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血亂' 보도, '노조 목소리'가 없다(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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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1.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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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 매일신문.영남일보
, 적십자혈액원 ‘준법투쟁’ 보도..“투쟁 이유는 왜 없을까?”

영남일보 10월 27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영남일보 10월 27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血亂”, “혈액대란”, “전시상황”.
듣기에도 섬뜩한 제목의 기사가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5일까지 대구지역 주요 일간지에 실렸다.
이들 기사는, 적십자혈액원 노조의 ‘준법투쟁’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혈액이 더 모자라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적십자혈액원 노조는 10월 20일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준법투쟁’에 들어가 11월 4일 회사측과 노사합의를 봤다.

혈액이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혈액부족 사태를 신속하게 전한 지역 일간지 보도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같은 보도로 지역의 일부 고등학생들과 공무원들이 단체 헌혈에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열악한 혈액공급체계와 사회안전망 문제도 짚을 수 있었다.

다만, 이같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알권리’ 차원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일반적으로 노조의 쟁위행위 보도는 그 이유와 피해 상황을 같이 전하지만, 이번 보도에는 적십자혈액원 노조가 왜 준법투쟁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지역 일간지의 적십자혈액원 관련 보도를 보자.

영남일보 10월 29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영남일보 10월 29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영남일보(조간)는 지난 10월 27일과 29일, 11월 1일, 각각 사회면 톱기사로 이른 바 ‘血亂’을 보도했다.
10월 27일 첫 보도에서는 ‘血亂’이란 큰 제목과 ‘대구경북혈액원노조 일주일째 준법투쟁...채혈량 평소의 40%...병원마다 수술연기..내주 B형 빼곤 비축량 모두 고갈 초비상’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또 29일에는 “적십자혈액원 ‘피’도 ‘눈물’도 없다”, 1일에는 “血亂...병원은 지금 전시상황”이란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이들 기사는 노조의 준법투쟁으로 혈액부족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노조의 준법투쟁으로 혈액대란이 우려된다는 내용만 전할 뿐, 기사 어디에도 준법투쟁 이유는 없다.

영남일보는 10월 27일자 사회면 ‘血亂’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대구경북혈액원 노조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채혈량이 평소의 4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준법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적십자혈액원에서 비축해놓은 비상혈액마저 고갈되고 있다...준법투쟁이 계속될 경우 다음 주부터 혈액대란이 현실화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노조가 준법투쟁을 하기 시작한 지난 20일부터 채혈량이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10월 29일자도 “적십자혈액원 ‘피’도 ‘눈물’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준법투쟁이 시작된 이후 채혈량이 계속 감소하면서 비상비축혈액까지 일반병원에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할 뿐 노조의 주장은 없었다.

적십자혈액원 노조는 당초 11월 2일 파업을 하기로 했지만, 여론과 시민불편을 우려해 이를 연기하고 회사측과 협상을 벌였다. 영남일보는 노조의 이같은 방침을 전한 11월 1일 “血亂...병원은 지금 전시상황”이란 제목의 보도에서도 ‘이유’는 없이 피해상황과 과정만 설명했다.

영남일보 11월 1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영남일보 11월 1일자 사회면(6면) 머릿기사
“적십자혈액원 노조는 2일부터 돌입하기로 했던 전면 파업 일정을 시민불편을 우려해 한시적으로 연기했다고 31일 밝혔다. 하지만 노조측은 사측의 대응수위에 따라 또 다시 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언제든지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노조측이 사측과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준법투쟁을 지속키로 해 혈액난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영남일보 11월 1일 사회면)

당시 적십자혈액원 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대한적십자사 소속 전국 병원.혈액원 19곳의 비정규직 비율은 병원(5곳)이 55%, 혈액원(14곳)이 35%정도로, 노조는 이를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노사합의(11.4)를 통해 2006년까지 20%, 2010년까지 10% 수준으로 비정규직을 줄이기로 했다. 또, 임금도, 노조는 9.8% 인상을 주장한 반면 사측은 3%인상으로 맞섰는데, 임금인상은 사측의 제안대로 3%인상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적지 않다고 보면, 비정규직 비율이 절반을 넘는 적십자사혈액원 노조의 주장이 ‘알리지 않아도 될만큼’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이 문제가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혈액공급만큼 중요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가치 판단’과 함께 ‘노조의 주장’도 독자의 알권리를 위해 전해야 한다.

