 모임에서나 여러 사람들이 만나면 어느 순간에 한번은 꼭 대통령을 욕하고 만다. 참 이상한 사회현상이다. 그렇게 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시작하고, 어디서 보고 들어 알고 있다는 표시로 맞장구를 쳐야 흥이 난다는 듯 거든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니 'NATO(No Action Talk Only)‘니 하는 풍월도 읊어가며 재미있어한다. ’대통령을 욕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오랜만에 만나 놀이(스포츠)하듯 욕하는 판이다.

박정희 정권때 어느 신문에 ‘공화당’이 ‘공산당’으로, ‘박정희대통령’이 ‘박정희대령’으로 잘못 나간 적이 있다. 교열을 아무리 잘 보더라도 오자 탈자는 귀신에 흘린 듯 생긴다. 그래서 살아서 움직인다고 ‘살 활(活)’자를 써 활자라고 하기도 하는데, 당시 교열책임 차장은 옷을 벗어야했다.


그후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공화당’이라든지 ‘박정희대통령’같은 존귀한 명사는 납활자를 미리 묶어놓고 문선할 때 조심히 다루었다. 겁이 나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때도 그랬다.
납활자 ‘전두환대통령’을 신주 모시듯(?) 다루었고, 교열부 기자들은 교열볼 때 혹시라도 ‘용상’이 흐트러졌을까봐 볼펜으로 점을 찍어가며 보고, 재교를 보는 차장도 신중을 거듭했다. 높은 경륜의 교열부장은 다른 교정쇄는 그냥 던져도 그것만은 눈을 맞추고 넘겼다. 참으로 겁나는 대통령이었다.

신문에 나오는 납덩어리에 불과한 활자인데도 이렇게 조신했는데, 하물며 진짜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 있으랴. 아무 죄없는 사람에게 인혁당이라는 올가미를 덮어씌워 조작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게한 뒤 하룻만에 7명 전원을 사형시키는 판에 감히 대통령 욕을 거침없이 하고도 살아남기를 바랄수가 있으랴. 그때는 학생시위가 났더라도 사회안녕질서를 저해하므로 보도를 통제, 좌우간 시위 기사는 한줄 못썼다. 마음 놓고 화끈하게 쓸 수 있는 것은 문화재 발굴기사뿐이라고 자조하기도 했었다.

부마항쟁때도 그랬다. 광주학살때도 그랬다. 나중엔 검열 대로, 주문 대로, '전 장군' 마음대로 ‘폭도’로 나갔다.
‘땡전 시대’에 신문들은 ‘전두환대통령의 동정기사 하나라도 1면에 받들었다. 2면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불경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대통령의 중요 기사도 2면 3면 4면 5면으로 예사로 밀려난다. 그게 맞다. 단, 불편부당한 잦대로 판단해 했다면.

“그 시절, 언론자유 수호에 기여한 바 없는 메이저 언론, 대통령 욕 한마디 못한 정치인들...”

그런데, 군부독재아래서는 대통령에게 불손한 적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피던 메이저 언론들이 체육관 간선대통령도 아닌, 직선대통령을 향해 ‘욕’에 가까운 십자포화를 계속 날려왔다. 민주화이후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더욱 권위주의를 탈피한 대통령에게 언론탄압시대에는 꼼짝도 못하던 메이저 언론들이 대국민용 대통령욕을 발굴해 보도해 왔다.

대통령까지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언론자유가 보장돼 있음을 증명하는 본보기일 수 있다.
장기간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을 받으면서 언론종사자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언론자유의 상징일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자유수호에 기여한바 없는 메이저언론이 그것도 언론자유가 무진장 보장되자마자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비굴하다.

대통령 욕하는 행위에도 구태여 자격을 부여한다면, 언론쪽에서 받을 분은 군부독재때 언론자유실천선언을 하다 하루아침에 사주에 의해 무더기로 짤려 고난을 겪은 분들 뿐이다.

