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풍랑...”

평화뉴스
  • 입력 2005.11.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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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 62> 이두옥.
“병상에 있는 이의 빠른 쾌유를 빌며..”

며칠째 감기 몸살로 출근도 못하고 집에 누워 있던 중이었다.
누워서 생각하니, 평소 잘 아는 지인이 오늘 위암 수술을 할 예정이다.
알아보니 수술 후에는 며칠 동안 병문안도 어려울 거라고 한다.

그러면 수술 전에 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에는 열이 화끈거리고..하지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도저히 머리까지 감을 엄두는 못내고 대신 모자를 눌러 썼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 수술 할 환자가 있는데 심방 좀 같이 갑시다.”

“ 갑자기 왠 심방은, 아프다고 누워 있던 사람이 찬바람 쐬면 안 좋을 건데, 누군데? ”
“ 거 있잖아요 당신은 금방 기억 안 날지 모르겠지만, 모씨라고 그 친구는 옛날에 당신하고 당구도 자주 쳤다던데, 기억 안 나요? 오늘 오후 수술 예정인데, 당신 같이 가서 기도나 좀 해주세요!”

아프다고 끙끙대고 누웠던 내가 난데없이 자청해서 심방 가자는 소리에 남편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자신도 과거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 안타까워하며 함께 동행했다. 병원에 들러서 짧은 시간이지만 환자와 함께 담소하고 위로도 하고 위 수술을 앞둔 그를 위해 함께 기도도 했다.

병문안을 끝내고 병원문을 나서면서 남편은 택시를 탈 기세이다.
나는 재빨리 “생각보다 오늘 날씨가 포근하네요, 걸어서갑시다” 했다. 남편은 “바람 쐬는 것이 괜찮을까” 하더니 싫지는 않은 듯 같이 걸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싶었다. 평소에는 서로 바쁨을 핑계로 시내를 여유롭게 걸어본 것도 오랜만 인 것 같다. 내친김에 점심때여서 오랜만에 추어탕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찻집에서 차를 한잔하는 여유(?)도 부리고 남편은 사무실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길거리의 가로수가 낙엽으로 떨어져서 여기 저기 딩굴고 있다.
샛노란 옷을 입은 은행잎과 플라타너스의 갈색 잎이 쓰러지듯 누워있다.
그 낙옆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인생살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오늘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수술을 받는 것을 보면서, 또 몇 년 전에 우리도 경험한 남편의 갑작스런 질병으로 인한 2년여의 투병생활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침뉴스에 우리나라 최대 재벌의 딸이 외국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 등을 되새겨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인생살이의 희비의 감정에 대한 것을 몇 년 전에 읽은 책속에서 나오는 구절과 함께 기억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니코스 카잔타키스가 쓴 소설 『사나이 조르바』에 나오는 한 대목의 대사를 인용해 본다.

“ 조르바, 너 결혼했니?”
이에 조르바는, “그럼, 나는 사나이가 아니란 말이냐? 물론 나는 결혼했고, 마누라도 있고, 집도 있고, 자식들도 있고, 있을 것은 다 있지.... 그렇지만 온갖 골칫덩어리의 인생인걸!!”

조르바가 내뱉는 이 말 속에는 인생이란 풍요로움과 동시에 고난, 슬픔, 비극, 질병 등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조르바식의 대처방법이란 온갖 고난과 격변 속에서도 춤추고, 인생을 찬미하고, 웃으면서, 또는 인간적 좌절과 패배감에 직면해서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 우리들은 인간적 좌절과 고난에 직면하면 홀로 가슴 아파하며 “왜 하필이면 ‘나’이냐?”고 사회와 가족과 자신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나 역시도 조르바가 이야기한 ‘골칫덩어리의 인생’을 가슴에 안고 잠 못 이룬 경험도 많지만, 이제는 되도록 살아가면서 조르바식의 대처방법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 갑자기 인생의 풍랑을 만난 사람을 위해서 위로하고 기도하며, 늦가을의 애잔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것도 마음이 여유롭고, 추어탕 한 그릇과 한 잔의 차에도 감사하며 작은 행복을 가슴으로 누려본다. 그런 나를 보며 혼자 싱겁게 피식 웃어본다. 병상에 있는 이의 빠른 쾌유를 빌며 오늘 하루 일상을 감사하며 마무리 해본다.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 대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두옥 대표는, 1991년 <대구여성의전화> 활동을 시작해
현재 <대구여성의전화> 대표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로 지역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11월 2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부터는 5기 필진이 목요일마다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글을 씁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1.10(목) 문혜선(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장)
11.17(목) 송필경(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1.24(목)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2.1(목) 김진국(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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