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운동의 ‘혁신’이 필요하다”

평화뉴스
  • 입력 2005.12.07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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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시사칼럼 62]...
“지역혁신, 풀뿌리 민중의 고통이 담겨 있는가?”
“돈 벌이 수단쯤으로 전락한 혁신사업, 제

요즘 부쩍 유행하는 말 중에 하나가 ‘혁신’이 아닐까 한다.
기업혁신, 행정혁신, 지역혁신, 교육혁신 등 혁신의 예외지대가 없을 정도다. 지난 5월에는 서울에서 ‘제 6회 세계 정부혁신 박람회’가 열렸고, 지난 10월에는 대구에서 ‘제 2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가 열렸다. 지방에서마다 지역혁신체계니, 지역혁신협의회니, 혁신도시니, 혁신적 지역발전이니 난리법석이기도 하다.

지방정부마다 혁신부서를 만들었고 공무원들은 혁신교육을 받는다고 바쁘다. 대구 KBS는 매달 한차례 ‘지역혁신 대토론’이라는 타이틀의 생방송 심야토론을 편성하기도 했다. 온통 ‘혁신’ ‘혁신’ 하는 통에 정신사납기도 하지만, 모처럼 지방에 활기가 살아나는 것도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없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혁신 개념과 사업과 캠페인을 보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즉, ‘기술-산업-경제’ 측면의 혁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산.학.연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든가, '지역혁신체계(RIS: Regional Innovation System)'를 만들어야 한다든가, 기업과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을 공급해야 한다든가(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 지역혁신을 위한 대학혁신(NURI: New University for Regional Innovation)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명제들이 대표적인 예다. 당연히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 ‘신성장동력 발굴’, ‘산업클러스터 만들기’ 등이 중점 과제로 부상했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기업인들, 그리고 지역의 테크노크라트들이 혁신 사업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필자는 정부 관계자나 혁신 전문가들과의 토론회 때마다 그런 ‘혁신’ 개념과 사업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혁신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한 균형잡힌 배려와 관심을 촉구했던 것이다. 바로 ‘지역사회 정책결정 과정의 혁신’, ‘지역사회 지배구조의 혁신’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사회의 정치-행정 구조 혁신’과 ‘지역 시민사회와 시민의식의 혁신’을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필자는 ‘지역사회의 민주-자치 혁신’이라고 불렀다. 최소한 ‘지역사회의 민주-자치 혁신’과 함께 가지 않는 한, ‘지역사회의 기술-산업-경제 혁신’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제 필자는 그 ‘혁신’ 개념에 또 하나의 문제의식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앞에서 든 혁신의 두 측면 모두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지역사회의 혁신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살고 싶은 지역사회 만들기’라는 사실이다. 기술 혁신과 경쟁력 제고도 중요하고, 자치와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복지와 품격과 문화생활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녹지와 깨끗한 환경도 중요하고,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며 관용할 줄 아는 문화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수준 높은 복지도시, 지속가능한 환경도시, 열린 도시, 관용하는 도시가 되지 않으면, 앞의 혁신 사업들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별 매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잘 사는 도시도 좋고 민주-자치 도시도 좋지만, 따뜻한 도시, 품위있는 도시, 복지도시, 문화도시, 그래서 살맛나는 도시, 사람이 찾아드는 도시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제 혁신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새 물신주의에 압도되어 버린 혁신 개념, 어느 새 돈벌이 수단쯤으로 천박하게 나뒹굴고 있는 혁신 사업, 그래서 지금까지도 지역에서 아쉬운 것 없이 잘 나가던 제도권 엘리뜨들이 차지해 버린 혁신 운동에 일대 성찰과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혁신에는 풀뿌리 민중의 고통과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으면 안된다.
척박하고 숨막히는 문화 토양에서 질식해 있던 젊은이들, 예술인들, 외지인들의 갈망과 철학과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의 편협한 혁신 개념이 혁신되어야 하는 것이다. ‘혁신의 성찰’, ‘성찰적 혁신’이 필요한 것이다.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대구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구재단에 의해 해직(1993)됐다가 임시이사 파견 뒤 1년 만에 복직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과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부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분권과 혁신’을 위해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홍 교수는 또, 지역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시사칼럼을 쓰거나 토론.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지금도 대구KBS <화요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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