민주화운동의 성과물로 언론자유가보장된데 대해 대부분의 언론종사자들은 뼛속깊이 고마워해야 할일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전세계 167개국 회원 언론인 판사 인권운동가 1300여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언론상황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보면, 우리는 34위로 미국 44위보다 10단계 높고, 아시아에서 최고는 물론 유럽 민주주의국가와 견줘봐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악의적으로 대통령 욕을 할 게 아니라 욕을 해도 괜찮을 수준까지 왔음에 대해 재차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지난날을 돌이켜 볼일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욕을 가장 많이 하는 편인데, 욕할 자격이 없다.
그 뿌리가 박정희 정권때 공화당, 전두환정권때 민정당, 그리고 3당합당때 민자당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 및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할 때 대통령께 욕 한마디 한 경력이 있는 분이 계신가.

재수(再修) 끝에 이긴다고 철떡 같이 믿고 있다가 지고 나니 잡았다 놓친 고기처럼 눈앞에 가물가물하고 억울하고 억울해서, 입에 담기도 역겨운 욕을 하는 의원들도 많지만 한나라당은 욕할 자격이 없는 당이다.

“이제는 대통령 욕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할 차례인지 모른다. 욕설이 아닌 비판의 형식으로 잡초를 치워가며...”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현 정권 임기의 절반이 지날 동안 계속 대통령 욕을 해왔다.
삼수생이 수능은 다가오는데 공부는 하지 않고 놀이만 하고 있는 꼴이다. 크는 학생들도 보고 듣고 배운다. 그래서 교육상에도 좋지 않다. 대통령 욕놀이만 하고 있는 한 대권은 점점 멀어진다. 박정권때 전정권때 같은 뿌리의 선배들의 잘못을 찾아 성찰하고 통회하고 좋은 머리 바로 쓰며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집권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국민이 생각해서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폄훼하는 한 독서실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국민을 인정하지 않고 폄훼하는 것으로 간주돼 결국 부메랑이 되어 던진 쪽이 당한다.

지난 미국 대선은, 선거는 ‘엘 고어’, 개표에선 ‘조지 부시’가 이겼다고 했다. 부시가 대통령을 우리로 봐서는 ‘주운’ 꼴이다. 엘 고어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엘 고어측이 지금까지 계속 부시 욕을 하고 있다는 외신은 나오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분사난(忿思難:분함이 있을 때는 그것을 풀고나면 더 어려워짐을 먼저 생각하라)’임을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분풀이로 재검표도 해보고 대통령탄핵도 해보다가 쪽박을 차기도 했잖은가. 4.30,1026 재보선에서 싹쓸이했다고 또 그 놀이를 계속 한다면 가망은 더욱 멀어진다. 화풀이는 동조자가 많더라도 결속력은 없다.

한나라당이 욕이 들어가는 보도자료를 내지않으면 메이저 신문들도 재료가 없어 덜 실을 것이고, 그 신문을 보는 많은 사람들도 공급이 끊기면 몰라서라도 적게 할 것이다.

'대통령 욕놀이'라는 스포츠가 될 정도로 확산시킨 원인제공 양자가 정화에도 합심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독재정권의 수혜층은 과거 향수에 젖으며 욕하는 분위기조성에 일조하기보다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점잖은 말씀을 늦었지만 그래도 어른답게 해주면 좋겠다.

역사의 한두장만 넘겨보면 자격이나 명분이 있는 사람은 조용한데 미달되는 쪽에서 늘 요란함을 알수 있다. 가진 거 많고 챙겨놓은 거 많은 배부른 쪽이 아우성치며 개혁의 진로를 막아왔었다.

그러니 이제는 대통령 욕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할 차례인지도 모른다. 배설과도 같은 욕설의 양상이 아닌 비판의 형식으로 잡초를 치워가며 나올 때 인지도 모른다.


유영철(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유영철 전 편집국장은, 1978년 영남일보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8년동안 매일신문에서 근무했으며, 1989년 복간된 영남일보로 돌아와 사회부장과 편집부국장 등을 거쳐 2005년 5월까지 편집국장을 지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11월 1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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