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곁에 있어 내가 참 행복했습니다”

평화뉴스
  • 입력 2005.12.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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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칼럼66] 이두옥...
“손때 묻은 수첩, 씨줄.날줄로 엮어진 나를 돌아보며...”

2005년 한 해도 십 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상가에는 캐롤송이 울려 퍼지고, 오늘 같은 날은 눈까지 펑펑 내려서 뭔가를 조용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요 계절이다.

한해의 끝에 와서 시간의 마무리에 모두들 몸과 마음이 분주하게만 느껴진다. 쫓기듯이 단체의 지난 한 해 사업을 평가하고, 내일의 우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존재이면서도 내년도 사업과 살림들을 계획하느라 또 분주하다. 아마 많은 가정과 사회적으로나 시민단체들도 비슷하리라고 생각된다.

한 해를 뒤돌아보니 일상은 무척 바쁘게 지나간 것 같은데 뇌리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뚜렷이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손때가 묻은 올해의 수첩을 뒤적여보니. 맡겨진 역할을 한답시고 이쪽과 저쪽을 오간 기록들은 빽빽하게 저마다의 이름과 시간을 달고 있다.

기록된 것들을 따라 생각해보니 지난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3월에는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가 창립되어 그 첫발을 내딛고 얼떨결에 상임대표를 맡아 연대회의를 알려내느라고 여러 방송국으로, 관련모임으로 분주했다. 또, 각자 단체의 맡은 일이 바쁜 가운데서도 서로 협력하여 연대회의 활동과 관련한 일들을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신바람 나게 하는 활동가들을 보고 마음에 감동이 진하게 와 닿기도 했다.

4월에 접어들자마자 고용평등주간이어서 노동청에서 주간한 행사로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14년 전에 나는 출산휴가를 요구했다가 회사로부터 해고되었던 사람인데, 오늘은 관련 기관으로부터 축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니 격세지감이 든다”라고 한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해고되어 복직 될 때까지의 내 모습이 떠올라 해묵은 기억은 한동안 가슴을 아리게 했다.

봄의 끝자락에서는 이런 기록도 보인다.
교수에 의한 제자와 조교, 두 성폭력 피해 여성을 여성인권차원에서 지원했다가, 오히려 성폭력가해자에 의해서 명예훼손으로 역으로 고소되어 몇년째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고소 사건이 대법원에서 상고심 판결이 있는 날, 여러 회원들과 함께 대법원 법정에서 판결의 결과를 숨죽여 지켜보던 조바심도 묻어나 있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환송 한다”는 법관의 판결이 있은 후 우리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환영의 기자회견을 한 감격의 순간도 있었다.

그로부터 겨울에 와서 본 재판에 대한 판결 분석토론회가 열리고 5년을 끌어온 본 건에 대한 절차상의 마무리가 있었다. 이를 통해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여성과 관련한 인권을 지켜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자원이 필요함을 경험한 세월이었다. 우리 같은 단체의 경우에도 사회적 지지와 돈과 시간과 언어와 지식과 저항이 필요했다. 그런데 개인 여성의 경우에는 하물며 얼마나 자신의 인권을 지켜내기가 어려운 일인지 그 현실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 일년이라는 시간의 발자국에 새겨진 여성운동과 시민단체연대 활동의 씨줄과 날줄에 엮어진 나를 돌아보면서 이 시점에 새삼 느껴지는 게 있다. 결국 내 부족함을 옆에서 채워준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 덕택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년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들 곁에 다가가 일일이 손을 맞잡고 한사람 한사람에게 “감사합니다.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내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라고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 대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두옥 대표는, 1991년 <대구여성의전화> 활동을 시작해
현재 <대구여성의전화> 대표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로 지역 여성운동과 시민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12월 22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평화뉴스>는,
지역 시민사회의 건강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2004년 8월부터 [시민사회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2005년 11월부터는 다섯번째 필진이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과 세상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함께 고민하고 나눠야 할 가치를 위한 [시민사회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2.8(목) 문혜선(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대구지부장)
12.15(목) 송필경(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12.22(목) 이두옥(대구여성의전화.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12.29(목) 김진국(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www.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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