그러나, 영남일보는 11월 5일 사회면(6면) ‘준법투쟁 중단’ 보도에서도 ‘노사합의’ 소식을 전할 뿐, ‘노조 주장’이나 ‘합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영남일보 11월 5일자 사회면(6면)
영남일보 11월 5일자 사회면(6면)


특히, 11월 5일 보도는 “준법투쟁으로 대구경북지역에 ‘피’부족 사태를 불러온 적십자혈액원 노조가 4일 사측과 쟁점이던 임금협상을 잠정합의함에 따라 혈액난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노사 양측이 쟁점이던 임금협상에 잠정합의했다...16일째 지속해 오던 준법투쟁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노사가 쟁점으로 삼았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같은 보도 경향은 매일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신문 10월 27일자 사회면(7면) / 매일신문 10월 29일자 사회면(7면) 머릿기사
매일신문 10월 27일자 사회면(7면) / 매일신문 10월 29일자 사회면(7면) 머릿기사

매일신문(석간) 역시 10월 27일 사회면에 “血亂 오나”라는 큰 제목과 “적십자사 ‘파업전야’...병원 혈액확보 비상”이란 제목을 달았다. “파업 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병원별로 혈액확보에 비상이 걸렸다...임금인상 폭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난 20일부터 노조가 준법 투쟁에 들어간 가운데...”

이 기사 역시, ‘임금인상 폭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라는 말만 들어갔을 뿐, 비정규직 실태에 대한 설명과 노조 주장은 쓰지 않았다.

매일신문은 또, 11월 1일에도 “혈액원 준법투쟁 장기화...血亂 현실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속터지는 환자, 피마르는 병원”의 절박함을 다뤘다. “노조 파업위기는 넘겼지만 준법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일번 병원의 혈액난이 가중되고 있다...준법 투쟁이 이루어진 뒤 지난 24일부터 20일까지 총 69유니트만 공급되었다는 것...준법투쟁까지 벌어져 (혈액량이)급감했으며...”

이어, 매일신문은 노조가 정상업무에 들어간 다음 날인 11월 5일 종합면(4면)에 “혈액공급 ‘사회안전망’ 급하다”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 혈액공급체계의 문제를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짚고 대안을 진단했다. 이 기사 끝에 “노사양측은 쟁점이던 임금협상 및 비정규직 축소 문제 등에 잠정 합의했다. 이에 따라 노조원들은 16일 만에 준법투쟁을 중단하고 정상근무에 들어가 혈액부족난이 해소될 것으로 인다”고 보도했다.

‘血亂’사태의 근본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의도는 좋지만, 언론 스스로 ‘血亂’의 일정 책임자로 비판한 노조의 주장이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매일신문 11월 5일자 종합면(4면) 머릿기사
매일신문 11월 5일자 종합면(4면) 머릿기사


‘준법 투쟁’은 말 그대로 ‘법규를 규정대로 지키면서’ 사용자에게 손해를 주는 노동쟁의로, 단체 휴가를 비롯해 조.야근이나 특근 없는 ‘정시 출퇴근’과 ‘서행 운전’이 주로 쓰인다. 따라서 업무를 완전히 중단하는 파업보다는 훨씬 낮은 단계의 쟁위행위로, 노조측이 ‘부분파업’이나 ‘총파업’에 앞서 준법투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매체비평에 앞서 적십자혈액원 노조측에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했다.
노조위원장은,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 주장은 아예 실어주지를 않으니...”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취재기자는 ‘출입처’에 따라 기사를 쓴다.
적십자혈액원 ‘血亂’ 사태는 병원이나 노동 출입기자, 혹은 이 병원이 있는 지역의 구.군청 출입기자가 쓰는 것이 보통이다. 여러 출입기자들의 업무가 나눠져 있어 종합적으로 다루지 못한 것인지, 기사를 썼는데 지면사정 등으로 보도되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 노조의 주장이 설득력 없다고 판단해 싣지 않은 것인지, 상대적으로 더 큰 ‘생명’의 가치에 덮힌 것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血亂’으로 불린 ‘혈액부족’ 사태. 그리고 노조의 ‘준법투쟁’.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영향을 주는 행위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적어도 언론은 그 이유를 독자에게 알리고 독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그럴 때 올바른 여론과 비판이 형성될 수 있다. 설사 그 이유가 올바르지 않다 하더라도 ‘알리는’ 그 자체를 언론이 가볍게 볼 수는 없는 문제다.

<평화뉴스 매체비평팀>
[평화뉴스 매체비평팀]은, 6개 언론사 7명의 취재.편집기자로 운영되며,
지역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토론한 뒤 한달에 2-3차례 글을 싣고 있습니다.
매체비평과 관련해, 해당 언론사나 기자의 반론, 지역 언론인과 독자의 의견도 싣고자 합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pnnews@pn.or.kr로 글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 평화뉴스(www.pn.or.kr)

(이 글은, 2005년 11월 15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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